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은 어떠한 서사도 내뱉지 않았다. 다만, 내게 죽여줄 수 있냐고 물었다. 목적어가 없는 질문임에도 나는 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리 답할 수밖에 없었다.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연은 나를 끌어 안은 채로 곧바로 잠에 들었다. 그녀의 품 속에서 나는, 정말로 인형이 된 듯해서 도저히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날 밤,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연은 사라져 있었다. 침대 옆 자그마한 탁자 위엔 저주를 실행하라고 적힌 포스트잇과 낯선 여자아이의 사진이 놓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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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를 실행하기 위해선 두가지만 있으면 된다. 타겟의 얼굴 사진과 나의 피. 내 피가 가득 담긴 바구니에 사진을 하루 정도 담가두면, 저주가 실행된다. 저주가 어떠한 형식으로 나타나는 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타겟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크면 클수록 저주의 수위도 높아져 간다는 것은 확실하다. 연이 원하는 것이 죽음이라면, 그 사진 속 여자아이는 죽을 것이다.
나는 박사님께서 주셨던 칼로 몸을 긋는다. 피. 검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저주를 위해선 조금 더 많이. 최대한 많이.
기어코 기절하고서 눈을 떴을 때, 나는 침대 위에 놓여져 있었다. 상처 난 부위들엔 붕대가 감겨져 있었고, 내 옆에 연이 어젯밤처럼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연에게 피냄새가 역하지 않냐고 물었다. 연은 오히려 좋다고 답했다. 그 말에 나는 안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다시 찾아온 밤. 나는 이번엔 쉬이 잠들 수 있었다. 역하지 않은 피냄새와 내 허리를 감싸는 연의 팔과 누구의 것인지 모를 조용한 숨소리 덕에. 왜인지 저주는 연의 마음속 불안 뿐만 아니라 나의 불안까지도 가져가버린 것 같았다. 희한할 정도로 마음이 고요했다.
그리고 또다시 찾아온 낮. 침대 옆 자그마한 테이블엔 어제와 같은 내용이 적힌 포스트잇과, 달라진 얼굴의 사진이 놓여져 있었다. 이번에도 연은 방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