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조회 : 965 추천 : 0 글자수 : 4,198 자 2022-07-20
이번 [적성 수업]을 위해 나는 퍼니셔 적성인 애들이 배정된 반으로 갔다.
이전보다 꽤 많은 학생들이 와 있었다. 그 사이에 적성 미발현자였던 학생들 중 퍼니셔 적성인 애들이 더 생겨난 것이었다.
양화주 선생이 또다시 우리 반을 맡았다.
“내가 올해 퍼니셔 적성 학생들의 주임 선생이다. 그러니 너희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채찍질을 하겠다. 학생들은 마음의 각오를 하도록.”
웃으며 얘기하니까 더 무섭다.
학생들의 침묵을 뚫고 우렁찬 목소리로 설명했다.
“오늘의 수업은 각양각색의 퍼니셔 스킬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각자 자신이 타고난 퍼니셔 적성의 스킬들이 다를 것이다. 다른 학생들 앞에서 그것을 선보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순간, 아까부터 웃고 있던 양화주 선생의 미소가 어딘가 더 사악해 보였다. 갑자기 기대감으로 부담스럽게 반짝이는 저 눈빛 탓일 것이다.
양화주 선생이 널찍한 개량한복 소매 속에서 묵직한 비단 주머니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그의 앞에 5열 종대로 서 있는 우리들의 앞을 지나며 그 속의 내용물을 꺼내줬다.
어느새 우리의 손안에는 50원짜리 동전만 한 환약이 한 알씩 쥐어져 있었다.
“우웩, 냄새!”
여기저기서 손바닥에 올려진 환약을 머리 내밀며 코를 막는 애들이 보였다. 환약에서는 눅눅한 곰팡내와 함께 음식물이 부패 된 냄새가 뒤섞인 것 같은 악취가 풍겼기에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나는 내 손바닥에도 올려진 환약을 노려봤다. 악취 때문인지 환약의 담청색 빛깔 또한 그것이 진짜로 곰팡이를 뭉쳐놓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양화주 선생은 연신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인간은 분명 우리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 악취미다.
“자, 방금 내가 너희들에게 나눠 준 알약은 일시적으로 생체를 혼령화시키는 환약이다. 이 역시 누구의 연금술 작품인지는 내가 굳이 말 안 해도 알겠지?”
학생들이 전부 악취에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놀라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수가 없었다. 생체를 혼령화시키는 연금술이라니! 이제까지 그런 엄청난 일이 가능했던 사람은 전설의 인물, 양화당 밖에 없었다.
나는 속으로 이 환약을 몰래 챙겨가서 이재경에게 보여줄까 고민했다. 연금술 쪽으로 재능이 탁월한 이재경이라면 이것을 곰방대로 분석하며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깨달을 텐데.
하지만 곧이어 양화주 선생의 우렁찬 지시가 내 상념을 깼다.
“몰래 챙겨갈 생각하는 놈들은 전부 꿈 깨도록. 이것은 일시 혼령화를 위해 필요한 정량으로 환약을 만든 것이다. 이것을 지금 전부 섭취해야 오늘의 수업에 참여가 가능할 것이다.”
나는 양화주 선생이 내 생각을 읽었나 싶어서 속으로 뜨끔했다. 그러는 사이, 다른 애들은 전부 어두워지는 낯빛으로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는 모습이었다.
잠시 두리번거리던 나도 마침내 그들의 반응이 이해됐다. 양화주 선생은 방금 우리에게 이 환약을 이 자리에서 먹으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이 썩은 내 나는 것을. 딱 봐도 절대 먹고 싶지 않은 비주얼이었다.
다들 같은 생각을 하는 와중에 하얗게 질린 단발머리 남자애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수...수업을 포...포기하면 어떻게 됩니까?”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 환약만큼은 절대 먹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언제든 학생을 죽음의 문턱으로 끌고 가는 이 국퇴교에서 저렇게 선생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놈에게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엄청난 용기였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졸이며 양화주 선생의 답을 기다렸다.
양화주 선생은 우리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씨익 웃었다. 하지만 눈은 매서울 정도로 무미건조했다.
“역대 퍼니셔 적성이니 학생들을 훈련시킬 때 이 과정이 빠진 적이 없었다. 정부 지침으로 내려오는 수업 프로그램이기 때문이지. 그러니 나는 이 수업의 지침에 따르지 않는 자를 정부의 지침에 따르지 않는 자로 치부하고 정부에 신고하겠다. 그것이 퍼니셔 담당 선생으로서의 내 의무다.”
결국 정부의 손에 넘어가는 반항 학생은 혼령들이 활동하는 [현장]에서 죽게 될 것이다. 양화주 선생의 덤덤한 말이 시사하는 바는 그것이었다.
침묵과 함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저물녘의 서늘한 공기가 유독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양화주 선생은 기합을 주듯 손뼉을 크게 쳤다.
“자, 내가 셋 세면 다 함께 환약을 먹는 것이다.”
아니, 일단 환약을 먹고 나면 일시적으로 혼령화가 된다는 것은 알겠는데, 왜 우리를 혼령화시키려는 건데?
내 의문에 답을 구할 새도 없이 양화주 선생의 구령이 시작됐다.
“하나!”
저기, 이거 먹어도 안전한 건가?
둘러보니 다른 애들도 다 나와 같이 불안한 눈빛이다. 서로 눈치를 보며 손바닥의 환약과 대치 중이었다.
“둘!”
잠깐, 이번 [적성 수업]에서는 우리의 스킬을 선보일 거라며? 대체 혼령화가 돼서 어떻게 스킬을 선보이라는 거야?
“셋!”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역한 악취를 풍기는 환약을 입안에 던져넣었다.
입안에서 퍼지는 환약의 맛은 의외로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코로 찌르고 올라오는 역한 썩은 내만 참으면 유통기한 1년쯤 지난 치즈를 먹는 맛이랄까? 물론 내가 진짜로 그렇게 오래 부패와 발효의 경계를 넘나들던 치즈를 먹어본 적은 없었다. 다만 먹어봤다고 상상하자면 이런 맛일 것 같다.
양화주 선생은 학생들을 고요한 눈길로 살폈다. 환약을 안 먹은 학생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모양새였다.
그렇게까지 자세히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환약 먹은 놈들의 몸에서는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니까.
그놈들 중에 물론 나도 포함됐다.
목구멍에서부터 시작된 불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남기며 가슴으로 내려갔다. 속이 뜨겁고 아파서 먹었던 환약의 악취 따위는 하얗게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윽!”
가슴을 움켜쥐며 신음을 흘리는 애들이 넘쳐났다.
내 가슴에 머무르는 것 같던 불길은 더 깊숙이 내려가 내 배까지, 배꼽까지, 단전까지 계속해서 내려갔다. 속이 뜨거워 죽을 것 같다.
어느새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현장]에서 혼령에게 당해서 죽으나 이렇게 수업 중에 죽으나 매한가지일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바닥의 잔디를 움켜쥐는 순간.
펑!
속에서 폭탄이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시야가 곧바로 암전됐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내 손이 보였다. 내 손 같지 않은 손이었다. 손 너머의 잔디가 그대로 보일 정도로 반투명해진 은빛의 손, 실체화가 된 혼령체의 손이었다.
타들어 가던 고통이 사라졌다.
나는 일어서서 내 몸을 살폈다. 몸 전체가 반투명한 은빛 실루엣이었다. 버릇처럼 이 은빛 실루엣을 보기만 해도 전투태세에 돌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혼령을 그간 몇 차례 상대하면서 혼령에 대한 약간의 노이로제가 생긴 것 같다.
주변을 살피고는 몸이 본능적으로 긴장했다. 수백 개의 은빛 실루엣들이 여기저기 포진돼 있었기 때문이다.
저것들은 다 나와 같이 일시적으로 혼령체가 된 국퇴교의 학생들이다.
이 사실을 내게 되뇌어야 했다. 안 그러면 바로 저들에게 공격 스킬부터 쓸 것 같은 충동이 일었다.
진짜 악취미네, 이 수업.
양화주 선생을 보자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속을 알 수 없는 저 공동 같은 검은자가 나를 향해 질문하는 것 같았다.
‘준비됐나?’
수업에 돌입할 준비를 말하는 것인가?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할 새도 없이 양화주 선생의 지시가 떨어졌다.
“다들 기분이 어떤가?”
“억울한 기분입니다.”
의외로 저 멀리서 방성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같은 그의 성격다운 답이었다. 그리고 틀린 답도 아니었다.
이상하게 혼령화가 되니 내 무의식에 쌓여있던 모든 억울한 감정들이 수면위로 밀려오는 기분이었다.
“그럴 거야. 더불어 죽었다는 실감도 없겠지.”
“그것은 저희가 진짜로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이번에 양화주 선생의 말에 의문을 표한 것은 장지우였다. 그것도 몹시 불안한 표정을 한 그녀의 은빛 실루엣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바들바들 떠는 모양새였다.
“너희는 죽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로 죽어서 혼령화가 되더라도 지금 너희가 느끼는 기분과 다르지 않다고 하더군. 나도 진짜로 죽어보지는 않아서 알 수는 없지. 국속 퇴마단의 연구원들이 주장하는 바다.”
고요 넘어로 양화주 선생이 뜸을 들이다 극적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 기분을 기억하라. 그래야 혼령들이 왜 자신이 마땅히 이승에 머무르려고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자신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못한 자들이다. 그러니 너희의 공격이 그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하겠지.”
“그러면 혼령을 공격하지 말라는 말씀이십니까?”
방성환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으로 양화주 선생에게 말했다.
“그럴 수는 없지. 자연의 질서가 어지럽혀지고 이승에서 진짜 살아가는 자들이 혼령들 때문에 죽어가는 상황이니까. 그래도 공격을 할 때 유념하고는 있으라는 것이다.”
양화주 선생이 이 점을 굳이 짚는 의도를 모르겠다. 어차피 공격해야 하는 혼령들, 그들이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학생들의 술렁임으로 우리의 혼란이 고스란히 표현됐다. 양화주 선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씨익 웃더니 언제나처럼 수업의 지시사항을 읊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너희들은 퍼니셔들이다. 반실체화된 혼령들을 공격하는 역할. 그러니 너희들의 공격스킬을 선보이며 퍼니셔의 스킬 스펙트럼의 얼마나 다양한지 서로 확인하는 자리를 가질 것이다. 일단 둘씩 짝지어 마주 봐라.”
은빛 실루엣들이 양화주 선생의 말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내가 마침 마주 보게 된 놈은 아까의 단발머리였다.
“이쯤 되면 내가 왜 너희들을 전부 혼령화시켰는지가 궁금하겠지. 너희들의 스킬은 퍼니셔의 스킬. 상대가 반실체화된 혼령이 아니면 발동되지 않는 스킬이다. 그래서 스킬을 선보이기 좋은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너희 전부를 혼령화시킨 것이다.”
설마......
“그럼 마주보고 있는 상대에게 너희의 스킬을 시전해 대련할 것이다. 각 대련에서의 우승자들끼리 계속해서 붙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를 죽이거나 소멸시킬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약효가 떨어질 시간이 되면 알아서 너희들의 몸은 이전으로 실체화가 될 것이다. 타격이 크면 잠시 병원에는 입원해야겠지만 그 이상으로 심각한 결과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마음 놓고 서로를 공격하도록. 자, 대련 실시!”
그 설마가 맞았다. 나는 나와 마주 보고 있는 단발머리 남자애의 실루엣을 봤다. 마구 흔들리는 것이 겁에 질린 모습이다.
이전보다 꽤 많은 학생들이 와 있었다. 그 사이에 적성 미발현자였던 학생들 중 퍼니셔 적성인 애들이 더 생겨난 것이었다.
양화주 선생이 또다시 우리 반을 맡았다.
“내가 올해 퍼니셔 적성 학생들의 주임 선생이다. 그러니 너희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채찍질을 하겠다. 학생들은 마음의 각오를 하도록.”
웃으며 얘기하니까 더 무섭다.
학생들의 침묵을 뚫고 우렁찬 목소리로 설명했다.
“오늘의 수업은 각양각색의 퍼니셔 스킬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각자 자신이 타고난 퍼니셔 적성의 스킬들이 다를 것이다. 다른 학생들 앞에서 그것을 선보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순간, 아까부터 웃고 있던 양화주 선생의 미소가 어딘가 더 사악해 보였다. 갑자기 기대감으로 부담스럽게 반짝이는 저 눈빛 탓일 것이다.
양화주 선생이 널찍한 개량한복 소매 속에서 묵직한 비단 주머니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그의 앞에 5열 종대로 서 있는 우리들의 앞을 지나며 그 속의 내용물을 꺼내줬다.
어느새 우리의 손안에는 50원짜리 동전만 한 환약이 한 알씩 쥐어져 있었다.
“우웩, 냄새!”
여기저기서 손바닥에 올려진 환약을 머리 내밀며 코를 막는 애들이 보였다. 환약에서는 눅눅한 곰팡내와 함께 음식물이 부패 된 냄새가 뒤섞인 것 같은 악취가 풍겼기에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나는 내 손바닥에도 올려진 환약을 노려봤다. 악취 때문인지 환약의 담청색 빛깔 또한 그것이 진짜로 곰팡이를 뭉쳐놓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양화주 선생은 연신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인간은 분명 우리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 악취미다.
“자, 방금 내가 너희들에게 나눠 준 알약은 일시적으로 생체를 혼령화시키는 환약이다. 이 역시 누구의 연금술 작품인지는 내가 굳이 말 안 해도 알겠지?”
학생들이 전부 악취에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놀라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수가 없었다. 생체를 혼령화시키는 연금술이라니! 이제까지 그런 엄청난 일이 가능했던 사람은 전설의 인물, 양화당 밖에 없었다.
나는 속으로 이 환약을 몰래 챙겨가서 이재경에게 보여줄까 고민했다. 연금술 쪽으로 재능이 탁월한 이재경이라면 이것을 곰방대로 분석하며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깨달을 텐데.
하지만 곧이어 양화주 선생의 우렁찬 지시가 내 상념을 깼다.
“몰래 챙겨갈 생각하는 놈들은 전부 꿈 깨도록. 이것은 일시 혼령화를 위해 필요한 정량으로 환약을 만든 것이다. 이것을 지금 전부 섭취해야 오늘의 수업에 참여가 가능할 것이다.”
나는 양화주 선생이 내 생각을 읽었나 싶어서 속으로 뜨끔했다. 그러는 사이, 다른 애들은 전부 어두워지는 낯빛으로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는 모습이었다.
잠시 두리번거리던 나도 마침내 그들의 반응이 이해됐다. 양화주 선생은 방금 우리에게 이 환약을 이 자리에서 먹으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이 썩은 내 나는 것을. 딱 봐도 절대 먹고 싶지 않은 비주얼이었다.
다들 같은 생각을 하는 와중에 하얗게 질린 단발머리 남자애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수...수업을 포...포기하면 어떻게 됩니까?”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 환약만큼은 절대 먹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언제든 학생을 죽음의 문턱으로 끌고 가는 이 국퇴교에서 저렇게 선생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놈에게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엄청난 용기였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졸이며 양화주 선생의 답을 기다렸다.
양화주 선생은 우리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씨익 웃었다. 하지만 눈은 매서울 정도로 무미건조했다.
“역대 퍼니셔 적성이니 학생들을 훈련시킬 때 이 과정이 빠진 적이 없었다. 정부 지침으로 내려오는 수업 프로그램이기 때문이지. 그러니 나는 이 수업의 지침에 따르지 않는 자를 정부의 지침에 따르지 않는 자로 치부하고 정부에 신고하겠다. 그것이 퍼니셔 담당 선생으로서의 내 의무다.”
결국 정부의 손에 넘어가는 반항 학생은 혼령들이 활동하는 [현장]에서 죽게 될 것이다. 양화주 선생의 덤덤한 말이 시사하는 바는 그것이었다.
침묵과 함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저물녘의 서늘한 공기가 유독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양화주 선생은 기합을 주듯 손뼉을 크게 쳤다.
“자, 내가 셋 세면 다 함께 환약을 먹는 것이다.”
아니, 일단 환약을 먹고 나면 일시적으로 혼령화가 된다는 것은 알겠는데, 왜 우리를 혼령화시키려는 건데?
내 의문에 답을 구할 새도 없이 양화주 선생의 구령이 시작됐다.
“하나!”
저기, 이거 먹어도 안전한 건가?
둘러보니 다른 애들도 다 나와 같이 불안한 눈빛이다. 서로 눈치를 보며 손바닥의 환약과 대치 중이었다.
“둘!”
잠깐, 이번 [적성 수업]에서는 우리의 스킬을 선보일 거라며? 대체 혼령화가 돼서 어떻게 스킬을 선보이라는 거야?
“셋!”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역한 악취를 풍기는 환약을 입안에 던져넣었다.
입안에서 퍼지는 환약의 맛은 의외로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코로 찌르고 올라오는 역한 썩은 내만 참으면 유통기한 1년쯤 지난 치즈를 먹는 맛이랄까? 물론 내가 진짜로 그렇게 오래 부패와 발효의 경계를 넘나들던 치즈를 먹어본 적은 없었다. 다만 먹어봤다고 상상하자면 이런 맛일 것 같다.
양화주 선생은 학생들을 고요한 눈길로 살폈다. 환약을 안 먹은 학생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모양새였다.
그렇게까지 자세히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환약 먹은 놈들의 몸에서는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니까.
그놈들 중에 물론 나도 포함됐다.
목구멍에서부터 시작된 불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남기며 가슴으로 내려갔다. 속이 뜨겁고 아파서 먹었던 환약의 악취 따위는 하얗게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윽!”
가슴을 움켜쥐며 신음을 흘리는 애들이 넘쳐났다.
내 가슴에 머무르는 것 같던 불길은 더 깊숙이 내려가 내 배까지, 배꼽까지, 단전까지 계속해서 내려갔다. 속이 뜨거워 죽을 것 같다.
어느새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현장]에서 혼령에게 당해서 죽으나 이렇게 수업 중에 죽으나 매한가지일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바닥의 잔디를 움켜쥐는 순간.
펑!
속에서 폭탄이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시야가 곧바로 암전됐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내 손이 보였다. 내 손 같지 않은 손이었다. 손 너머의 잔디가 그대로 보일 정도로 반투명해진 은빛의 손, 실체화가 된 혼령체의 손이었다.
타들어 가던 고통이 사라졌다.
나는 일어서서 내 몸을 살폈다. 몸 전체가 반투명한 은빛 실루엣이었다. 버릇처럼 이 은빛 실루엣을 보기만 해도 전투태세에 돌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혼령을 그간 몇 차례 상대하면서 혼령에 대한 약간의 노이로제가 생긴 것 같다.
주변을 살피고는 몸이 본능적으로 긴장했다. 수백 개의 은빛 실루엣들이 여기저기 포진돼 있었기 때문이다.
저것들은 다 나와 같이 일시적으로 혼령체가 된 국퇴교의 학생들이다.
이 사실을 내게 되뇌어야 했다. 안 그러면 바로 저들에게 공격 스킬부터 쓸 것 같은 충동이 일었다.
진짜 악취미네, 이 수업.
양화주 선생을 보자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속을 알 수 없는 저 공동 같은 검은자가 나를 향해 질문하는 것 같았다.
‘준비됐나?’
수업에 돌입할 준비를 말하는 것인가?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할 새도 없이 양화주 선생의 지시가 떨어졌다.
“다들 기분이 어떤가?”
“억울한 기분입니다.”
의외로 저 멀리서 방성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같은 그의 성격다운 답이었다. 그리고 틀린 답도 아니었다.
이상하게 혼령화가 되니 내 무의식에 쌓여있던 모든 억울한 감정들이 수면위로 밀려오는 기분이었다.
“그럴 거야. 더불어 죽었다는 실감도 없겠지.”
“그것은 저희가 진짜로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이번에 양화주 선생의 말에 의문을 표한 것은 장지우였다. 그것도 몹시 불안한 표정을 한 그녀의 은빛 실루엣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바들바들 떠는 모양새였다.
“너희는 죽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로 죽어서 혼령화가 되더라도 지금 너희가 느끼는 기분과 다르지 않다고 하더군. 나도 진짜로 죽어보지는 않아서 알 수는 없지. 국속 퇴마단의 연구원들이 주장하는 바다.”
고요 넘어로 양화주 선생이 뜸을 들이다 극적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 기분을 기억하라. 그래야 혼령들이 왜 자신이 마땅히 이승에 머무르려고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자신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못한 자들이다. 그러니 너희의 공격이 그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하겠지.”
“그러면 혼령을 공격하지 말라는 말씀이십니까?”
방성환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으로 양화주 선생에게 말했다.
“그럴 수는 없지. 자연의 질서가 어지럽혀지고 이승에서 진짜 살아가는 자들이 혼령들 때문에 죽어가는 상황이니까. 그래도 공격을 할 때 유념하고는 있으라는 것이다.”
양화주 선생이 이 점을 굳이 짚는 의도를 모르겠다. 어차피 공격해야 하는 혼령들, 그들이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학생들의 술렁임으로 우리의 혼란이 고스란히 표현됐다. 양화주 선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씨익 웃더니 언제나처럼 수업의 지시사항을 읊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너희들은 퍼니셔들이다. 반실체화된 혼령들을 공격하는 역할. 그러니 너희들의 공격스킬을 선보이며 퍼니셔의 스킬 스펙트럼의 얼마나 다양한지 서로 확인하는 자리를 가질 것이다. 일단 둘씩 짝지어 마주 봐라.”
은빛 실루엣들이 양화주 선생의 말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내가 마침 마주 보게 된 놈은 아까의 단발머리였다.
“이쯤 되면 내가 왜 너희들을 전부 혼령화시켰는지가 궁금하겠지. 너희들의 스킬은 퍼니셔의 스킬. 상대가 반실체화된 혼령이 아니면 발동되지 않는 스킬이다. 그래서 스킬을 선보이기 좋은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너희 전부를 혼령화시킨 것이다.”
설마......
“그럼 마주보고 있는 상대에게 너희의 스킬을 시전해 대련할 것이다. 각 대련에서의 우승자들끼리 계속해서 붙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를 죽이거나 소멸시킬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약효가 떨어질 시간이 되면 알아서 너희들의 몸은 이전으로 실체화가 될 것이다. 타격이 크면 잠시 병원에는 입원해야겠지만 그 이상으로 심각한 결과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마음 놓고 서로를 공격하도록. 자, 대련 실시!”
그 설마가 맞았다. 나는 나와 마주 보고 있는 단발머리 남자애의 실루엣을 봤다. 마구 흔들리는 것이 겁에 질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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