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 피로 쓴 고백, 권력의 민낯
조회 : 31 추천 : 0 글자수 : 2,017 자 2026-02-27
의금부 지하 옥사는 죽음보다 깊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돌벽은 죄수들의 신음 대신 축축한 습기를 머금고 있었고,
가끔씩 타오르는 횃불만이 기괴한 그림자를 벽면에 일렁이게 했다.
그 어둠의 중심에 심환지가 앉아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칼과 구겨진 관복 너머로,
한때 조선을 호령하던 영의정의 위엄은 간데없었다.
그러나 그의 눈만은 여전히 눕지 않은 짐승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정적은 폭풍 전의 고요이며,
왕의 칼날이 다시금 자신의 목줄기를 겨누러 올 것임을.
철커덩—.
육중한 철문이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장용영 무사들의 발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심환지는 천천히 눈을 떴다.
“심환지.
주상 전하의 친국(親鞠)이 시작되었다. 일어서라.”
무사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동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심환지는 비릿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손목에 채워진 쇠사슬이 차가운 비명을 질렀다.
그는 저항하지 않았다. 도망칠 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그는 이제 마지막 패를 던져야 한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국문장(鞠問場)은 낮보다 더 밝은 등불로 가득했다.
그 인위적인 광휘 아래서는 어떤 거짓도,
어떤 그림자도 숨을 곳이 없었다.
나는 보좌에 앉아 들어오는 그를 맞이했다.
내 옆에는 칼처럼 선 백동수가,
그 뒤로는 떨리는 손으로 붓을 쥔 사관과 내관들이 배치되었다.
죄인 심환지가 들어와 바닥에 엎드렸다.
쇠사슬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심환지.”
나의 부름에 그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의 눈 속에 깃든 노련한 피로를 읽었다.
“다시 묻겠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
정순왕후가 네게 직접 명하였느냐.”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심환지는 나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마치 내 안의 깊이를 마지막으로 가늠해보려는 듯했다.
마침내, 그의 갈라진 입술이 열렸다.
“...그러하옵니다.
대비마마의 조칙(詔勅)이 없었다면,
소신이 어찌 하늘을 범하는 대역을 꿈꾸었겠사옵니까.”
나는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압박했다.
“방법은.
아바바마의 숨을 어떻게 끊었느냐.”
“의관들에게 약재를 바꾸라 명하였사옵니다.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단숨에 숨을 거두는 독이 아니라,
천천히... 마치 병세가 악화되어 기력이 다하는 것처럼 보일 만큼,
아주 미세한 독기를 매일같이 주입하게 하였사옵니다.”
심환지의 목소리는 낮고 덤덤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듣는 이의 심장을 도려내는 비수였다.
곁에 서 있던 백동수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고,
사관의 붓끝에서는 검은 먹물이 눈물처럼 떨어졌다.
권력이라는 괴물
“이유가 무엇이냐.
일국의 영의정으로서,
그리고 왕실의 어른으로서 대체 무엇을 위해 아버님을 죽였단 말이냐!”
나의 일갈에 심환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나를 보았다.
그 눈은 광기에 찬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지독하게 현실적인 정객의 것이었다.
“…권력(權力)이옵니다, 전하.”
그는 마치 어린아이에게 세상을 가르치듯 나직하게 읊조렸다.
“권력은 결코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옵니다.
전하께서도 이제 아시게 되겠지요.
보좌 아래 깔린 주단(綢緞)이 왜 붉은색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흘린,
수많은 이들의 피를 가리기 위함이옵니다.
정조대왕은 너무 강하셨고, 저희는 살아남아야 했사옵니다.”
“그 비겁한 생존을 위해 나라의 기둥을 뽑았단 말이냐.”
“조선은... 원래 피 위에 세워진 나라옵니다.
소신은 그저 그 법칙을 따랐을 뿐이옵니다.”
침묵이 흘렀다.
나는 더 이상 그의 궤변을 들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사관을 보았다.
“기록하라.
죄인 심환지는 대비 정순왕후의 교사를 받아,
선왕 정조대왕을 계획적으로 독살했음을 자백하였다.”
붓이 종이 위를 거칠게 긁어 내려갔다.
이것은 한 남자의 죄상이자, 천 년을 이어갈 단죄의 기록이었다.
“데려가라. 이 자를 철저히 격리하고,
다음은 대비전의 문을 열 것이다.”
무사들이 심환지를 끌고 나갔다.
문이 닫히고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나는 흔들리는 등불 아래 내 작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권력이 피 위에 세워지는 것이라면,
나는 그 피로 이 썩은 나라를 씻어내리라 맹세했다.
‘정순왕후.
이제 당신이 쌓아 올린 피의 탑이 당신을 무너뜨릴 것이다.’
돌벽은 죄수들의 신음 대신 축축한 습기를 머금고 있었고,
가끔씩 타오르는 횃불만이 기괴한 그림자를 벽면에 일렁이게 했다.
그 어둠의 중심에 심환지가 앉아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칼과 구겨진 관복 너머로,
한때 조선을 호령하던 영의정의 위엄은 간데없었다.
그러나 그의 눈만은 여전히 눕지 않은 짐승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정적은 폭풍 전의 고요이며,
왕의 칼날이 다시금 자신의 목줄기를 겨누러 올 것임을.
철커덩—.
육중한 철문이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장용영 무사들의 발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심환지는 천천히 눈을 떴다.
“심환지.
주상 전하의 친국(親鞠)이 시작되었다. 일어서라.”
무사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동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심환지는 비릿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손목에 채워진 쇠사슬이 차가운 비명을 질렀다.
그는 저항하지 않았다. 도망칠 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그는 이제 마지막 패를 던져야 한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국문장(鞠問場)은 낮보다 더 밝은 등불로 가득했다.
그 인위적인 광휘 아래서는 어떤 거짓도,
어떤 그림자도 숨을 곳이 없었다.
나는 보좌에 앉아 들어오는 그를 맞이했다.
내 옆에는 칼처럼 선 백동수가,
그 뒤로는 떨리는 손으로 붓을 쥔 사관과 내관들이 배치되었다.
죄인 심환지가 들어와 바닥에 엎드렸다.
쇠사슬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심환지.”
나의 부름에 그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의 눈 속에 깃든 노련한 피로를 읽었다.
“다시 묻겠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
정순왕후가 네게 직접 명하였느냐.”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심환지는 나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마치 내 안의 깊이를 마지막으로 가늠해보려는 듯했다.
마침내, 그의 갈라진 입술이 열렸다.
“...그러하옵니다.
대비마마의 조칙(詔勅)이 없었다면,
소신이 어찌 하늘을 범하는 대역을 꿈꾸었겠사옵니까.”
나는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압박했다.
“방법은.
아바바마의 숨을 어떻게 끊었느냐.”
“의관들에게 약재를 바꾸라 명하였사옵니다.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단숨에 숨을 거두는 독이 아니라,
천천히... 마치 병세가 악화되어 기력이 다하는 것처럼 보일 만큼,
아주 미세한 독기를 매일같이 주입하게 하였사옵니다.”
심환지의 목소리는 낮고 덤덤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듣는 이의 심장을 도려내는 비수였다.
곁에 서 있던 백동수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고,
사관의 붓끝에서는 검은 먹물이 눈물처럼 떨어졌다.
권력이라는 괴물
“이유가 무엇이냐.
일국의 영의정으로서,
그리고 왕실의 어른으로서 대체 무엇을 위해 아버님을 죽였단 말이냐!”
나의 일갈에 심환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나를 보았다.
그 눈은 광기에 찬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지독하게 현실적인 정객의 것이었다.
“…권력(權力)이옵니다, 전하.”
그는 마치 어린아이에게 세상을 가르치듯 나직하게 읊조렸다.
“권력은 결코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옵니다.
전하께서도 이제 아시게 되겠지요.
보좌 아래 깔린 주단(綢緞)이 왜 붉은색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흘린,
수많은 이들의 피를 가리기 위함이옵니다.
정조대왕은 너무 강하셨고, 저희는 살아남아야 했사옵니다.”
“그 비겁한 생존을 위해 나라의 기둥을 뽑았단 말이냐.”
“조선은... 원래 피 위에 세워진 나라옵니다.
소신은 그저 그 법칙을 따랐을 뿐이옵니다.”
침묵이 흘렀다.
나는 더 이상 그의 궤변을 들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사관을 보았다.
“기록하라.
죄인 심환지는 대비 정순왕후의 교사를 받아,
선왕 정조대왕을 계획적으로 독살했음을 자백하였다.”
붓이 종이 위를 거칠게 긁어 내려갔다.
이것은 한 남자의 죄상이자, 천 년을 이어갈 단죄의 기록이었다.
“데려가라. 이 자를 철저히 격리하고,
다음은 대비전의 문을 열 것이다.”
무사들이 심환지를 끌고 나갔다.
문이 닫히고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나는 흔들리는 등불 아래 내 작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권력이 피 위에 세워지는 것이라면,
나는 그 피로 이 썩은 나라를 씻어내리라 맹세했다.
‘정순왕후.
이제 당신이 쌓아 올린 피의 탑이 당신을 무너뜨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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