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 왕좌(王座)의 무게
조회 : 6 추천 : 0 글자수 : 1,941 자 2026-03-01
지평선을 뚫고 솟아오른 태양이 창덕궁의 단청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밤새 궐을 짓누르던 음습한 그림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갔지만,
공기 중의 긴장감은 오히려 더 날카롭게 벼려졌다.
해가 떴다고 해서 사냥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는 사냥감을 만천하에 전시할 시간이었다.
나는 의관을 정제하고 침전을 나섰다.
열한 살 아이의 몸에 걸쳐진 곤룡포가 오늘따라 천근만근 무거웠으나,
나의 걸음걸이는 대지를 누르는 거인의 그것처럼 단단했다.
“전하의 행차이시다! 모두 머리를 조아려라!”
내관의 외침이 회랑을 타고 파도처럼 번져나갔다.
바닥에 엎드린 궁인들의 어깨가 눈에 띄게 떨렸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오늘 인정전 문턱을 넘는 이는 어제의 유약한 세자가 아니라,
피의 숙청을 마친 진정한 지배자라는 것을.
인정전(仁政殿)의 정적
조선의 중심, 인정전의 육중한 문이 열렸다.
안에는 이미 만조백관이 도열해 있었다.
평소라면 당파 싸움과 권력의 향방을 논하며 소란스러웠을 그곳이,
지금은 무덤 속처럼 고요했다.
내가 발을 들여놓자마자 수백 명의 대신들이 일제히 바닥에 몸을 굽혔다.
스르륵—. 비단 관복이 바닥을 훑는 소리만이 전각 안을 메웠다.
나는 정면에 놓인 높은 계단 위, 용상을 바라보았다.
아바바마가 앉으셨던, 그리고 그 독살의 배후들이 탐냈던 그 자리.
나는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발을 떼었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심장 박동이 귓가를 때렸다.
마침내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해 몸을 돌렸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딱딱한 나무의 질감이 등을 타고 전해졌다.
이 자리는 권좌(權座)인 동시에 단두대였다.
나는 아래를 굽어보았다.
수많은 머리가 내 발치에 조아려져 있었다.
“고개를 들어라.”
나의 목소리는 인정전 천장에 부딪혀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대신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본능적인 공포와 함께,
새로운 태양의 광휘를 확인하려는 갈망이 뒤섞여 있었다.
단죄의 선포
나는 품 안에서 어제 봉인했던 조서를 천천히 꺼냈다.
대신들의 시선이 그 종이에 못 박혔다.
“심환지는.”
나는 한 자 한 자 힘주어 뱉었다.
“지난밤, 자신의 모든 대역죄를 자백하였다.
선왕 정조대왕의 체내에 독기를 불어넣어 시해한,
만고에 없을 반역의 전말을 말이다.”
술렁—.
전각 안이 짧은 비명과 탄식으로 뒤흔들렸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른 척했던 자들은 얼굴이 흙빛이 되었고,
진정 몰랐던 자들은 경악에 입을 벌렸다.
“이것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다.
조선의 국본을 흔들고 왕실의 권위를 짓밟은,
하늘이 용서치 못할 범죄다.
나는 이 죄를 단 한 치의 자비 없이 다스릴 것이다.”
나는 용상의 팔걸이를 꽉 쥐었다. 손등에 핏줄이 돋아났다.
“조선의 법은 죽지 않았다.
왕을 시해한 자가 권력을 누리는 시대는 어젯밤부로 끝났다.
이제부터 이 나라의 법은 오직 왕의 권위 아래 바로 설 것이며,
나를 기만하는 자는 누구든 이 인정전의 피 냄새를 맡게 될 것이다.”
완전한 침묵이 다시 찾아왔다.
누구도 감히 숨을 크게 내쉬지 못했다.
대신들은 이제 확실히 깨달았다.
저 위에 앉은 아이는 노론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제 아비의 복수를 위해 지옥에서 돌아온 어린 악귀라는 것을.
나는 그들의 공포를 즐기듯 천천히 좌중을 훑었다.
“백동수.”
“예, 전하!”
문밖에서 대기하던 백동수의 우렁찬 목소리가 전각을 울렸다.
“의금부에 전하라.
심환지와 그 일당들의 처형 날짜를 잡고,
그 가산(家産)을 모두 몰수하라.
또한 자경전에 유폐된 죄인 정순왕후의 교지를 폐하며,
오늘부터 그녀를 서인(庶人)으로 강등한다.”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대신 몇몇이 혼절하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것은 단순한 선고가 아니었다.
지난 수십 년간 조선을 지배해온 거대한 어둠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는 장송곡이었다.
나는 용상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이제 조정은 완전히 나의 수중에 들어왔다.
‘아바바마, 이제 첫 번째 단추를 끼웠습니다.’
나의 시선은 이제 궁궐 담장을 넘어,
저 멀리 이 썩은 나라의 근본을 고칠 대개혁의 시작점을 향하고 있었다.
밤새 궐을 짓누르던 음습한 그림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갔지만,
공기 중의 긴장감은 오히려 더 날카롭게 벼려졌다.
해가 떴다고 해서 사냥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는 사냥감을 만천하에 전시할 시간이었다.
나는 의관을 정제하고 침전을 나섰다.
열한 살 아이의 몸에 걸쳐진 곤룡포가 오늘따라 천근만근 무거웠으나,
나의 걸음걸이는 대지를 누르는 거인의 그것처럼 단단했다.
“전하의 행차이시다! 모두 머리를 조아려라!”
내관의 외침이 회랑을 타고 파도처럼 번져나갔다.
바닥에 엎드린 궁인들의 어깨가 눈에 띄게 떨렸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오늘 인정전 문턱을 넘는 이는 어제의 유약한 세자가 아니라,
피의 숙청을 마친 진정한 지배자라는 것을.
인정전(仁政殿)의 정적
조선의 중심, 인정전의 육중한 문이 열렸다.
안에는 이미 만조백관이 도열해 있었다.
평소라면 당파 싸움과 권력의 향방을 논하며 소란스러웠을 그곳이,
지금은 무덤 속처럼 고요했다.
내가 발을 들여놓자마자 수백 명의 대신들이 일제히 바닥에 몸을 굽혔다.
스르륵—. 비단 관복이 바닥을 훑는 소리만이 전각 안을 메웠다.
나는 정면에 놓인 높은 계단 위, 용상을 바라보았다.
아바바마가 앉으셨던, 그리고 그 독살의 배후들이 탐냈던 그 자리.
나는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발을 떼었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심장 박동이 귓가를 때렸다.
마침내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해 몸을 돌렸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딱딱한 나무의 질감이 등을 타고 전해졌다.
이 자리는 권좌(權座)인 동시에 단두대였다.
나는 아래를 굽어보았다.
수많은 머리가 내 발치에 조아려져 있었다.
“고개를 들어라.”
나의 목소리는 인정전 천장에 부딪혀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대신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본능적인 공포와 함께,
새로운 태양의 광휘를 확인하려는 갈망이 뒤섞여 있었다.
단죄의 선포
나는 품 안에서 어제 봉인했던 조서를 천천히 꺼냈다.
대신들의 시선이 그 종이에 못 박혔다.
“심환지는.”
나는 한 자 한 자 힘주어 뱉었다.
“지난밤, 자신의 모든 대역죄를 자백하였다.
선왕 정조대왕의 체내에 독기를 불어넣어 시해한,
만고에 없을 반역의 전말을 말이다.”
술렁—.
전각 안이 짧은 비명과 탄식으로 뒤흔들렸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른 척했던 자들은 얼굴이 흙빛이 되었고,
진정 몰랐던 자들은 경악에 입을 벌렸다.
“이것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다.
조선의 국본을 흔들고 왕실의 권위를 짓밟은,
하늘이 용서치 못할 범죄다.
나는 이 죄를 단 한 치의 자비 없이 다스릴 것이다.”
나는 용상의 팔걸이를 꽉 쥐었다. 손등에 핏줄이 돋아났다.
“조선의 법은 죽지 않았다.
왕을 시해한 자가 권력을 누리는 시대는 어젯밤부로 끝났다.
이제부터 이 나라의 법은 오직 왕의 권위 아래 바로 설 것이며,
나를 기만하는 자는 누구든 이 인정전의 피 냄새를 맡게 될 것이다.”
완전한 침묵이 다시 찾아왔다.
누구도 감히 숨을 크게 내쉬지 못했다.
대신들은 이제 확실히 깨달았다.
저 위에 앉은 아이는 노론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제 아비의 복수를 위해 지옥에서 돌아온 어린 악귀라는 것을.
나는 그들의 공포를 즐기듯 천천히 좌중을 훑었다.
“백동수.”
“예, 전하!”
문밖에서 대기하던 백동수의 우렁찬 목소리가 전각을 울렸다.
“의금부에 전하라.
심환지와 그 일당들의 처형 날짜를 잡고,
그 가산(家産)을 모두 몰수하라.
또한 자경전에 유폐된 죄인 정순왕후의 교지를 폐하며,
오늘부터 그녀를 서인(庶人)으로 강등한다.”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대신 몇몇이 혼절하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것은 단순한 선고가 아니었다.
지난 수십 년간 조선을 지배해온 거대한 어둠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는 장송곡이었다.
나는 용상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이제 조정은 완전히 나의 수중에 들어왔다.
‘아바바마, 이제 첫 번째 단추를 끼웠습니다.’
나의 시선은 이제 궁궐 담장을 넘어,
저 멀리 이 썩은 나라의 근본을 고칠 대개혁의 시작점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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