제17화 — 옥(獄)으로 가는 길
조회 : 66 추천 : 0 글자수 : 1,814 자 2026-02-26
창덕궁의 밤은 여전히 어둠의 아가리를 벌린 채 깨어 있었다.
대비전의 화려한 문턱 너머로,
조선을 호령하던 노론 벽파의 중신들이 굴비 엮이듯 하나둘 끌려 나왔다.
그들의 관복 소매는 흙바닥에 끌렸고,
정자관은 비뚤어졌다.
수십 년간 왕을 능멸하고 백성의 고혈을 짜내며 쌓아 올린 오만함이,
장용영의 거친 손길 아래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었다.
그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허공을 응시했다.
'어떻게... 고작 열한 살 아이의 손에 우리 노론의 천하가 이토록 허망하게...'
그러나 그 의문에 답해줄 자는 없었다.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설득의 언어가 아니라,
차갑게 식은 무사들의 검날뿐이었다.
“가자. 지체하면 왕명을 거역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장용영 무사의 서늘한 경고에 대신의 팔이 움찔거렸다.
백동수는 그 광경을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이미 살아있는 자를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왕의 의지를 집행하는 정교한 기계처럼 움직였다.
“모두 의금부 옥사로 압송하라.
단 한 명도 서로 말을 섞게 해서는 안 된다.”
무사들의 발소리와 포박된 대신들의 신음이 돌바닥 위를 긁으며 지나갔다.
그 소리는 마치 낡은 시대가 무너져 내리는 장송곡처럼 궁궐의 담장을 울렸다.
의금부 옥사.
쥐구멍 하나 보이지 않는 그 어둡고 습한 지하에 이미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심환지.
그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노수(老獸)처럼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철문이 비명을 지르며 열리고, 어
둠 속으로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둘 던져졌다.
“…대감! 심 대감님!”
포박된 채 바닥을 뒹굴던 이조판서가 비명을 지르듯 그를 불렀다.
심환지가 천천히 눈을 떴다.
공포와 절망으로 일그러진 제 수하들의 얼굴을 보며,
그는 아주 작게,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결국 다들 왔는가.”
“대감, 어찌 된 일이옵니까!
주상이, 그 어린 주상이 미친 칼춤을 추고 있나이다!
대비마마까지 유폐하시다니요!”
심환지는 대답 대신 굳게 닫힌 옥사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분은 미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잠자던 용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지.
아니, 용의 탈을 쓴 악귀를 깨운 것일지도 모르겠군.”
쾅—!
무거운 철문이 다시 닫혔다.
쇠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옥방 전체를 울렸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지상으로 나갈 수 없음을 알리는,
무덤의 덮개가 닫히는 소리였다.
진실의 아침을 향하여
침전으로 돌아온 나는 깊은 정적 속에 앉아 있었다.
문이 열리고 백동수가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
그의 어깨 위로 새벽안개가 서려 있었다.
“...전하. 모든 쥐새끼들을 옥에 몰아넣었나이다.”
“수고했다. 심환지의 표정은 어떠하더냐.”
“이미 패배를 받아들인 눈이었사옵니다.
허나, 그 뒤에 남은 잔당들의 눈엔 여전히 독기가 서려 있었나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독기는 공포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나는 내 작은 손을 가만히 움켜쥐었다.
이 손가락 끝에 조선의 운명이,
그리고 아바바마의 복수가 걸려 있었다.
“좋다. 이제 뿔뿔이 흩어져 있던 진실을 한데 모을 시간이다.”
나는 백동수를 똑바로 응시하며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국문(鞠問)을 준비하라.
해가 뜨는 즉시, 내가 직접 추국장에 나설 것이다.”
백동수의 눈이 번뜩였다.
친국(親鞠). 왕이 직접 죄인을 심문하는 그 자리는,
곧 노론 벽파의 완전한 종말을 의미했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그가 물러가고 나는 홀로 남았다.
창밖으로 희뿌연 새벽빛이 번져오고 있었다.
나는 흔들리는 등불을 끄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심환지, 그리고 정순왕후.
이제 너희가 쌓은 침묵의 성벽을 진실의 피로 무너뜨려 주마.’
조선의 태양이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단죄의 불꽃이 될 것이었다.
대비전의 화려한 문턱 너머로,
조선을 호령하던 노론 벽파의 중신들이 굴비 엮이듯 하나둘 끌려 나왔다.
그들의 관복 소매는 흙바닥에 끌렸고,
정자관은 비뚤어졌다.
수십 년간 왕을 능멸하고 백성의 고혈을 짜내며 쌓아 올린 오만함이,
장용영의 거친 손길 아래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었다.
그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허공을 응시했다.
'어떻게... 고작 열한 살 아이의 손에 우리 노론의 천하가 이토록 허망하게...'
그러나 그 의문에 답해줄 자는 없었다.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설득의 언어가 아니라,
차갑게 식은 무사들의 검날뿐이었다.
“가자. 지체하면 왕명을 거역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장용영 무사의 서늘한 경고에 대신의 팔이 움찔거렸다.
백동수는 그 광경을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이미 살아있는 자를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왕의 의지를 집행하는 정교한 기계처럼 움직였다.
“모두 의금부 옥사로 압송하라.
단 한 명도 서로 말을 섞게 해서는 안 된다.”
무사들의 발소리와 포박된 대신들의 신음이 돌바닥 위를 긁으며 지나갔다.
그 소리는 마치 낡은 시대가 무너져 내리는 장송곡처럼 궁궐의 담장을 울렸다.
의금부 옥사.
쥐구멍 하나 보이지 않는 그 어둡고 습한 지하에 이미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심환지.
그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노수(老獸)처럼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철문이 비명을 지르며 열리고, 어
둠 속으로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둘 던져졌다.
“…대감! 심 대감님!”
포박된 채 바닥을 뒹굴던 이조판서가 비명을 지르듯 그를 불렀다.
심환지가 천천히 눈을 떴다.
공포와 절망으로 일그러진 제 수하들의 얼굴을 보며,
그는 아주 작게,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결국 다들 왔는가.”
“대감, 어찌 된 일이옵니까!
주상이, 그 어린 주상이 미친 칼춤을 추고 있나이다!
대비마마까지 유폐하시다니요!”
심환지는 대답 대신 굳게 닫힌 옥사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분은 미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잠자던 용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지.
아니, 용의 탈을 쓴 악귀를 깨운 것일지도 모르겠군.”
쾅—!
무거운 철문이 다시 닫혔다.
쇠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옥방 전체를 울렸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지상으로 나갈 수 없음을 알리는,
무덤의 덮개가 닫히는 소리였다.
진실의 아침을 향하여
침전으로 돌아온 나는 깊은 정적 속에 앉아 있었다.
문이 열리고 백동수가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
그의 어깨 위로 새벽안개가 서려 있었다.
“...전하. 모든 쥐새끼들을 옥에 몰아넣었나이다.”
“수고했다. 심환지의 표정은 어떠하더냐.”
“이미 패배를 받아들인 눈이었사옵니다.
허나, 그 뒤에 남은 잔당들의 눈엔 여전히 독기가 서려 있었나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독기는 공포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나는 내 작은 손을 가만히 움켜쥐었다.
이 손가락 끝에 조선의 운명이,
그리고 아바바마의 복수가 걸려 있었다.
“좋다. 이제 뿔뿔이 흩어져 있던 진실을 한데 모을 시간이다.”
나는 백동수를 똑바로 응시하며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국문(鞠問)을 준비하라.
해가 뜨는 즉시, 내가 직접 추국장에 나설 것이다.”
백동수의 눈이 번뜩였다.
친국(親鞠). 왕이 직접 죄인을 심문하는 그 자리는,
곧 노론 벽파의 완전한 종말을 의미했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그가 물러가고 나는 홀로 남았다.
창밖으로 희뿌연 새벽빛이 번져오고 있었다.
나는 흔들리는 등불을 끄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심환지, 그리고 정순왕후.
이제 너희가 쌓은 침묵의 성벽을 진실의 피로 무너뜨려 주마.’
조선의 태양이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단죄의 불꽃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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