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조회 : 863 추천 : 0 글자수 : 4,481 자 2022-07-20
은색 관은 내 손이 올라가자 더욱 요란하게 울렸다. 마치 이 안에 있는 존재가 나를 인지한 것 같았다.
“이거 어떻게 엽니까?”
내가 양화주 선생에게 묻자 그가 여유롭게 대답했다.
“자네가 그 안에 든 존재를 대면할 마음의 준비가 되면 그것을 열겠다는 의지를 갖고 두드리게.”
온 학생들의 시선이 네게 꽂혀있었다.
이 안에 든 혼령이 대체 어떤 형태이길래 이런 형태의 수업을 하는 거지?
나는 위험해지면 [태풍 속의 파도]를 펼칠 준비를 한 채 관을 두드렸다.
열려라.
끼이익.
낡은 금속 경첩이 힘겹게 움직이는 마찰음과 함께 관의 문이 열렸다.
나는 경계하며 세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관 안에서는 탁한 회색 연기가 불길하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종류의 혼령이었다.
구미호 형 혼령.
구미호 형 혼령은 내가 전생에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고대 민화에서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구미호는 항상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이며 그 여우는 인간의 형태로 사람의 간을 빼먹으려고 한다.
저승의 결계가 열리면서 그 민화는 자연히 고증을 거쳤다.
그 결과, 구미호의 본래 모습은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가 맞았다. 하지만 민화와 일치하는 점은 거기에서 끝났다.
구미호는 변신의 귀재여서 인간 외의 모습들로도 변신할 수 있었다. 더불어 구미호가 가장 탐하는 것은 인간의 간이 아니었다.
생기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혼령들과 비슷한 성향을 띄었다.
그런데도 그리 특이하지 않은 이 혼령이 교과과정에 등장하는 이유를 나는 곧 내 눈앞에서 확인하게 됐다.
“으악!”
학생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구미호는 순식간에 여러 명으로 자신을 분리하더니 학생들 사이로 숨어들었다.
형태변환술과 함께 쓰는 분신술.
이것이 바로 이 형태의 혼령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였다.
곧 학생들이 앉아 있던 자리가 아수라장이 됐다. 너도나도 서로를 믿지 못해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학생들 사이에 자신과 똑같이 생긴 존재가 둘씩 더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야!”
“아니야, 내가 진짜라고!”
“잠깐, 공격 정지! 내 옆에 있는 새끼를 공격해. 쟤가 귀신이야!”
학생들은 곧 자신과 똑같이 생긴 구미호의 분신들과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으면 구미호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생기를 빼앗겨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내 옆으로 나와 똑같이 생긴 놈들이 둘이 더 생겼다.
나는 양화주 선생에게 외쳤다.
“아니, 진짜 구미호 형을 수업시간에 끌고 온 건가요? 학생들을 전부 죽일 생각인 건가요?”
양화주 선생의 주변에도 그와 똑같이 생긴 구미호 분신이 둘이나 더 있었다.
그들 중 어느 자에게 내가 말을 걸었는지는 모르겠다. 셋 다 야구방망이를 치켜들고 서로를 노리고 있었다.
구미호 형 혼령들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하나 더 있었다.
이들은 상대의 외양을 복사하면서 상대의 스킬도 그대로 복사할 수 있었다. 즉, 내 분신들은 나와 같은 스킬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소리였다.
“그렇게 약한 소리를 하면 어쩌나. 강기찬 학생이라면 잘 해결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양화주 선생으로 추측되는 자가 나를 향해 외쳤다.
양화주 선생의 상황을 보고만 있을 여유는 없었다. 나도 내 코가 석 자였으니까.
나는 욕설을 한 번 내뱉고 나와 똑같이 생긴 분신 둘을 향해 도약했다. 그들도 내게 도약했다.
내 괴력까지 똑같이 복사해간 구미호의 분신들이었다. 그들 중 한 놈의 주먹에 맞으니 꽤 아팠다. 하지만 나도 둘 중 한 놈의 배를 발로 차는 데에 성공했다.
“으아아악!”
“야아아압!”
여기저기서 기합 소리가 터져 나왔다. 원래 실력이 비등한 놈들끼리 싸우면 결론이 잘 안 나는 법이었다.
나는 나와 같은 모습의 분신들을 향해 [태풍 속의 파도]를 펼쳤다.
그 둘도 나와 똑같은 스킬을 들고 나왔다.
내가 직접 저 검은 물이 휘감긴 공격에 맞아보고 싶지는 않은데.......
나는 그 생각을 하며 나의 [태풍 속의 파도] 스킬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나를 향해 날아오는 한 놈의 발에서도 시전 됐던 [태풍 속의 파도] 스킬이 꺼졌다.
나는 놈의 발길을 피하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내 분신과 내가 싸우면 결론은 무조건 무승부였다. 이렇게 끝도 없는 싸움을 펼치다 내가 지쳐버리면?
구미호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날렵하게 내 생기를 빨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내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단체로 전투를 벌이게 될 상황이었다면 왜 대강당에 모이라고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운동장이 나았을 상황이었다.
나는 나를 공격하는 구미호 분신 둘을 계속 피해 다니며 주변을 살폈다.
사방에서 기물파손이 벌어지고 있었다. 저들이 이렇게 격정적으로 싸움을 벌이기에는 이 공간이 비좁았다.
그러다 퍼뜩, 생각 하나가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 이유라면 양화주 선생이 나를 앞으로 불러낸 이유가 이해가 됐다.
이 강당으로 모이라고 한 이유도.
나는 나를 내 스킬을 전부 끄고 나를 공격해오는 구미호 분신들을 민첩하게 피했다. 내 공격의 대상을 바꿀 때였다.
이 상황에서 내가 누구를 도와야 가장 효과적일까?
그러다 저 앞에서 싸우고 있는 방성환이 보였다. 그의 주변이 온통 붉은 화염이었다.
분신은 스킬을 복사해간다. 그렇다면 내 [언령]으로 걸려있는 약속도 마찬가지일까?
내가 방성환에게로 뛰어가자 내 모습을 한 분신 둘도 나를 추격했다.
가까이서 보니 방성환의 모습을 한 구미호 분신 둘이 누군지 딱 보였다.
그들의 가슴 부근에서 혼령들에게만 있는 핵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핵은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하늘로 도약하며 [태풍 속의 파도]를 펼쳤다.
내 다리에 검은 파도가 내 다리를 휘감았다. 나는 그대로 방성환 형 분신들 중 한 놈에게 이단옆차기를 날렸다. 그리고 착지 직전에 [태풍 속의 파도]를 끄고 얼른 옆으로 피했다.
내 뒤로 나와 함께 검은 파도를 장착한 내 형태의 분신들이 나를 노리며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스킬을 끄자 그들의 스킬도 자동으로 꺼졌다.
둘 중 한 놈의 발차기에 교실의 시멘트 바닥이 움푹 파였다.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자리였다.
[가뭄의 산불]을 펼치고 있던 방성환 형 분신 한 놈이 그대로 쓰러졌다. 내가 놈에게 가까이 다가가도 놈은 나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역시 방성환이 내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했던 [언령]이 분신에게도 작용하는 모양이다.
나는 나를 노리는 내 형태의 분신들을 다시금 피하며 쓰러져 있는 방성환 형 분신에게 주먹을 날렸다. 내 주먹은 놈의 가슴을 강타하며 거뜬히 혼령의 핵을 쥐었다.
내 손에 들어온 핵이 곧바로 바스러지더니 먼지가 돼버렸다. 저 분신은 구미호 형 혼령의 본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본체였다면 혼령의 핵이 내 손에 고스란히 남아있거나 흡수됐을 것이다.
방성환 형 분신 둘 중 하나가 사라졌다.
이제 남은 한 놈도 처리할 차례였다.
나는 같은 방식으로 방성환의 외양을 복사한 나머지 분신도 공격했다. 놈의 핵이 다시금 내 손안에서 바스러졌다.
그러는 내내 내 모습을 복사한 분신들은 지치지도 않고 나를 공격해댔다. 나는 매번 그들의 공격에 스킬이 실리지 않도록 타이밍을 재며 그것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홀로 남은 진짜 방성환이 나를 빤히 지켜봤다.
“야! 가만히 있지 말고 너도 내 분신들도 좀 처치해봐!”
“씨X! 그러려고 해도 너희 셋 중 누가 진짜인지 모르겠다고!”
“당연히 나잖아!”
“아냐, 방성환, 진짜는 나라고!”
“저 구미호의 말을 듣고만 있을 거야? 진짜는 나잖아, 멍청아!”
방성환을 향해 내가 외치자 내 분신들도 함께 외쳤다.
하아. 답답했다.
하지만 방성환도 탓할 수 없었다. 핵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는 누가 진짜인지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방성환이 설사 내 분신들을 공격해도 그것이 먹힐지는 모를 일이었다. 왜냐하면 [언령]에 따라 나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내 분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방성환, 나는 그냥 잊어버리고 다른 애들이나 도와줘! [가뭄의 산불]을 펼쳐! 그럼 분신들만 공격당하고 사람들은 멀쩡할 거야!”
방성환은 대답 없이 바로 스킬 시전에 들어갔다.
그의 양손에서 거대한 불덩이가 일어났다. 평소처럼 최만혁의 회오리바람에 불길이 실리지 않았기에 불덩이들의 공격지점이 한정적이었다.
그래도 방성환은 괘념치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사정없이 손에서 불덩이들을 뿜어내더니 사방으로 그것들을 던졌다.
불덩이와 불덩이가 모여 거대한 화염이 됐다. 붉은 불길이 대강당을 거의 다 덮어버렸다.
“으악!”
“방성환, 뭐하는 거야!”
그의 공격에 식겁한 애들은 이내 침묵하게 됐다. 방성환의 불길에 혼령들만 타버리는 모습을 눈앞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구미호 형 혼령의 약점이기도 했다. 구미호 형 혼령이 형태변환을 한 상태라면 굳이 실체화를 따로 하지 않아도 물리적 공격이 가능한 상태가 됐다.
이승의 것은 방성환의 불길에 영향을 받지 않았기에 애들은 불길에 닿아도 멀쩡했다.
한참 대강의실에서 격전을 펼치던 소리가 줄어들었다. 파손된 벽면과 바닥이 싸움의 잔재로 남았다.
그리고 구미호 형 혼령의 분신은 딱 둘밖에 안 남았다. 그것들은 바로 내 모습을 띤 분신들이었다.
이 넓은 공간에서 이제 우리 셋만 싸우고 있었다.
방성환은 끝내 나를 향해 불길을 던지지 못했다. 나는 이제 내 모습을 복사한 분신들을 피하는 것에 지쳐가고 있었다.
“방성환, 진짜 나는 네 불길에 맞아도 멀쩡할 테니까 그냥 우리 셋을 모두 공격해!”
“이상하게 네게만 [가뭄의 산불]을 던지려고 하면 스킬이 꺼져버려!”
방성환이 고민스러워하며 내게 외쳤다.
역시나 [언령]의 작용이었다.
아, 씨! 나만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건가?
나는 머리를 굴리며 내게 날아오는 분신의 공격을 피했다.
내 민첩성만큼은 지쳐도 멀쩡했다.
마침 내가 도약했다 착지한 자리 옆에 이재경이 있었다.
이재경은 나와 분신들의 싸움을 보며 누구를 도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맞다! 이재경!
이재경의 [오행 분석] 스킬을 이용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이재경, 혹시 우리 셋의 오행 속성이 보여?”
“어?...어...잠깐만!”
내가 다시 분신들의 공격을 피하며 도약하는 사이, 이재경은 생각지도 못했던 [오행 분석]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이내 이재경의 탄성이 들려왔다.
“나, 저들 중 진짜 강기찬이 누군지 알겠어!”
옆에서 듣고 있던 최만혁이 물었다.
“어느 놈인데?”
“저기서 계속 공격을 피해 다니기만 하는 놈!”
이재경의 대답에 최만혁이 나섰다. 그가 괴력을 실은 주먹으로 내 형태의 분신들 중 한 놈을 치려고 했다.
“어? 내 몸이 왜 이러지?”
최만혁은 주먹을 장전한 채로 몸이 굳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방성환의 상황을 통해 지금 그가 왜 저러는지 추측하기 어렵지 않았다.
저것 또한 내 [언령]의 부작용이었다.
“이거 어떻게 엽니까?”
내가 양화주 선생에게 묻자 그가 여유롭게 대답했다.
“자네가 그 안에 든 존재를 대면할 마음의 준비가 되면 그것을 열겠다는 의지를 갖고 두드리게.”
온 학생들의 시선이 네게 꽂혀있었다.
이 안에 든 혼령이 대체 어떤 형태이길래 이런 형태의 수업을 하는 거지?
나는 위험해지면 [태풍 속의 파도]를 펼칠 준비를 한 채 관을 두드렸다.
열려라.
끼이익.
낡은 금속 경첩이 힘겹게 움직이는 마찰음과 함께 관의 문이 열렸다.
나는 경계하며 세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관 안에서는 탁한 회색 연기가 불길하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종류의 혼령이었다.
구미호 형 혼령.
구미호 형 혼령은 내가 전생에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고대 민화에서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구미호는 항상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이며 그 여우는 인간의 형태로 사람의 간을 빼먹으려고 한다.
저승의 결계가 열리면서 그 민화는 자연히 고증을 거쳤다.
그 결과, 구미호의 본래 모습은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가 맞았다. 하지만 민화와 일치하는 점은 거기에서 끝났다.
구미호는 변신의 귀재여서 인간 외의 모습들로도 변신할 수 있었다. 더불어 구미호가 가장 탐하는 것은 인간의 간이 아니었다.
생기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혼령들과 비슷한 성향을 띄었다.
그런데도 그리 특이하지 않은 이 혼령이 교과과정에 등장하는 이유를 나는 곧 내 눈앞에서 확인하게 됐다.
“으악!”
학생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구미호는 순식간에 여러 명으로 자신을 분리하더니 학생들 사이로 숨어들었다.
형태변환술과 함께 쓰는 분신술.
이것이 바로 이 형태의 혼령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였다.
곧 학생들이 앉아 있던 자리가 아수라장이 됐다. 너도나도 서로를 믿지 못해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학생들 사이에 자신과 똑같이 생긴 존재가 둘씩 더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야!”
“아니야, 내가 진짜라고!”
“잠깐, 공격 정지! 내 옆에 있는 새끼를 공격해. 쟤가 귀신이야!”
학생들은 곧 자신과 똑같이 생긴 구미호의 분신들과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으면 구미호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생기를 빼앗겨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내 옆으로 나와 똑같이 생긴 놈들이 둘이 더 생겼다.
나는 양화주 선생에게 외쳤다.
“아니, 진짜 구미호 형을 수업시간에 끌고 온 건가요? 학생들을 전부 죽일 생각인 건가요?”
양화주 선생의 주변에도 그와 똑같이 생긴 구미호 분신이 둘이나 더 있었다.
그들 중 어느 자에게 내가 말을 걸었는지는 모르겠다. 셋 다 야구방망이를 치켜들고 서로를 노리고 있었다.
구미호 형 혼령들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하나 더 있었다.
이들은 상대의 외양을 복사하면서 상대의 스킬도 그대로 복사할 수 있었다. 즉, 내 분신들은 나와 같은 스킬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소리였다.
“그렇게 약한 소리를 하면 어쩌나. 강기찬 학생이라면 잘 해결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양화주 선생으로 추측되는 자가 나를 향해 외쳤다.
양화주 선생의 상황을 보고만 있을 여유는 없었다. 나도 내 코가 석 자였으니까.
나는 욕설을 한 번 내뱉고 나와 똑같이 생긴 분신 둘을 향해 도약했다. 그들도 내게 도약했다.
내 괴력까지 똑같이 복사해간 구미호의 분신들이었다. 그들 중 한 놈의 주먹에 맞으니 꽤 아팠다. 하지만 나도 둘 중 한 놈의 배를 발로 차는 데에 성공했다.
“으아아악!”
“야아아압!”
여기저기서 기합 소리가 터져 나왔다. 원래 실력이 비등한 놈들끼리 싸우면 결론이 잘 안 나는 법이었다.
나는 나와 같은 모습의 분신들을 향해 [태풍 속의 파도]를 펼쳤다.
그 둘도 나와 똑같은 스킬을 들고 나왔다.
내가 직접 저 검은 물이 휘감긴 공격에 맞아보고 싶지는 않은데.......
나는 그 생각을 하며 나의 [태풍 속의 파도] 스킬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나를 향해 날아오는 한 놈의 발에서도 시전 됐던 [태풍 속의 파도] 스킬이 꺼졌다.
나는 놈의 발길을 피하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내 분신과 내가 싸우면 결론은 무조건 무승부였다. 이렇게 끝도 없는 싸움을 펼치다 내가 지쳐버리면?
구미호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날렵하게 내 생기를 빨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내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단체로 전투를 벌이게 될 상황이었다면 왜 대강당에 모이라고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운동장이 나았을 상황이었다.
나는 나를 공격하는 구미호 분신 둘을 계속 피해 다니며 주변을 살폈다.
사방에서 기물파손이 벌어지고 있었다. 저들이 이렇게 격정적으로 싸움을 벌이기에는 이 공간이 비좁았다.
그러다 퍼뜩, 생각 하나가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 이유라면 양화주 선생이 나를 앞으로 불러낸 이유가 이해가 됐다.
이 강당으로 모이라고 한 이유도.
나는 나를 내 스킬을 전부 끄고 나를 공격해오는 구미호 분신들을 민첩하게 피했다. 내 공격의 대상을 바꿀 때였다.
이 상황에서 내가 누구를 도와야 가장 효과적일까?
그러다 저 앞에서 싸우고 있는 방성환이 보였다. 그의 주변이 온통 붉은 화염이었다.
분신은 스킬을 복사해간다. 그렇다면 내 [언령]으로 걸려있는 약속도 마찬가지일까?
내가 방성환에게로 뛰어가자 내 모습을 한 분신 둘도 나를 추격했다.
가까이서 보니 방성환의 모습을 한 구미호 분신 둘이 누군지 딱 보였다.
그들의 가슴 부근에서 혼령들에게만 있는 핵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핵은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하늘로 도약하며 [태풍 속의 파도]를 펼쳤다.
내 다리에 검은 파도가 내 다리를 휘감았다. 나는 그대로 방성환 형 분신들 중 한 놈에게 이단옆차기를 날렸다. 그리고 착지 직전에 [태풍 속의 파도]를 끄고 얼른 옆으로 피했다.
내 뒤로 나와 함께 검은 파도를 장착한 내 형태의 분신들이 나를 노리며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스킬을 끄자 그들의 스킬도 자동으로 꺼졌다.
둘 중 한 놈의 발차기에 교실의 시멘트 바닥이 움푹 파였다.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자리였다.
[가뭄의 산불]을 펼치고 있던 방성환 형 분신 한 놈이 그대로 쓰러졌다. 내가 놈에게 가까이 다가가도 놈은 나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역시 방성환이 내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했던 [언령]이 분신에게도 작용하는 모양이다.
나는 나를 노리는 내 형태의 분신들을 다시금 피하며 쓰러져 있는 방성환 형 분신에게 주먹을 날렸다. 내 주먹은 놈의 가슴을 강타하며 거뜬히 혼령의 핵을 쥐었다.
내 손에 들어온 핵이 곧바로 바스러지더니 먼지가 돼버렸다. 저 분신은 구미호 형 혼령의 본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본체였다면 혼령의 핵이 내 손에 고스란히 남아있거나 흡수됐을 것이다.
방성환 형 분신 둘 중 하나가 사라졌다.
이제 남은 한 놈도 처리할 차례였다.
나는 같은 방식으로 방성환의 외양을 복사한 나머지 분신도 공격했다. 놈의 핵이 다시금 내 손안에서 바스러졌다.
그러는 내내 내 모습을 복사한 분신들은 지치지도 않고 나를 공격해댔다. 나는 매번 그들의 공격에 스킬이 실리지 않도록 타이밍을 재며 그것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홀로 남은 진짜 방성환이 나를 빤히 지켜봤다.
“야! 가만히 있지 말고 너도 내 분신들도 좀 처치해봐!”
“씨X! 그러려고 해도 너희 셋 중 누가 진짜인지 모르겠다고!”
“당연히 나잖아!”
“아냐, 방성환, 진짜는 나라고!”
“저 구미호의 말을 듣고만 있을 거야? 진짜는 나잖아, 멍청아!”
방성환을 향해 내가 외치자 내 분신들도 함께 외쳤다.
하아. 답답했다.
하지만 방성환도 탓할 수 없었다. 핵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는 누가 진짜인지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방성환이 설사 내 분신들을 공격해도 그것이 먹힐지는 모를 일이었다. 왜냐하면 [언령]에 따라 나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내 분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방성환, 나는 그냥 잊어버리고 다른 애들이나 도와줘! [가뭄의 산불]을 펼쳐! 그럼 분신들만 공격당하고 사람들은 멀쩡할 거야!”
방성환은 대답 없이 바로 스킬 시전에 들어갔다.
그의 양손에서 거대한 불덩이가 일어났다. 평소처럼 최만혁의 회오리바람에 불길이 실리지 않았기에 불덩이들의 공격지점이 한정적이었다.
그래도 방성환은 괘념치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사정없이 손에서 불덩이들을 뿜어내더니 사방으로 그것들을 던졌다.
불덩이와 불덩이가 모여 거대한 화염이 됐다. 붉은 불길이 대강당을 거의 다 덮어버렸다.
“으악!”
“방성환, 뭐하는 거야!”
그의 공격에 식겁한 애들은 이내 침묵하게 됐다. 방성환의 불길에 혼령들만 타버리는 모습을 눈앞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구미호 형 혼령의 약점이기도 했다. 구미호 형 혼령이 형태변환을 한 상태라면 굳이 실체화를 따로 하지 않아도 물리적 공격이 가능한 상태가 됐다.
이승의 것은 방성환의 불길에 영향을 받지 않았기에 애들은 불길에 닿아도 멀쩡했다.
한참 대강의실에서 격전을 펼치던 소리가 줄어들었다. 파손된 벽면과 바닥이 싸움의 잔재로 남았다.
그리고 구미호 형 혼령의 분신은 딱 둘밖에 안 남았다. 그것들은 바로 내 모습을 띤 분신들이었다.
이 넓은 공간에서 이제 우리 셋만 싸우고 있었다.
방성환은 끝내 나를 향해 불길을 던지지 못했다. 나는 이제 내 모습을 복사한 분신들을 피하는 것에 지쳐가고 있었다.
“방성환, 진짜 나는 네 불길에 맞아도 멀쩡할 테니까 그냥 우리 셋을 모두 공격해!”
“이상하게 네게만 [가뭄의 산불]을 던지려고 하면 스킬이 꺼져버려!”
방성환이 고민스러워하며 내게 외쳤다.
역시나 [언령]의 작용이었다.
아, 씨! 나만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건가?
나는 머리를 굴리며 내게 날아오는 분신의 공격을 피했다.
내 민첩성만큼은 지쳐도 멀쩡했다.
마침 내가 도약했다 착지한 자리 옆에 이재경이 있었다.
이재경은 나와 분신들의 싸움을 보며 누구를 도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맞다! 이재경!
이재경의 [오행 분석] 스킬을 이용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이재경, 혹시 우리 셋의 오행 속성이 보여?”
“어?...어...잠깐만!”
내가 다시 분신들의 공격을 피하며 도약하는 사이, 이재경은 생각지도 못했던 [오행 분석]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이내 이재경의 탄성이 들려왔다.
“나, 저들 중 진짜 강기찬이 누군지 알겠어!”
옆에서 듣고 있던 최만혁이 물었다.
“어느 놈인데?”
“저기서 계속 공격을 피해 다니기만 하는 놈!”
이재경의 대답에 최만혁이 나섰다. 그가 괴력을 실은 주먹으로 내 형태의 분신들 중 한 놈을 치려고 했다.
“어? 내 몸이 왜 이러지?”
최만혁은 주먹을 장전한 채로 몸이 굳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방성환의 상황을 통해 지금 그가 왜 저러는지 추측하기 어렵지 않았다.
저것 또한 내 [언령]의 부작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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