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조회 : 877 추천 : 0 글자수 : 4,434 자 2022-07-20
최만혁이 나를 도우려고 하다 몸이 굳어버려서 당황한 사이, 나는 계속해서 내 모습을 한 구미호의 분신들을 피해다녀야 했다.
분신들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려고 해봤자 타격이 있으려면 [태풍 속의 파도]를 써야 했다. 그런데 내가 그 스킬을 쓰면 저들도 자연히 나를 공격할 때 같은 스킬이 붙을 것이었다.
그럼 나는 내 스킬로 강화된 공격을 받아내야 하는 꼴이었다. [태풍 속의 파도]의 파괴력을 익히 아는 나였기에 그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다.
지금은 남이 나를 도와줄 때까지 계속 분신들을 피해 다니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서 방성환을 이용해 다른 학생들의 분신들을 먼저 처리한 것이었는데...최만혁과 방성환 외에는 선뜻 나를 도와주려고 시도하는 애가 없었다.
내 분신들을 상대할 엄두를 못 내는 것이었다.
나는 또다시 구미호의 분신이 내 위로 올라타려는 것을 피하며 공중제비를 돌았다.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까?
나는 대강의실을 둘러봤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양화주 선생이었다.
하지만 내가 정신 나간 토끼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어도 그 선생은 여유로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방성환의 [가뭄의 산불]로 저 선생에게 붙었던 분신들이 사라진 뒤라 가능한 여유였다.
나는 새삼 그가 얄미워졌다. 그의 분신만은 남겨두라고 할 걸 그랬나?
나는 전혀 나를 도와줄 기미를 보이지 않는 선생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는 다음 타자를 찾아 나섰다. 그때, 생각지 못한 인물을 발견했다.
장지우!
쟤도 장검을 쓰는 기술로는 천재급이었다. 내 [언령]으로 묶여있지 않은 저 녀석이라면 내 분신들을 해결해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장지우! 나 좀 도와줘!”
내가 그녀에게 외치자 장지우는 감격한 표정이었다.
“내가 정말 너를 도와줘도 돼?”
“야! 나 이렇게 바쁘게 공격들을 피해 다니는 거 안 보이냐?”
“네 팬클럽의 회장으로서 이거 정말 영광인데?”
나는 이 상황에서 저런 정신 나간 말을 하는 장지우에게 괜히 부탁했나 싶었다. 그래도 장지우는 이재경에게 내 모습을 한 세 명 중 진짜가 누군지 다시 확인하는 조심성까지 보였다.
내 왼편에서 이재경의 말소리가 들렸다.
“지금 방금 또 공중제비를 돈 놈이 강기찬이야.”
“확실해?”
“내 목숨을 걸고 장담할 수 있어.”
이재경과의 대화 후, 장지우는 자신의 장검을 들었다. 도약하며 검을 머리 위로 치켜든 장지우가 순식간에 구미호의 분신 앞을 가로막았다.
장지우의 검날에서 황금빛이 번쩍였다. 더불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장지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바람의 검심]은 저런 스킬이었구나!
나는 장지우의 공격을 피한 나머지 분신 한 놈에게 맨주먹을 날리며 감탄했다.
장지우가 괜히 천재라고 소문이 났던 것은 아니었다.
다시 장지우의 모습이 포착됐을 때는 이미 분신 하나가 먼지로 부서져 사라진 상태였다.
그렇다면 지금 나와 함께 무식하게 주먹다짐을 하는 이 분신이야말로 구미호의 본체라는 뜻이었다.
비등한 괴력으로 서로를 상대하다 보니 서로 맷집만 느는 느낌이었다.
나는 구미호가 장지우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그것을 향해 발차기를 날리며 장지우에게 외쳤다.
“장지우, 마지막도 부탁해!”
장지우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 순식간에 사라졌다.
곧 검날의 황금빛이 분신의 머리 위에서 번쩍였다.
내 앞의 분신은 내 돌려차기 공격을 막느라 장지우의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했다.
사실, 장지우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에 애초에 나와 동등한 민첩성을 보이는 분신에게 그녀를 피하는 것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남았던 구미호의 본체가 장지우의 검날에 의해 세로로 깔끔히 갈라졌다. 혼령의 몸뚱이가 양쪽으로 나뉘면서 구미호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나와 장지우는 구미호 형 혼령의 잔해를 내려다 봤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구미호는 실체화가 되지 않은 반투명한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내 눈에만 보이는 혼령의 핵이 구미호 형 혼령의 가슴 부근에서 밝게 빛났다.
황토색.
토(土) 속성이라는 소리였다.
이재경에게 저 혼령의 실체화를 부탁한 뒤 내가 저 핵을 직접 파괴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도와준 장지우에게 저것을 양보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마침, 장지우도 토(土) 속성과 공명할 수 있으니까.
“장지우, 도와줘서 고마워. 아무래도 저 혼령은 네 몫인 것 같다.”
“강기찬,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저것을 네 손으로 소멸시키라고. 저것의 왼쪽 가슴 속에 손을 집어넣어봐.”
장지우는 나를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래도 내 팬클럽 회원답게 내 지시를 잘 따라줬다.
장지우의 하얀 손이 반투명한 은색 혼령의 몸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어느덧, 장지우의 손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핵과 닿으면서 자신이 그것과 공명하는 감각을 느낀 것이었다.
두근.
내 눈에도 핵이 장지우의 몸속으로 흡수되고 싶어서 박동하는 것이 보였다.
“괜찮아. 받아들여도 돼.”
나는 긴장한 장지우에게 조용히 말했다. 장지우가 이번에도 내 말을 순순히 따르자 구미호 형 혼령의 핵이 장지우의 몸속으로 쑥 들어갔다.
핵이 사라진 혼령의 잔해는 즉시 기화돼 없어졌다. 장지우의 장검에 당하면서 흘린 혼령의 누런 피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학생들은 이 모든 상황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혼령의 핵을 흡수해본 내 측근들뿐인 것 같았다.
이 와중에 양화주 선생의 눈빛만은 상당히 날카로웠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양화주 선생은 애초에 내가 혼령의 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가 이 많은 학생 중 나를 콕 집어 구미호 형 혼령과 마주하게 만들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야외가 아닌 대강의실에서 이런 수업을 진행한 이유도 아마 나보고 다른 애들도 전부 구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양화주 선생이 어떻게 내 능력을 알아챘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에게도 메두사의 눈알과 같은 아이템이 있어서 내 스탯을 전부 읽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양화주 선생의 반응보다 장지우에게 어떤 새로운 스킬이 생겼는지가 더 궁금했다. 내 손은 주머니 속의 메두사의 눈알을 돌려 장지우를 비췄다.
[닌자의 은둔술] Lv.0
나는 장지우의 새 스킬을 확인하자마자 눈이 커졌다.
저것은 내가 너무나 잘 아는 스킬이었다. 전생에도 그렇게나 갖고 싶어하던 스킬이었기 때문이다.
저 스킬은 닌자처럼 모습을 감추는 스킬로 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이었다. 그래서 매번 수업을 빠지고 싶어하는 내게 아주 유용할 스킬이기도 했다. 전생에도 결국 얻지는 못했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어째서 내가 그렇게나 많은 혼령의 핵을 흡수했는데도 저 스킬이 안 나타났는지가 이해됐다.
나는 수(水) 속성의 핵들만 열심히 흡수했는데 저 스킬은 토(土) 속성이었던 것이다. 내가 애초에 취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다.
그래도 저 스킬이 탐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지금의 나는 전생과 전혀 다른 목적을 위해 저 스킬을 유용히 쓸 자신이 있었다.
내가 갖지 못할 스킬이라면 그 스킬을 가진 사람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이 있었다.
마침, 양화주 선생이 수업을 마치려는 조짐을 보였다.
“학생 여러분. 오늘의 수업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상 수업을 마칩니다. 모두 기숙사로 돌아가 휴식을 취해도 무방합니다.”
양화주 선생이 교탁을 한번 탕 치더니 빠르게 대강의실에서 퇴장했다. 그의 바쁜 걸음으로 미루어보아 오늘의 수업에서 있었던 일들을 상부에 보고하러 가는 것임이 분명했다.
학생들이 하나둘씩 기숙사로 돌아가면서 교실에는 어느덧 나와 장지우만 남았다.
장지우는 처음으로 혼령의 핵을 흡수한 감각이 경이로운지 지금까지도 그대로 굳어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불렀다.
“야, 장지우!”
“어, 강기찬.”
“너 스킬 진짜 간지나더라! 구미호 형 혼령을 성공적으로 소멸시킨 거 축하해!”
“고마워.”
“너, 근데 나중에 퇴마단원이 될 생각이지?”
“당연하지. 너는 아니야?”
“나도 뽑아준다면 국속퇴마단에 들어가야겠지. 그런 의미로, 우리 나중에 퇴마단원이 돼도 같이 활동할래?”
“지금 나한테 같은 길드에 들자는 거야?”
“응. 그게 내 길드면 더 좋고.”
“너, 길드장 하려고?”
“뭐, 가능하면.”
장지우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래!”
그녀의 대답이 너무 빨라서 나는 미처 [언령] 스킬을 발동시키지도 못했다. 나는 뒤늦게나마 [언령]을 펼친 뒤, 장지우를 바라봤다.
“다시 한 번만 대답해줄래?”
“하겠다고.”
“뭐를?”
“너와 퇴마단에서 같이 활동하겠다고, 이 멍청아! 네가 먼저 제안해놓고 내게 되묻기냐?”
철컹.
[언령]의 자물쇠 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성공이었다.
이제 내 측근 중 은둔술을 쓸 수 있는 자가 생겼다.
“고마워. 앞으로 잘 부탁한다, 장지우.”
“나야말로 잘 부탁해, 강기찬.”
장지우의 미소가 유난히 해사해서 나는 그녀 몰래 [언령]을 쓴 것이 마음에 걸렸다.
* * *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방성환과 최만혁의 방을 잠시 드렸다. 내 주머니에 남아있는 환약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것들은 양화주 선생이 [바이킹의 정신] 후유증을 해결해준다며 내게 줬던 환약이었다. 그것을 먹어보고 나니 확실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내 주머니에 남아있는 환약은 딱 세 알이었다.
마치 양화주 선생이 나보고 [바이킹의 정신]에 걸렸던 나머지 세 놈에게도 네가 이것들을 전달하라고 무언의 지시를 내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지시라면 따라도 나쁠 것이 없어 보였기에 나는 내 방에 들리기 전에 둘의 방부터 찾아간 것이었다. 마침 그 둘이서 같은 방을 배정받았다.
“방성환, 최만혁! 너희 머리 좀 아프지 않냐?”
내가 둘의 방문 앞에서 묻자 둘이 나를 쳐다봤다.
“강기찬, 혹시 너도 아프냐?”
“아니. 아팠었는데 지금은 안 아파. 이 환약, 양화주 선생님이 주더라. 이걸 먹으면 현장에서 우리가 복용했던 환각제의 후유증이 사라진데.”
“그래? 독은 아니야?”
“내가 먹어보니 아니었어. 먹든 말든 너희 자유지만 나는 너네에게 분명 전달했다.”
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환약을 받아가는 최만혁과 방성환을 뒤로 하고 내 방으로 향했다.
걸음을 옮기던 중, 갑자기 양화주 선생이 환약을 전달하며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그의 선조가 [바이킹의 정신]을 만들었다고?
양화주 선생의 선조 중 그런 짓을 벌일 만큼 능력이 출중한 사람은 딱 하나였다.
전설의 알케미스트, 양화당!
양화당 선생이 왜 이런 것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사례로부터 한 가지 가능성을 봤다.
알케미스트는 실력이 뛰어날 경우, 환각제를 제조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재경도 잘만 교육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분신들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려고 해봤자 타격이 있으려면 [태풍 속의 파도]를 써야 했다. 그런데 내가 그 스킬을 쓰면 저들도 자연히 나를 공격할 때 같은 스킬이 붙을 것이었다.
그럼 나는 내 스킬로 강화된 공격을 받아내야 하는 꼴이었다. [태풍 속의 파도]의 파괴력을 익히 아는 나였기에 그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다.
지금은 남이 나를 도와줄 때까지 계속 분신들을 피해 다니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서 방성환을 이용해 다른 학생들의 분신들을 먼저 처리한 것이었는데...최만혁과 방성환 외에는 선뜻 나를 도와주려고 시도하는 애가 없었다.
내 분신들을 상대할 엄두를 못 내는 것이었다.
나는 또다시 구미호의 분신이 내 위로 올라타려는 것을 피하며 공중제비를 돌았다.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까?
나는 대강의실을 둘러봤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양화주 선생이었다.
하지만 내가 정신 나간 토끼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어도 그 선생은 여유로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방성환의 [가뭄의 산불]로 저 선생에게 붙었던 분신들이 사라진 뒤라 가능한 여유였다.
나는 새삼 그가 얄미워졌다. 그의 분신만은 남겨두라고 할 걸 그랬나?
나는 전혀 나를 도와줄 기미를 보이지 않는 선생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는 다음 타자를 찾아 나섰다. 그때, 생각지 못한 인물을 발견했다.
장지우!
쟤도 장검을 쓰는 기술로는 천재급이었다. 내 [언령]으로 묶여있지 않은 저 녀석이라면 내 분신들을 해결해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장지우! 나 좀 도와줘!”
내가 그녀에게 외치자 장지우는 감격한 표정이었다.
“내가 정말 너를 도와줘도 돼?”
“야! 나 이렇게 바쁘게 공격들을 피해 다니는 거 안 보이냐?”
“네 팬클럽의 회장으로서 이거 정말 영광인데?”
나는 이 상황에서 저런 정신 나간 말을 하는 장지우에게 괜히 부탁했나 싶었다. 그래도 장지우는 이재경에게 내 모습을 한 세 명 중 진짜가 누군지 다시 확인하는 조심성까지 보였다.
내 왼편에서 이재경의 말소리가 들렸다.
“지금 방금 또 공중제비를 돈 놈이 강기찬이야.”
“확실해?”
“내 목숨을 걸고 장담할 수 있어.”
이재경과의 대화 후, 장지우는 자신의 장검을 들었다. 도약하며 검을 머리 위로 치켜든 장지우가 순식간에 구미호의 분신 앞을 가로막았다.
장지우의 검날에서 황금빛이 번쩍였다. 더불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장지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바람의 검심]은 저런 스킬이었구나!
나는 장지우의 공격을 피한 나머지 분신 한 놈에게 맨주먹을 날리며 감탄했다.
장지우가 괜히 천재라고 소문이 났던 것은 아니었다.
다시 장지우의 모습이 포착됐을 때는 이미 분신 하나가 먼지로 부서져 사라진 상태였다.
그렇다면 지금 나와 함께 무식하게 주먹다짐을 하는 이 분신이야말로 구미호의 본체라는 뜻이었다.
비등한 괴력으로 서로를 상대하다 보니 서로 맷집만 느는 느낌이었다.
나는 구미호가 장지우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그것을 향해 발차기를 날리며 장지우에게 외쳤다.
“장지우, 마지막도 부탁해!”
장지우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 순식간에 사라졌다.
곧 검날의 황금빛이 분신의 머리 위에서 번쩍였다.
내 앞의 분신은 내 돌려차기 공격을 막느라 장지우의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했다.
사실, 장지우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에 애초에 나와 동등한 민첩성을 보이는 분신에게 그녀를 피하는 것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남았던 구미호의 본체가 장지우의 검날에 의해 세로로 깔끔히 갈라졌다. 혼령의 몸뚱이가 양쪽으로 나뉘면서 구미호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나와 장지우는 구미호 형 혼령의 잔해를 내려다 봤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구미호는 실체화가 되지 않은 반투명한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내 눈에만 보이는 혼령의 핵이 구미호 형 혼령의 가슴 부근에서 밝게 빛났다.
황토색.
토(土) 속성이라는 소리였다.
이재경에게 저 혼령의 실체화를 부탁한 뒤 내가 저 핵을 직접 파괴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도와준 장지우에게 저것을 양보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마침, 장지우도 토(土) 속성과 공명할 수 있으니까.
“장지우, 도와줘서 고마워. 아무래도 저 혼령은 네 몫인 것 같다.”
“강기찬,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저것을 네 손으로 소멸시키라고. 저것의 왼쪽 가슴 속에 손을 집어넣어봐.”
장지우는 나를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래도 내 팬클럽 회원답게 내 지시를 잘 따라줬다.
장지우의 하얀 손이 반투명한 은색 혼령의 몸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어느덧, 장지우의 손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핵과 닿으면서 자신이 그것과 공명하는 감각을 느낀 것이었다.
두근.
내 눈에도 핵이 장지우의 몸속으로 흡수되고 싶어서 박동하는 것이 보였다.
“괜찮아. 받아들여도 돼.”
나는 긴장한 장지우에게 조용히 말했다. 장지우가 이번에도 내 말을 순순히 따르자 구미호 형 혼령의 핵이 장지우의 몸속으로 쑥 들어갔다.
핵이 사라진 혼령의 잔해는 즉시 기화돼 없어졌다. 장지우의 장검에 당하면서 흘린 혼령의 누런 피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학생들은 이 모든 상황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혼령의 핵을 흡수해본 내 측근들뿐인 것 같았다.
이 와중에 양화주 선생의 눈빛만은 상당히 날카로웠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양화주 선생은 애초에 내가 혼령의 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가 이 많은 학생 중 나를 콕 집어 구미호 형 혼령과 마주하게 만들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야외가 아닌 대강의실에서 이런 수업을 진행한 이유도 아마 나보고 다른 애들도 전부 구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양화주 선생이 어떻게 내 능력을 알아챘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에게도 메두사의 눈알과 같은 아이템이 있어서 내 스탯을 전부 읽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양화주 선생의 반응보다 장지우에게 어떤 새로운 스킬이 생겼는지가 더 궁금했다. 내 손은 주머니 속의 메두사의 눈알을 돌려 장지우를 비췄다.
[닌자의 은둔술] Lv.0
나는 장지우의 새 스킬을 확인하자마자 눈이 커졌다.
저것은 내가 너무나 잘 아는 스킬이었다. 전생에도 그렇게나 갖고 싶어하던 스킬이었기 때문이다.
저 스킬은 닌자처럼 모습을 감추는 스킬로 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이었다. 그래서 매번 수업을 빠지고 싶어하는 내게 아주 유용할 스킬이기도 했다. 전생에도 결국 얻지는 못했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어째서 내가 그렇게나 많은 혼령의 핵을 흡수했는데도 저 스킬이 안 나타났는지가 이해됐다.
나는 수(水) 속성의 핵들만 열심히 흡수했는데 저 스킬은 토(土) 속성이었던 것이다. 내가 애초에 취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다.
그래도 저 스킬이 탐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지금의 나는 전생과 전혀 다른 목적을 위해 저 스킬을 유용히 쓸 자신이 있었다.
내가 갖지 못할 스킬이라면 그 스킬을 가진 사람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이 있었다.
마침, 양화주 선생이 수업을 마치려는 조짐을 보였다.
“학생 여러분. 오늘의 수업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상 수업을 마칩니다. 모두 기숙사로 돌아가 휴식을 취해도 무방합니다.”
양화주 선생이 교탁을 한번 탕 치더니 빠르게 대강의실에서 퇴장했다. 그의 바쁜 걸음으로 미루어보아 오늘의 수업에서 있었던 일들을 상부에 보고하러 가는 것임이 분명했다.
학생들이 하나둘씩 기숙사로 돌아가면서 교실에는 어느덧 나와 장지우만 남았다.
장지우는 처음으로 혼령의 핵을 흡수한 감각이 경이로운지 지금까지도 그대로 굳어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불렀다.
“야, 장지우!”
“어, 강기찬.”
“너 스킬 진짜 간지나더라! 구미호 형 혼령을 성공적으로 소멸시킨 거 축하해!”
“고마워.”
“너, 근데 나중에 퇴마단원이 될 생각이지?”
“당연하지. 너는 아니야?”
“나도 뽑아준다면 국속퇴마단에 들어가야겠지. 그런 의미로, 우리 나중에 퇴마단원이 돼도 같이 활동할래?”
“지금 나한테 같은 길드에 들자는 거야?”
“응. 그게 내 길드면 더 좋고.”
“너, 길드장 하려고?”
“뭐, 가능하면.”
장지우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래!”
그녀의 대답이 너무 빨라서 나는 미처 [언령] 스킬을 발동시키지도 못했다. 나는 뒤늦게나마 [언령]을 펼친 뒤, 장지우를 바라봤다.
“다시 한 번만 대답해줄래?”
“하겠다고.”
“뭐를?”
“너와 퇴마단에서 같이 활동하겠다고, 이 멍청아! 네가 먼저 제안해놓고 내게 되묻기냐?”
철컹.
[언령]의 자물쇠 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성공이었다.
이제 내 측근 중 은둔술을 쓸 수 있는 자가 생겼다.
“고마워. 앞으로 잘 부탁한다, 장지우.”
“나야말로 잘 부탁해, 강기찬.”
장지우의 미소가 유난히 해사해서 나는 그녀 몰래 [언령]을 쓴 것이 마음에 걸렸다.
* * *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방성환과 최만혁의 방을 잠시 드렸다. 내 주머니에 남아있는 환약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것들은 양화주 선생이 [바이킹의 정신] 후유증을 해결해준다며 내게 줬던 환약이었다. 그것을 먹어보고 나니 확실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내 주머니에 남아있는 환약은 딱 세 알이었다.
마치 양화주 선생이 나보고 [바이킹의 정신]에 걸렸던 나머지 세 놈에게도 네가 이것들을 전달하라고 무언의 지시를 내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지시라면 따라도 나쁠 것이 없어 보였기에 나는 내 방에 들리기 전에 둘의 방부터 찾아간 것이었다. 마침 그 둘이서 같은 방을 배정받았다.
“방성환, 최만혁! 너희 머리 좀 아프지 않냐?”
내가 둘의 방문 앞에서 묻자 둘이 나를 쳐다봤다.
“강기찬, 혹시 너도 아프냐?”
“아니. 아팠었는데 지금은 안 아파. 이 환약, 양화주 선생님이 주더라. 이걸 먹으면 현장에서 우리가 복용했던 환각제의 후유증이 사라진데.”
“그래? 독은 아니야?”
“내가 먹어보니 아니었어. 먹든 말든 너희 자유지만 나는 너네에게 분명 전달했다.”
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환약을 받아가는 최만혁과 방성환을 뒤로 하고 내 방으로 향했다.
걸음을 옮기던 중, 갑자기 양화주 선생이 환약을 전달하며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그의 선조가 [바이킹의 정신]을 만들었다고?
양화주 선생의 선조 중 그런 짓을 벌일 만큼 능력이 출중한 사람은 딱 하나였다.
전설의 알케미스트, 양화당!
양화당 선생이 왜 이런 것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사례로부터 한 가지 가능성을 봤다.
알케미스트는 실력이 뛰어날 경우, 환각제를 제조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재경도 잘만 교육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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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팀플 퇴마 천재가 세계를 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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