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조회 : 955 추천 : 0 글자수 : 4,689 자 2022-07-20
정혁수는 멍이 올라오기 시작해 시퍼레진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냥...졸업 후에도 국퇴교에서 생긴 관계들이 이어지는지가 궁금했거든요.”
나는 정혁수에게 도깨비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할 수 없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둘러댔다.
정혁수는 다행히도 내 질문의 의도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곧이어 그의 터져버린 입술이 호쾌하게 움직였다.
“나도 국퇴교 출신이니까 당연히 내가 졸업하기 전까지 같이 다니던 후배 놈들은 거의 다 알지. 그런데 그들과 지금도 연락하냐면은 그건 아니야. 계속 연락하고 지낼 만큼 가치 있는 놈이 없었거든.”
“가치요?”
“다들 약해 빠졌어. 곧 어디선가 뒈질 놈들하고 굳이 연락하며 지낼 필요는 없잖아.”
“아...그렇군요.”
나는 순간 정혁수가 42차례나 [바이킹의 정신]의 영향 속에서 자신의 길드원들까지 공격해 죽였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정혁수도 나처럼 환각에 빠져 힘을 주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도 [바이킹의 정신]이 발동되고 나서 혼령들에게 저지른 짓을 보면 믿기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지금 정혁수가 하는 말을 곱씹어보면, 그는 어쩌면 뼛속까지 힘의 논리를 숭배하는 자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자신이 죽인 길드원들에 대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정혁수로부터 도깨비에 대한 정보를 얻기는 틀린 것 같았다. 이재경처럼 정혁수도 아직 도깨비와 만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내가 미래에서 본 도깨비는 절대 저자가 저렇게 ‘약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와 별개로 정혁수를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기회가 있을 때 확인하자는 심사로 나는 주머니 속, 메두사의 눈알로 정혁수를 비췄다.
[정혁수의 스탯]
체력: 확인 불가
민첩: 확인 불가
근력: 확인 불가
지성: 확인 불가
영계 감응도: 확인 불가
속성 감응도: 확인 불가
메인 스킬: [지글거리는 폭포수] Lv. 확인불가
적성: 퍼니셔 / 알케미스트
양화주 선생 때도 그렇더니 정혁수도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었다. 슬슬 왜 그런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메두사의 눈알로 스탯을 확인할 수 있는 자들은 나와 얼추 비슷하거나 낮은 실력을 갖고 있는 자들인 것 같았다.
양화주 선생이나 끈질기게 목숨을 이어나간 퇴마단원 정혁수처럼 나와 실력차가 급격히 나는 사람의 경우에는 스탯을 확인하기가 불가능한 것 같았다.
그래도 정혁수의 염산 스킬의 명칭은 알아냈다. [지글거리는 폭포수]. 그가 내뿜는 염산에 혼령들의 살이 타다 녹아내리는 모습을 떠올리면 상당히 어울리는 스킬명이었다.
“강기찬이라고 했나?”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 정혁수가 나를 불렀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그의 눈을 바라봤다.
“네, 선배님.”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는 표정이다.
“너는 다른 애들처럼 쉽게 죽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던데.”
“그렇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환각 상태였지만 제가 선배님께 공격을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뭐, 그건 사과할 것 없어. 나도 마찬가지로 너를 공격했으니까. 아, 아니다...너 정말 내게 미안하면 내 밑으로 들어와라.”
나는 갑자기 말을 바꾸는 정혁수를 불안한 눈빛으로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흡족하게 웃어보이며 말했다.
“나중에 너도 졸업하고 나도 길드장이 되면 내 길드로 너를 데려갈게.”
결국 나를 스카우트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나는 국퇴교 옥상에서 황무영 선배에게 했던 것처럼 정혁수의 제안도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다 순간 이 상황을 내게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님, 저도 아직 사과를 못 받았습니다.”
“뭐?”
정혁수의 눈빛이 돌변했다.
“저도 선배님을 공격했지만 선배님도 저를 공격하시지 않았습니까? 함께 활동하다 그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뭐...그건 그렇지.”
“그러니 최소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노력하겠다는 사과와 약속은 받고 싶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선배님을 이런 식으로 공격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혁수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바이킹의 정신]이 발동된 상태에서 그런 약속이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그래야 네 마음이 편하다면 그러자.”
나는 얼른 내 손을 내밀며 정혁수에게 사과했다.
“제가 후배 된 도리로 먼저 사과드리고 약속하겠습니다. 저는 선배님을 공격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최대한 신경 쓰겠습니다.”
정혁수는 내가 내민 손을 보더니 굳이 이렇게까지 햐야 하는 표정으로 마지못해 하며 잡았다.
“자식, 유난은. 나도 미안하다.”
그때, 나는 정혁수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언령]을 발동시켰다.
“나도 앞으로 너를 공격하지 않도록 노력하마.”
철컹.
정혁수의 다짐과 함께 내 귓가에 자물쇠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게서는 검은 기운이 퍼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들이 정혁수에게도 보이거나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정혁수는 이제 내 [언령]의 지배하에 나를 절대 의도적으로 공격할 수 없게 됐다. 나로서는 보험을 들어놓은 셈이었다.
그가 원체 위험인물처럼 보이기도 했고 앞으로 도깨비와 접촉을 하면 언제 내게서 돌아설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정혁수와의 악수를 굳혔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런데 선배님께서 하신 제안을 당장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가 졸업하고 나서 다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막상 그때 가서 제 실력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제가 선배님의 발목을 잡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나는 최대한 내 탓을 하며 정혁수의 제안을 뿌리쳤다.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만, 네 뜻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정혁수는 자신에게 깍듯한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최대한 내 뜻을 존중해주려는 모습이었다.
* * *
“이재경, 그래서 [원소 분류]로 이 핵들을 확인해보면 어때?”
“이건 분석하기가 난해한데.”
이재경이 흘러내리는 안경을 검지로 안경을 밀어 올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이재경에게 사이키 형 혼령들로부터 얻은 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금지구역, 인천에서의 임무는 얼추 끝난 것 같았다. 그래서 다들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투 후의 폐허 상황은 눈을 뜨고 못 봐줄 정도였다. 혼령들의 시신을 저렇게 훼손시킨 주범자가 나였다. 그런데 그런 나조차도 보고있으면 속이 역해질 정도였다.
길드장은 수어시간을 기다려도 그 잔해가 기화돼 사라지지 않자 우리들에게 뒷수습을 시켰다. 그리하여 우리는 퇴마단원들과 함께 썩어 문드러지고 짓이겨지고 절단돼 부패의 악취를 풍기는 혼령들의 잔해를 모아서 태우고 있었다.
거기에 방성환의 [정화의 화염]과 정혁수의 [지글거리는 폭포수] 스킬이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잔해들이 타버리는 매캐한 냄새가 부패한 악취보다는 나았지만 코를 찌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수백 명의 혼령 잔해를 그렇게 처리한지 몇 시간 째가 되자 다들 슬슬 지쳐갔다. 나도 얼른 이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그래서 핵을 흡수할 방법이 없을까 이재경과 고민하고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흡수하려면 흡수자가 전 속성을 고루 갖추고 있거나 이 핵들의 속성을 변환시킬 수 있어야 할 것 같아. 그런데 지금으로써는 어느 쪽도 불가능해 보이는데.”
이재경이 고개를 젓자 나는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쳤다. 그리고 허망하게 보여주던 핵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는데 손에 메두사의 눈알이 스쳤다.
내 손가락이 메두사의 눈알을 만지작거리다 버릇처럼 이재경의 스탯을 확인했다. 주변인들의 스탯을 확인하는 과정이 몸에 밴 결과였다. 그러다 이제까지 한 번도 확인해보지 않은 그의 스킬이 보였다.
“이재경! 너 [현자의 돌] 스킬에 대해 고민해본 적 있어? 그거 새로 얻은 지도 꽤 됐잖아.”
“고민이야 해봤지. 그런데 이건 어떤 용도로 어떻게 쓰는지 전혀 모르겠던걸.”
“지금 적용해봐. 너는 알케미스트의 자질이 있잖아. 그것이 네 메인 스킬로 분류된 것을 보면, 혼령의 실체화처럼 대상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스킬이지 않을까?”
나는 내심 이재경의 [현자의 돌]이 이 핵들의 속성을 바꿔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스킬에 대해 고민하도록 부추겼던 것이다.
이재경은 내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했다. 보통 눈썰미와 눈치가 좋은 놈이 아니니까.
그는 곧장 고민에 빠지더니 입을 열었다.
“강기찬, 나 그 핵 좀 다시 보여줘볼래?”
“여기.”
내가 사이키 형 혼령의 핵은 내 손바닥 위에 내보이자 이재경이 그것에 손가락을 올리고 집중했다.
“간다!”
이재경의 기합에 나도 내심 긴장하게 됐다.
곧 핵을 건드리고 있던 이재경의 손가락이 내 손바닥과 직접 맞닿았다.
어?
핵이 없어졌다!
“이재경, 혹시 네가 핵을 흡수한 거야?”
“어...아니. 근데 [현자의 돌]로 핵을 다시 비실체화 시킨 것 같아.”
“뭐?”
“혼령 실체화의 과정을 역으로 진행했다고. 나도 의도한 것은 아니야.”
이재경이 어쩔 줄 몰려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마침, 그와 덩달아 우리 옆에 있던 토막난 혼령의 잔해가 스르륵 연기로 변하며 사라졌다.
“굳이 핵을 흡수하지 않아도 잔해를 소멸시키는 데에는 효과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럼 핵은 어디에 있어?”
“잠시만.......”
내 질문에 이재경이 잠시 곰방대를 꺼내 뜸을 들이더니 내 손바닥 위에 담배통을 뒤집었다. 그러자 은색의 작은 상자가 나왔다.
“일단은 [알짜배기 쏙쏙쏙]으로 비실체화된 혼령의 핵을 여기에 담아놨어.”
나는 눈앞의 상자를 빤히 바라보다 이재경에게 물었다.
“다른 핵들도 다 이렇게 만들어줄 수 있어?”
“뭐...가능할 것 같은데........”
이재경은 곧장 작업에 들어갔다. 메두사의 눈알로 다시 확인한 이재경의 스탯에서 [현자의 돌]이 어느새 Lv.2로 진화돼 있었다.
방성환의 [정화의 화염]이나 정혁수의 [지글거리는 폭포수]에 의해 처리가 되지 않은 혼령들의 잔해도 곧 전부 기화돼 사라졌다.
퇴마단원들은 갑자기 가속화된 청소작업에 어리둥절하더니 빨리 퇴근할 수 있겠다며 좋아했다.
“돌아가자.”
길드장의 마지막 외침으로 전원이 검은 승합차에 올라탔다.
* * *
학교에 돌아온 나와 방성환, 최만혁, 그리고 이재경은 녹초가 돼 있었다. 수많은 일을 한꺼번에 겪어 10년은 늙은 기분이었다.
어서 빨리 밀린 잠부터 자자.
다들 그런 생각으로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래서 나와 이재경도 기숙사로 돌아와 드디어 이불을 폈다. 나도 혼령들의 핵을 흡수하며 분명 새로운 스킬들이 생긴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당장 그것들을 컴퓨터로 확인할 의욕도 안 났다. 그만큼 너무 피곤했다.
이미 이재경은 곯아떨어진 상태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나도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는데 우리 기숙사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문앞의 손님을 무시하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큰일이 벌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지도 물어보지 않고 문을 벌컥 열었다. 말도 아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인물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강기찬, 너 환각제를 투여받고 싸우면서 극악무도한 행위를 보였다며! 국퇴교에서 네 정신감정을 세세하게 해서 보고하라는 명이 떨어졌어. 따라와!”
얼굴까지 가릴 정도로 로브를 뒤집어쓰고 음성변조의 목소리로 날카롭게 말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황무영 선배였다.
“그냥...졸업 후에도 국퇴교에서 생긴 관계들이 이어지는지가 궁금했거든요.”
나는 정혁수에게 도깨비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할 수 없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둘러댔다.
정혁수는 다행히도 내 질문의 의도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곧이어 그의 터져버린 입술이 호쾌하게 움직였다.
“나도 국퇴교 출신이니까 당연히 내가 졸업하기 전까지 같이 다니던 후배 놈들은 거의 다 알지. 그런데 그들과 지금도 연락하냐면은 그건 아니야. 계속 연락하고 지낼 만큼 가치 있는 놈이 없었거든.”
“가치요?”
“다들 약해 빠졌어. 곧 어디선가 뒈질 놈들하고 굳이 연락하며 지낼 필요는 없잖아.”
“아...그렇군요.”
나는 순간 정혁수가 42차례나 [바이킹의 정신]의 영향 속에서 자신의 길드원들까지 공격해 죽였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정혁수도 나처럼 환각에 빠져 힘을 주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도 [바이킹의 정신]이 발동되고 나서 혼령들에게 저지른 짓을 보면 믿기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지금 정혁수가 하는 말을 곱씹어보면, 그는 어쩌면 뼛속까지 힘의 논리를 숭배하는 자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자신이 죽인 길드원들에 대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정혁수로부터 도깨비에 대한 정보를 얻기는 틀린 것 같았다. 이재경처럼 정혁수도 아직 도깨비와 만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내가 미래에서 본 도깨비는 절대 저자가 저렇게 ‘약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와 별개로 정혁수를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기회가 있을 때 확인하자는 심사로 나는 주머니 속, 메두사의 눈알로 정혁수를 비췄다.
[정혁수의 스탯]
체력: 확인 불가
민첩: 확인 불가
근력: 확인 불가
지성: 확인 불가
영계 감응도: 확인 불가
속성 감응도: 확인 불가
메인 스킬: [지글거리는 폭포수] Lv. 확인불가
적성: 퍼니셔 / 알케미스트
양화주 선생 때도 그렇더니 정혁수도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었다. 슬슬 왜 그런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메두사의 눈알로 스탯을 확인할 수 있는 자들은 나와 얼추 비슷하거나 낮은 실력을 갖고 있는 자들인 것 같았다.
양화주 선생이나 끈질기게 목숨을 이어나간 퇴마단원 정혁수처럼 나와 실력차가 급격히 나는 사람의 경우에는 스탯을 확인하기가 불가능한 것 같았다.
그래도 정혁수의 염산 스킬의 명칭은 알아냈다. [지글거리는 폭포수]. 그가 내뿜는 염산에 혼령들의 살이 타다 녹아내리는 모습을 떠올리면 상당히 어울리는 스킬명이었다.
“강기찬이라고 했나?”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 정혁수가 나를 불렀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그의 눈을 바라봤다.
“네, 선배님.”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는 표정이다.
“너는 다른 애들처럼 쉽게 죽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던데.”
“그렇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환각 상태였지만 제가 선배님께 공격을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뭐, 그건 사과할 것 없어. 나도 마찬가지로 너를 공격했으니까. 아, 아니다...너 정말 내게 미안하면 내 밑으로 들어와라.”
나는 갑자기 말을 바꾸는 정혁수를 불안한 눈빛으로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흡족하게 웃어보이며 말했다.
“나중에 너도 졸업하고 나도 길드장이 되면 내 길드로 너를 데려갈게.”
결국 나를 스카우트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나는 국퇴교 옥상에서 황무영 선배에게 했던 것처럼 정혁수의 제안도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다 순간 이 상황을 내게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님, 저도 아직 사과를 못 받았습니다.”
“뭐?”
정혁수의 눈빛이 돌변했다.
“저도 선배님을 공격했지만 선배님도 저를 공격하시지 않았습니까? 함께 활동하다 그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뭐...그건 그렇지.”
“그러니 최소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노력하겠다는 사과와 약속은 받고 싶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선배님을 이런 식으로 공격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혁수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바이킹의 정신]이 발동된 상태에서 그런 약속이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그래야 네 마음이 편하다면 그러자.”
나는 얼른 내 손을 내밀며 정혁수에게 사과했다.
“제가 후배 된 도리로 먼저 사과드리고 약속하겠습니다. 저는 선배님을 공격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최대한 신경 쓰겠습니다.”
정혁수는 내가 내민 손을 보더니 굳이 이렇게까지 햐야 하는 표정으로 마지못해 하며 잡았다.
“자식, 유난은. 나도 미안하다.”
그때, 나는 정혁수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언령]을 발동시켰다.
“나도 앞으로 너를 공격하지 않도록 노력하마.”
철컹.
정혁수의 다짐과 함께 내 귓가에 자물쇠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게서는 검은 기운이 퍼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들이 정혁수에게도 보이거나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정혁수는 이제 내 [언령]의 지배하에 나를 절대 의도적으로 공격할 수 없게 됐다. 나로서는 보험을 들어놓은 셈이었다.
그가 원체 위험인물처럼 보이기도 했고 앞으로 도깨비와 접촉을 하면 언제 내게서 돌아설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정혁수와의 악수를 굳혔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런데 선배님께서 하신 제안을 당장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가 졸업하고 나서 다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막상 그때 가서 제 실력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제가 선배님의 발목을 잡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나는 최대한 내 탓을 하며 정혁수의 제안을 뿌리쳤다.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만, 네 뜻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정혁수는 자신에게 깍듯한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최대한 내 뜻을 존중해주려는 모습이었다.
* * *
“이재경, 그래서 [원소 분류]로 이 핵들을 확인해보면 어때?”
“이건 분석하기가 난해한데.”
이재경이 흘러내리는 안경을 검지로 안경을 밀어 올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이재경에게 사이키 형 혼령들로부터 얻은 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금지구역, 인천에서의 임무는 얼추 끝난 것 같았다. 그래서 다들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투 후의 폐허 상황은 눈을 뜨고 못 봐줄 정도였다. 혼령들의 시신을 저렇게 훼손시킨 주범자가 나였다. 그런데 그런 나조차도 보고있으면 속이 역해질 정도였다.
길드장은 수어시간을 기다려도 그 잔해가 기화돼 사라지지 않자 우리들에게 뒷수습을 시켰다. 그리하여 우리는 퇴마단원들과 함께 썩어 문드러지고 짓이겨지고 절단돼 부패의 악취를 풍기는 혼령들의 잔해를 모아서 태우고 있었다.
거기에 방성환의 [정화의 화염]과 정혁수의 [지글거리는 폭포수] 스킬이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잔해들이 타버리는 매캐한 냄새가 부패한 악취보다는 나았지만 코를 찌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수백 명의 혼령 잔해를 그렇게 처리한지 몇 시간 째가 되자 다들 슬슬 지쳐갔다. 나도 얼른 이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그래서 핵을 흡수할 방법이 없을까 이재경과 고민하고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흡수하려면 흡수자가 전 속성을 고루 갖추고 있거나 이 핵들의 속성을 변환시킬 수 있어야 할 것 같아. 그런데 지금으로써는 어느 쪽도 불가능해 보이는데.”
이재경이 고개를 젓자 나는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쳤다. 그리고 허망하게 보여주던 핵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는데 손에 메두사의 눈알이 스쳤다.
내 손가락이 메두사의 눈알을 만지작거리다 버릇처럼 이재경의 스탯을 확인했다. 주변인들의 스탯을 확인하는 과정이 몸에 밴 결과였다. 그러다 이제까지 한 번도 확인해보지 않은 그의 스킬이 보였다.
“이재경! 너 [현자의 돌] 스킬에 대해 고민해본 적 있어? 그거 새로 얻은 지도 꽤 됐잖아.”
“고민이야 해봤지. 그런데 이건 어떤 용도로 어떻게 쓰는지 전혀 모르겠던걸.”
“지금 적용해봐. 너는 알케미스트의 자질이 있잖아. 그것이 네 메인 스킬로 분류된 것을 보면, 혼령의 실체화처럼 대상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스킬이지 않을까?”
나는 내심 이재경의 [현자의 돌]이 이 핵들의 속성을 바꿔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스킬에 대해 고민하도록 부추겼던 것이다.
이재경은 내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했다. 보통 눈썰미와 눈치가 좋은 놈이 아니니까.
그는 곧장 고민에 빠지더니 입을 열었다.
“강기찬, 나 그 핵 좀 다시 보여줘볼래?”
“여기.”
내가 사이키 형 혼령의 핵은 내 손바닥 위에 내보이자 이재경이 그것에 손가락을 올리고 집중했다.
“간다!”
이재경의 기합에 나도 내심 긴장하게 됐다.
곧 핵을 건드리고 있던 이재경의 손가락이 내 손바닥과 직접 맞닿았다.
어?
핵이 없어졌다!
“이재경, 혹시 네가 핵을 흡수한 거야?”
“어...아니. 근데 [현자의 돌]로 핵을 다시 비실체화 시킨 것 같아.”
“뭐?”
“혼령 실체화의 과정을 역으로 진행했다고. 나도 의도한 것은 아니야.”
이재경이 어쩔 줄 몰려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마침, 그와 덩달아 우리 옆에 있던 토막난 혼령의 잔해가 스르륵 연기로 변하며 사라졌다.
“굳이 핵을 흡수하지 않아도 잔해를 소멸시키는 데에는 효과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럼 핵은 어디에 있어?”
“잠시만.......”
내 질문에 이재경이 잠시 곰방대를 꺼내 뜸을 들이더니 내 손바닥 위에 담배통을 뒤집었다. 그러자 은색의 작은 상자가 나왔다.
“일단은 [알짜배기 쏙쏙쏙]으로 비실체화된 혼령의 핵을 여기에 담아놨어.”
나는 눈앞의 상자를 빤히 바라보다 이재경에게 물었다.
“다른 핵들도 다 이렇게 만들어줄 수 있어?”
“뭐...가능할 것 같은데........”
이재경은 곧장 작업에 들어갔다. 메두사의 눈알로 다시 확인한 이재경의 스탯에서 [현자의 돌]이 어느새 Lv.2로 진화돼 있었다.
방성환의 [정화의 화염]이나 정혁수의 [지글거리는 폭포수]에 의해 처리가 되지 않은 혼령들의 잔해도 곧 전부 기화돼 사라졌다.
퇴마단원들은 갑자기 가속화된 청소작업에 어리둥절하더니 빨리 퇴근할 수 있겠다며 좋아했다.
“돌아가자.”
길드장의 마지막 외침으로 전원이 검은 승합차에 올라탔다.
* * *
학교에 돌아온 나와 방성환, 최만혁, 그리고 이재경은 녹초가 돼 있었다. 수많은 일을 한꺼번에 겪어 10년은 늙은 기분이었다.
어서 빨리 밀린 잠부터 자자.
다들 그런 생각으로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래서 나와 이재경도 기숙사로 돌아와 드디어 이불을 폈다. 나도 혼령들의 핵을 흡수하며 분명 새로운 스킬들이 생긴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당장 그것들을 컴퓨터로 확인할 의욕도 안 났다. 그만큼 너무 피곤했다.
이미 이재경은 곯아떨어진 상태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나도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는데 우리 기숙사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문앞의 손님을 무시하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큰일이 벌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지도 물어보지 않고 문을 벌컥 열었다. 말도 아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인물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강기찬, 너 환각제를 투여받고 싸우면서 극악무도한 행위를 보였다며! 국퇴교에서 네 정신감정을 세세하게 해서 보고하라는 명이 떨어졌어. 따라와!”
얼굴까지 가릴 정도로 로브를 뒤집어쓰고 음성변조의 목소리로 날카롭게 말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황무영 선배였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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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팀플 퇴마 천재가 세계를 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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