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조회 : 1,014 추천 : 0 글자수 : 4,360 자 2022-07-20
황무영 선배가 나를 끌고 간 곳은 국퇴교 부속병원의 진료실이었다.
“선배, 갑자기 웬 정신 감정이에요?”
“학교 지침이야.”
“제가 협조를 안 하면요?”
내가 지금이라도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기숙사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자 황무영이 내 어깨를 내리누르며 살벌하게 말했다.
“네가 협조를 안 하면 너를 기절시켜서라도 검사를 시키라고 하는 것을 봐서는 정부에서 명령이 내려온 거겠지. 그러니 순순히 협조하는 게 네게도 좋을 거야.”
머리를 뒤덮은 황무영의 로브 안에서 그녀의 눈이 나를 매섭게 노려보는 것 같았다. 물론 실제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번에 잠시 봤던 그녀의 [쌍심지의 눈]을 다시 마주한 느낌이었다.
나는 기숙사 방에서 세상 모르고 잠든 이재경을 무진장 부러워하며 저항하기를 포기했다.
“휴...선배, 그래서 검사는 어떻게 진행하는 건데요?”
“일단 이것부터 보자.”
황무영이 컴퓨터를 켜자 홀로그램으로 영상 하나가 떴다. 금지구역, 인천에서 국속퇴마단원들과 싸우던 영상이었다.
“이건 언제 찍었데요?”
“아직 네가 신입이라 모르나 본데, 정부는 학교 안팎으로 우리가 벌이는 모든 퇴마 활동을 녹화영상으로 기록해 놔. 이번에도 국속퇴마단이 파견을 떠날 때부터 그들에게 영상 촬영용 미니 드론을 딸려 보냈지.”
학교 안에서의 활동은 전부 정부로 보고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 밖에서도 그럴 줄 몰랐다.
하긴, 내가 전생에는 아예 퇴마단원이 될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활동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관심도 없었다.
나와 황무영은 침묵 속에서 녹화영상을 확인했다.
분명 홀로그램의 화면 속의 사람은 나였다. 하지만 맨정신으로 보고 있자니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그만큼 [바이킹의 정신]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당시의 나는 미치도록 잔인한 인간이었다.
혼령의 피가 고프다.
당시에 혼몽한 머리를 가득 메웠던 소름끼치는 욕망이 떠올랐다. 내 무의식은 그것을 거부하고 싶었는지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완전히 잊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사이키 형 혼령들의 사체를 무자비하게 훼손하는 내 모습을 보며 황무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음...이걸 보니 상부에서 네 정신 감정을 요청한 이유를 알겠다.”
제정신으로는 내 행각을 지켜보기가 힘들 정도였기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제가 위험인물인지를 확인해오라는 거지요?”
“뭐, 그런 셈이지.”
“절대로 오해하지 마세요. 저 절대 저런 사람 아니에요. 저건 지극히 환각제의 영향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었다고요.”
“아무리 그래도 환각제가 없는 본능을 새로 만들어내지는 않으니까.”
“제 안에 저 홀로그램 속의 미친놈이 존재한다는 거에요?”
“그런 셈이지. 일단 감정부터 해보자.”
황무영의 손에서 난데없이 메스 하나가 나타났다.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의학도의 메스].
저것이 순전히 공격용 도구로만 쓰이는 퍼니셔 적성 아이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스킬명에 걸맞게 의료용으로도 쓸 수 있는 것인가보다.
“선배님, 설마 그걸로 제 머리를 가르거나 하지시는 않겠죠?”
창문으로 스며드는 대낮의 햇살이 황무영의 메스에 살벌하게 반사됐다. 나는 그것을 불안한 눈길로 바라봤다.
“당연히 아니지. 근데 찌르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가만히 있어 봐. 얼마 안 걸릴 거야.”
“아니, 선배...잠시만...요?”
내가 황무영을 저지하려고 하는 새에 황무영이 빛의 속도로 메스를 내 머리에 꽂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목덜미와 머리가 이어지는 부분이었다.
뿌드득.
날선 메스가 내 경추와 두개골 사이를 파고드는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강력한 통증이 밀려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의외로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내가 목덜미에 메스가 꽂힌 채로 멀뚱히 황무영을 바라보자 그녀가 설명했다.
“메스를 통해 정신감정 프로그램을 돌리는 중이야. 메스가 자동으로 너를 마취시켜서 느낌이 불편하지는 않을 거야. 조금 있다 컴퓨터 화면에 결과가 뜨면 너도 보여줄게.”
잠시 후, 황무영이 메스를 걷어가며 찔렀던 자리에 반찬고 하나를 붙여줬다.
여전히 통증은 안 느껴졌지만 진료실의 거울을 통해 목덜미를 확인하니 반찬고를 붙인 자리 밑으로 약간의 피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선배님, 원래 이 자리는 칼 맞으면 뒈지는 곳 아닌가요?”
“일반 칼로 찌르면 그렇겠지. 그러니까 따라 할 생각은 말아.”
나는 황무영의 농담 같지도 않은 농담에 아연 해하며 컴퓨터에 검사 결과가 뜨기를 기다렸다. 황무영은 메스가 마치 USB인 것처럼 그것을 컴퓨터에 자연스럽게 꽂았다.
컴퓨터 본체는 메스에 묻어있는 내 피를 흡수하더니 결과치를 띄웠다.
“흐음........”
“왜요, 선배님? 뭐, 문제 있어요?”
“아니...문제까지는 아니고...좀 의외라.......”
“뭐가요?”
“정신감정검사 결과지를 보면 네 잠재 폭력성이 상당히 높은 편인데? 도덕성은 또 낮고. 환각제의 영향 아래에서 영상 속의 모습을 보였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겠어.”
“저 굉장히 도덕적으로 산다고 자부하는데요? 한 번도 범법을 한 적이 없어요!”
나는 황당해하며 외쳤다.
“나도 그래서 결과가 의외라는 거야. 표출된 성격과 잠재된 성격의 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거든.”
“그럼 저는 잠재적 범죄자의 정신을 갖고 있다는 말인가요?”
“그런 셈이라고 해야 하나?”
“윗선에는 그런 식으로 보고를 올릴 건가요?”
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내가 잠재적 범죄자라는 보고가 위로 올라가면 내가 국속퇴마단원으로 뽑힐 가능성은 떨어질 것이다.
“잠재적 범죄성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해서 꼭 위험인물로 지정되는 것은 아니야. 이건 어디까지나 네가 앞으로 현장에 다시 투여될 때 환각제 사용을 자제시키는 근거자료가 될 가능성이 커. 그러니 긴장 풀어.”
“선배가 그걸 어떻게 장담해요?”
“왜냐하면, 나도 잠재적 폭력성이 상당히 높게 나왔거든. 내 도덕성이야 너와 다르게 원래 대놓고 낮은 편이었고. 나는 성격도 대놓고 지랄 맞아서 위험인물로 찍힐 뻔하다 말았어.”
저렇게 말하면 나도 할 말은 없었다. 뭐, 선배가 괜찮다면 괜찮겠지.
“그럼 저 이제 가도 돼요?”
“응. 근데 이왕 이렇게 정신감정을 한 것, 한 가지만 명심해.”
“뭐요?”
“잠재성 성향은 네가 통제를 잃으면 수면 위로 나타나게 돼 있어. 그러니 너도 아까의 홀로그램 속의 사람이 안 되고 싶으면 조심하는 게 좋겠지.”
황무영은 마치 내가 당시에 혼령들의 피를 탐했다는 사실까지 전부 아는 것 같은 태도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선배님.”
나는 다시 떠오르는 그 섬뜩한 욕망에 몸서리치며 진료실을 나왔다.
* * *
나는 기숙사 방바닥에 깔아놓은 이불 위에 누웠다. 여전히 내 옆에서는 이재경이 코를 신나게 골고 있었다.
잠을 방해할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였지만 이재경을 탓할 수는 없었다. 현장에 끌려나가면서 우리 모두 어지간히 피로가 쌓였기 때문이다.
어차피 생각도 복잡해져서 잠들기는 틀렸다. 나는 양손으로 귀를 막고 본격적으로 머리를 굴려봤다.
정부가 내 정신감정 결과를 받아보고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도 요주의 인물로 예의주시할 것이다. 내가 그들의 통제를 잘 따르는 인물로 보이면 상당히 좋아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대의를 위해 희생시켜야 할 존재로 여길 것이다.
그러니 결론은 하나였다. 앞으로 정부의 입맛대로 잘 움직일 것 같은 인물의 행세를 해야 했다. 도깨비를 처리하기 전에 정부의 손에 먼저 처리되면 안 되니까.
벌써 창밖의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곧 수업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숙사 방안으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교내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신입생들은 전부 대강의실로 모이십시오. 통합수업을 진행하겠습니다.”
나는 피곤한 눈을 비비며 이불에서 마지못해 일어났다.
* * *
대강의실에 우리 학년 신입생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었다. 우리가 앉아 있을 의자가 마땅히 없었기에 전부 서 있었다.
갑자기 학생들의 사이가 자연스럽게 갈라지면서 길을 만들었다. 그 길로 나온 인물은 바로 양화주 선생이었다.
“오늘의 통합수업은 내가 맡기로 했다.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갑구나.”
양화주 선생이 인사를 하자, 학생들이 열광했다. 나와 이재경, 최만혁과 방성환이 인천 현장에 파견 나가 있는 동안 양화주 선생은 학생들에게 이론 수업을 해주며 많은 인기를 쌓았던 모양이다.
“오늘은 새로운 혼령의 형태에 대해 배울 것이다. 항상 이론으로만 수업을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실전을 함께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양화주 선생의 말에 학생들이 불안하게 그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그것은 은으로 만들어진 관이었다. 그리고 안에서 간혹 관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 저 안에 있는 혼령의 종류를 알아맞힐 사람?”
양화주 선생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혼령의 종류는 알아맞힐 수 없어도 저 안에 있는 존재가 위험하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관의 뚜껑 사이로 위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아무도 없나? 이거 실망인데. 그럼 오랜만에 내 수업을 참가한 강기찬 학생! 대표로 나와서 이 혼령을 상대하는 영광을 받아들이겠나?”
“네?”
나는 갑작스러운 호명에 당황했다. 양화주 선생은 내 반응을 예상했다는 것처럼 피식 웃었다.
“자네가 현장에서 만났던 존재들만큼 위험하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말게.”
“네, 선생님.”
나는 우선 대강의실의 강단 위로 올라갔다. 양화주 선생은 다른 학생들을 시켜서 관짝을 내 앞으로 끌고 왔다.
“강기찬 학생, 혼령을 마주할 마음의 준비는 됐나?”
양화주 선생이 내 주위를 천천히 돌며 물었다. 그러다 나만 들리는 소리로 속삭였다.
“혼령을 상대하기 전에 이것부터 먹어두는 게 좋을 거다.”
“이게 뭐인....?”
“[바이킹의 정신]을 섭취했었다며? 그거 우리 선조가 만든 작품이야. 훌륭한 약이지. 근데 뒷탈이 좀 있어. 그러니 이걸로 속 한번 씻어내게. 다른 애들도 나눠주고.”
어느새 내 손 안에는 네 개의 환약이 쥐어져 있었다.
환약에 대한 의심은 들었으나 그것을 딱히 먹지 않을 핑계는 떠오르지 않았다.
설마 이 선생이 나를 이렇게 많은 학생 앞에서 죽이겠어?
나는 환약 하나를 입안으로 던져넣었다. 그러자 곧장 피로가 풀리면서 머리가 맑아졌다. 웬만큼 자는 것보다도 몸 상태가 더 좋아진 것 같았다.
나는 신기해하며 양화주 선생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물론 우리 둘만 들릴 정도의 작은 소리였다.
“그럼, 강기찬 학생, 관을 열어보게!”
나는 양화주 선생의 지시에 따라 속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관의 뚜껑에 손을 올렸다.
“선배, 갑자기 웬 정신 감정이에요?”
“학교 지침이야.”
“제가 협조를 안 하면요?”
내가 지금이라도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기숙사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자 황무영이 내 어깨를 내리누르며 살벌하게 말했다.
“네가 협조를 안 하면 너를 기절시켜서라도 검사를 시키라고 하는 것을 봐서는 정부에서 명령이 내려온 거겠지. 그러니 순순히 협조하는 게 네게도 좋을 거야.”
머리를 뒤덮은 황무영의 로브 안에서 그녀의 눈이 나를 매섭게 노려보는 것 같았다. 물론 실제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번에 잠시 봤던 그녀의 [쌍심지의 눈]을 다시 마주한 느낌이었다.
나는 기숙사 방에서 세상 모르고 잠든 이재경을 무진장 부러워하며 저항하기를 포기했다.
“휴...선배, 그래서 검사는 어떻게 진행하는 건데요?”
“일단 이것부터 보자.”
황무영이 컴퓨터를 켜자 홀로그램으로 영상 하나가 떴다. 금지구역, 인천에서 국속퇴마단원들과 싸우던 영상이었다.
“이건 언제 찍었데요?”
“아직 네가 신입이라 모르나 본데, 정부는 학교 안팎으로 우리가 벌이는 모든 퇴마 활동을 녹화영상으로 기록해 놔. 이번에도 국속퇴마단이 파견을 떠날 때부터 그들에게 영상 촬영용 미니 드론을 딸려 보냈지.”
학교 안에서의 활동은 전부 정부로 보고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 밖에서도 그럴 줄 몰랐다.
하긴, 내가 전생에는 아예 퇴마단원이 될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활동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관심도 없었다.
나와 황무영은 침묵 속에서 녹화영상을 확인했다.
분명 홀로그램의 화면 속의 사람은 나였다. 하지만 맨정신으로 보고 있자니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그만큼 [바이킹의 정신]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당시의 나는 미치도록 잔인한 인간이었다.
혼령의 피가 고프다.
당시에 혼몽한 머리를 가득 메웠던 소름끼치는 욕망이 떠올랐다. 내 무의식은 그것을 거부하고 싶었는지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완전히 잊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사이키 형 혼령들의 사체를 무자비하게 훼손하는 내 모습을 보며 황무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음...이걸 보니 상부에서 네 정신 감정을 요청한 이유를 알겠다.”
제정신으로는 내 행각을 지켜보기가 힘들 정도였기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제가 위험인물인지를 확인해오라는 거지요?”
“뭐, 그런 셈이지.”
“절대로 오해하지 마세요. 저 절대 저런 사람 아니에요. 저건 지극히 환각제의 영향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었다고요.”
“아무리 그래도 환각제가 없는 본능을 새로 만들어내지는 않으니까.”
“제 안에 저 홀로그램 속의 미친놈이 존재한다는 거에요?”
“그런 셈이지. 일단 감정부터 해보자.”
황무영의 손에서 난데없이 메스 하나가 나타났다.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의학도의 메스].
저것이 순전히 공격용 도구로만 쓰이는 퍼니셔 적성 아이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스킬명에 걸맞게 의료용으로도 쓸 수 있는 것인가보다.
“선배님, 설마 그걸로 제 머리를 가르거나 하지시는 않겠죠?”
창문으로 스며드는 대낮의 햇살이 황무영의 메스에 살벌하게 반사됐다. 나는 그것을 불안한 눈길로 바라봤다.
“당연히 아니지. 근데 찌르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가만히 있어 봐. 얼마 안 걸릴 거야.”
“아니, 선배...잠시만...요?”
내가 황무영을 저지하려고 하는 새에 황무영이 빛의 속도로 메스를 내 머리에 꽂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목덜미와 머리가 이어지는 부분이었다.
뿌드득.
날선 메스가 내 경추와 두개골 사이를 파고드는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강력한 통증이 밀려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의외로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내가 목덜미에 메스가 꽂힌 채로 멀뚱히 황무영을 바라보자 그녀가 설명했다.
“메스를 통해 정신감정 프로그램을 돌리는 중이야. 메스가 자동으로 너를 마취시켜서 느낌이 불편하지는 않을 거야. 조금 있다 컴퓨터 화면에 결과가 뜨면 너도 보여줄게.”
잠시 후, 황무영이 메스를 걷어가며 찔렀던 자리에 반찬고 하나를 붙여줬다.
여전히 통증은 안 느껴졌지만 진료실의 거울을 통해 목덜미를 확인하니 반찬고를 붙인 자리 밑으로 약간의 피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선배님, 원래 이 자리는 칼 맞으면 뒈지는 곳 아닌가요?”
“일반 칼로 찌르면 그렇겠지. 그러니까 따라 할 생각은 말아.”
나는 황무영의 농담 같지도 않은 농담에 아연 해하며 컴퓨터에 검사 결과가 뜨기를 기다렸다. 황무영은 메스가 마치 USB인 것처럼 그것을 컴퓨터에 자연스럽게 꽂았다.
컴퓨터 본체는 메스에 묻어있는 내 피를 흡수하더니 결과치를 띄웠다.
“흐음........”
“왜요, 선배님? 뭐, 문제 있어요?”
“아니...문제까지는 아니고...좀 의외라.......”
“뭐가요?”
“정신감정검사 결과지를 보면 네 잠재 폭력성이 상당히 높은 편인데? 도덕성은 또 낮고. 환각제의 영향 아래에서 영상 속의 모습을 보였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겠어.”
“저 굉장히 도덕적으로 산다고 자부하는데요? 한 번도 범법을 한 적이 없어요!”
나는 황당해하며 외쳤다.
“나도 그래서 결과가 의외라는 거야. 표출된 성격과 잠재된 성격의 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거든.”
“그럼 저는 잠재적 범죄자의 정신을 갖고 있다는 말인가요?”
“그런 셈이라고 해야 하나?”
“윗선에는 그런 식으로 보고를 올릴 건가요?”
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내가 잠재적 범죄자라는 보고가 위로 올라가면 내가 국속퇴마단원으로 뽑힐 가능성은 떨어질 것이다.
“잠재적 범죄성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해서 꼭 위험인물로 지정되는 것은 아니야. 이건 어디까지나 네가 앞으로 현장에 다시 투여될 때 환각제 사용을 자제시키는 근거자료가 될 가능성이 커. 그러니 긴장 풀어.”
“선배가 그걸 어떻게 장담해요?”
“왜냐하면, 나도 잠재적 폭력성이 상당히 높게 나왔거든. 내 도덕성이야 너와 다르게 원래 대놓고 낮은 편이었고. 나는 성격도 대놓고 지랄 맞아서 위험인물로 찍힐 뻔하다 말았어.”
저렇게 말하면 나도 할 말은 없었다. 뭐, 선배가 괜찮다면 괜찮겠지.
“그럼 저 이제 가도 돼요?”
“응. 근데 이왕 이렇게 정신감정을 한 것, 한 가지만 명심해.”
“뭐요?”
“잠재성 성향은 네가 통제를 잃으면 수면 위로 나타나게 돼 있어. 그러니 너도 아까의 홀로그램 속의 사람이 안 되고 싶으면 조심하는 게 좋겠지.”
황무영은 마치 내가 당시에 혼령들의 피를 탐했다는 사실까지 전부 아는 것 같은 태도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선배님.”
나는 다시 떠오르는 그 섬뜩한 욕망에 몸서리치며 진료실을 나왔다.
* * *
나는 기숙사 방바닥에 깔아놓은 이불 위에 누웠다. 여전히 내 옆에서는 이재경이 코를 신나게 골고 있었다.
잠을 방해할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였지만 이재경을 탓할 수는 없었다. 현장에 끌려나가면서 우리 모두 어지간히 피로가 쌓였기 때문이다.
어차피 생각도 복잡해져서 잠들기는 틀렸다. 나는 양손으로 귀를 막고 본격적으로 머리를 굴려봤다.
정부가 내 정신감정 결과를 받아보고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도 요주의 인물로 예의주시할 것이다. 내가 그들의 통제를 잘 따르는 인물로 보이면 상당히 좋아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대의를 위해 희생시켜야 할 존재로 여길 것이다.
그러니 결론은 하나였다. 앞으로 정부의 입맛대로 잘 움직일 것 같은 인물의 행세를 해야 했다. 도깨비를 처리하기 전에 정부의 손에 먼저 처리되면 안 되니까.
벌써 창밖의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곧 수업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숙사 방안으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교내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신입생들은 전부 대강의실로 모이십시오. 통합수업을 진행하겠습니다.”
나는 피곤한 눈을 비비며 이불에서 마지못해 일어났다.
* * *
대강의실에 우리 학년 신입생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었다. 우리가 앉아 있을 의자가 마땅히 없었기에 전부 서 있었다.
갑자기 학생들의 사이가 자연스럽게 갈라지면서 길을 만들었다. 그 길로 나온 인물은 바로 양화주 선생이었다.
“오늘의 통합수업은 내가 맡기로 했다.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갑구나.”
양화주 선생이 인사를 하자, 학생들이 열광했다. 나와 이재경, 최만혁과 방성환이 인천 현장에 파견 나가 있는 동안 양화주 선생은 학생들에게 이론 수업을 해주며 많은 인기를 쌓았던 모양이다.
“오늘은 새로운 혼령의 형태에 대해 배울 것이다. 항상 이론으로만 수업을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실전을 함께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양화주 선생의 말에 학생들이 불안하게 그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그것은 은으로 만들어진 관이었다. 그리고 안에서 간혹 관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 저 안에 있는 혼령의 종류를 알아맞힐 사람?”
양화주 선생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혼령의 종류는 알아맞힐 수 없어도 저 안에 있는 존재가 위험하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관의 뚜껑 사이로 위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아무도 없나? 이거 실망인데. 그럼 오랜만에 내 수업을 참가한 강기찬 학생! 대표로 나와서 이 혼령을 상대하는 영광을 받아들이겠나?”
“네?”
나는 갑작스러운 호명에 당황했다. 양화주 선생은 내 반응을 예상했다는 것처럼 피식 웃었다.
“자네가 현장에서 만났던 존재들만큼 위험하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말게.”
“네, 선생님.”
나는 우선 대강의실의 강단 위로 올라갔다. 양화주 선생은 다른 학생들을 시켜서 관짝을 내 앞으로 끌고 왔다.
“강기찬 학생, 혼령을 마주할 마음의 준비는 됐나?”
양화주 선생이 내 주위를 천천히 돌며 물었다. 그러다 나만 들리는 소리로 속삭였다.
“혼령을 상대하기 전에 이것부터 먹어두는 게 좋을 거다.”
“이게 뭐인....?”
“[바이킹의 정신]을 섭취했었다며? 그거 우리 선조가 만든 작품이야. 훌륭한 약이지. 근데 뒷탈이 좀 있어. 그러니 이걸로 속 한번 씻어내게. 다른 애들도 나눠주고.”
어느새 내 손 안에는 네 개의 환약이 쥐어져 있었다.
환약에 대한 의심은 들었으나 그것을 딱히 먹지 않을 핑계는 떠오르지 않았다.
설마 이 선생이 나를 이렇게 많은 학생 앞에서 죽이겠어?
나는 환약 하나를 입안으로 던져넣었다. 그러자 곧장 피로가 풀리면서 머리가 맑아졌다. 웬만큼 자는 것보다도 몸 상태가 더 좋아진 것 같았다.
나는 신기해하며 양화주 선생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물론 우리 둘만 들릴 정도의 작은 소리였다.
“그럼, 강기찬 학생, 관을 열어보게!”
나는 양화주 선생의 지시에 따라 속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관의 뚜껑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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