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 호랑이의 굴, 얼음의 대좌
조회 : 73 추천 : 0 글자수 : 1,890 자 2026-02-25
창덕궁의 밤공기는 칼날처럼 예리했다.
나는 더 이상 보좌에 앉아 보고를 기다리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침전의 육중한 문 앞에 섰다.
내관들이 낙엽처럼 바닥에 엎드려 어깨를 잘게 떨었다.
심야의 행차.
그것도 금역(禁域)이나 다름없는 대비전을 향한 발걸음은,
조선의 법도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파격이었다.
“길을 열어라.”
내 목소리는 낮았으나 얼어붙은 복도를 울리기에 충분했다.
“전하의 행차이시다! 모두 머리를 조아려라!”
내관의 외침이 밤의 정적을 찢었다.
문이 열리자 서늘한 밤바람이 내 용포 자락을 거칠게 휘감았다.
나의 보폭은 작았으나, 그 무게는 태산과 같았다.
회랑마다 도열한 장용영 무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철컥, 철컥.
그들은 이제 나를 '어린 주상'이 아닌,
자신들의 목숨을 맡길 '진정한 군주'로 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경배를 뒤로하고 단호하게 대비전을 향해 나아갔다.
철창 없는 감옥의 문
대비전(자경전) 앞에는 백동수가 쇠기둥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그는 내가 올 것을 이미 예견한 듯,
깊은 눈으로 나를 맞이하며 허리를 숙였다.
“전하.”
“안에 있느냐.”
“...예, 전하. 독 안에 든 쥐처럼,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거대한 문을 가리켰다.
“열어라.”
백동수의 눈에 한순간 망설임이 스쳤다.
이 문을 여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여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마지막 성역을 무너뜨리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내 나의 서슬 퍼런 눈빛에 압도되어 절도 있게 손짓했다.
드르륵— 쾅.
문이 열리자마자 전각 안의 화려한 등불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 눈부신 빛의 중앙, 정순왕후가 단좌해 있었다.
그녀는 이미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왕과 대비, 최후의 대면
방 안의 공기는 마치 얼음물을 들이킨 듯 차가웠다.
나는 천천히, 한 걸음씩 그녀의 사정거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등 뒤로 장용영 무사들이 문을 폐쇄하며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제 이곳은 궁 안의 또 다른 국문장이었다.
“...전하.”
정순왕후가 먼저 입을 뗐다.
목소리는 우아했으나 그 안에는 날 선 독이 숨겨져 있었다.
“밤이 이토록 깊었는데,
예법도 잊고 대비전까지 어인 발걸음이옵니까?”
나는 대답 대신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수십 년간 정적들을 시신으로 만들어온 그 노련한 눈동자.
나는 그녀의 앞에 멈춰 서서 나직하게 읊조렸다.
“심환지가 자백하였다.”
순간, 그녀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찰나의 흔들림이었으나, 나는 놓치지 않았다.
“대비마마의 이름을, 그 더러운 입술로 뱉어냈단 말이다.”
전각 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완전한 침묵에 잠겼다. 정
순왕후의 눈에 서려 있던 여유가 서서히 걷히고,
그 자리에 시퍼런 분노가 차올랐다.
“...전하.
대관절 누가 전하의 귀를,
그토록 망령된 자들의 거짓말로 어지럽혔단 말이옵니까?”
“누구의 보고도 아니다.”
나는 한 걸음 더 다가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어린아이의 신장이었으나, 내 뿜는 기세는 거인을 압도했다.
“짐이, 직접 들었다.
사경을 헤매는 자의 마지막 진실을 내 귀로 확인했단 말이다.”
정순왕후의 손가락이 옥가락지를 부서질 듯 움켜쥐었다.
그녀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쏘아붙였다.
“...전하께서는 아직 어린 왕이십니다.
정사(政事)의 엄중함과 조정의 무게를 모른 채,
이토록 무례를 범하신다면,
신료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옵니다.”
“조정? 신료?”
나는 코웃음을 쳤다.
“정조대왕을.”
나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 손으로 죽였느냐.”
방 안의 모든 공기가 굳어버렸다.
백동수의 손이 칼자루 위에서 미세하게 긴장했고,
엎드려 있던 내관들은 공포에 질려 숨을 멈췄다.
정순왕후는 이제 가식의 가면을 벗어던졌다.
그녀의 눈이 섬뜩한 안광을 내뿜으며 열렸다.
나는 더 이상 보좌에 앉아 보고를 기다리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침전의 육중한 문 앞에 섰다.
내관들이 낙엽처럼 바닥에 엎드려 어깨를 잘게 떨었다.
심야의 행차.
그것도 금역(禁域)이나 다름없는 대비전을 향한 발걸음은,
조선의 법도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파격이었다.
“길을 열어라.”
내 목소리는 낮았으나 얼어붙은 복도를 울리기에 충분했다.
“전하의 행차이시다! 모두 머리를 조아려라!”
내관의 외침이 밤의 정적을 찢었다.
문이 열리자 서늘한 밤바람이 내 용포 자락을 거칠게 휘감았다.
나의 보폭은 작았으나, 그 무게는 태산과 같았다.
회랑마다 도열한 장용영 무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철컥, 철컥.
그들은 이제 나를 '어린 주상'이 아닌,
자신들의 목숨을 맡길 '진정한 군주'로 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경배를 뒤로하고 단호하게 대비전을 향해 나아갔다.
철창 없는 감옥의 문
대비전(자경전) 앞에는 백동수가 쇠기둥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그는 내가 올 것을 이미 예견한 듯,
깊은 눈으로 나를 맞이하며 허리를 숙였다.
“전하.”
“안에 있느냐.”
“...예, 전하. 독 안에 든 쥐처럼,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거대한 문을 가리켰다.
“열어라.”
백동수의 눈에 한순간 망설임이 스쳤다.
이 문을 여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여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마지막 성역을 무너뜨리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내 나의 서슬 퍼런 눈빛에 압도되어 절도 있게 손짓했다.
드르륵— 쾅.
문이 열리자마자 전각 안의 화려한 등불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 눈부신 빛의 중앙, 정순왕후가 단좌해 있었다.
그녀는 이미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왕과 대비, 최후의 대면
방 안의 공기는 마치 얼음물을 들이킨 듯 차가웠다.
나는 천천히, 한 걸음씩 그녀의 사정거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등 뒤로 장용영 무사들이 문을 폐쇄하며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제 이곳은 궁 안의 또 다른 국문장이었다.
“...전하.”
정순왕후가 먼저 입을 뗐다.
목소리는 우아했으나 그 안에는 날 선 독이 숨겨져 있었다.
“밤이 이토록 깊었는데,
예법도 잊고 대비전까지 어인 발걸음이옵니까?”
나는 대답 대신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수십 년간 정적들을 시신으로 만들어온 그 노련한 눈동자.
나는 그녀의 앞에 멈춰 서서 나직하게 읊조렸다.
“심환지가 자백하였다.”
순간, 그녀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찰나의 흔들림이었으나, 나는 놓치지 않았다.
“대비마마의 이름을, 그 더러운 입술로 뱉어냈단 말이다.”
전각 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완전한 침묵에 잠겼다. 정
순왕후의 눈에 서려 있던 여유가 서서히 걷히고,
그 자리에 시퍼런 분노가 차올랐다.
“...전하.
대관절 누가 전하의 귀를,
그토록 망령된 자들의 거짓말로 어지럽혔단 말이옵니까?”
“누구의 보고도 아니다.”
나는 한 걸음 더 다가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어린아이의 신장이었으나, 내 뿜는 기세는 거인을 압도했다.
“짐이, 직접 들었다.
사경을 헤매는 자의 마지막 진실을 내 귀로 확인했단 말이다.”
정순왕후의 손가락이 옥가락지를 부서질 듯 움켜쥐었다.
그녀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쏘아붙였다.
“...전하께서는 아직 어린 왕이십니다.
정사(政事)의 엄중함과 조정의 무게를 모른 채,
이토록 무례를 범하신다면,
신료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옵니다.”
“조정? 신료?”
나는 코웃음을 쳤다.
“정조대왕을.”
나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 손으로 죽였느냐.”
방 안의 모든 공기가 굳어버렸다.
백동수의 손이 칼자루 위에서 미세하게 긴장했고,
엎드려 있던 내관들은 공포에 질려 숨을 멈췄다.
정순왕후는 이제 가식의 가면을 벗어던졌다.
그녀의 눈이 섬뜩한 안광을 내뿜으며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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