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조회 : 842 추천 : 0 글자수 : 4,527 자 2022-07-20
내 기숙사 방으로 돌아온 나는 이재경부터 찾았다.
그는 막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는 것 같았다.
“이재경, 우리가 먹었던 환각제, [바이킹의 정신] 기억나?”
“응. 그건 왜?”
“혹시 네 알케미스트 스킬로 그 환각제나 다른 비슷한 환각제를 만들 수 있을까?”
“음. 딱히 시도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그럼 지금이라도 시도해봐.”
“뭐를?”
“환각제 만드는 것을.”
내 말에 이재경이 보기 드물게 내 앞에서 팔짱을 꼈다.
“강기찬!”
“응?”
“내가 감 나오라 하면 감 나오고 배 나오라 하면 배 나오는 인간인 줄 알아?”
아무래도 내가 이재경에게 너무 압박을 줬던 모양이다.
“아니, 딱히 그렇게 생각했다기보다는 네 실력을 원체 높이 평가했던 거지. 너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해서 물었던 거야.”
내 말에 이재경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런데 너, 곰방대도 그렇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스킬명도 그렇고, 방금 그 속담 선택도 그렇고 진짜 옛날 사람 같은 거 알아?”
나는 그 틈을 타서 이재경을 살짝 놀렸다. 그랬더니 그가 다시 발끈했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그 옛날 사람다운 스킬을 잘 이용해서 약 좀 만들어보자고.”
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웃으며 말하자 그가 고래를 저었다.
“그래, 내가 졌다.”
이재경은 흘러내리는 안경을 한번 밀어 올리더니 곰방대를 꺼냈다.
그리고 자신의 주머니를 한참 뒤지더니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뭔가를 꺼냈다.
“그건 뭐야?”
“현장 파견 때 먹었던 만찬의 일부.”
“내가 챙기라고 해서 챙겼던 것?”
“응.”
“그거 그때 다 안 먹었던 거야?”
“나는 뒤늦게 혹시나 해서 조금만 떼어먹었어.”
“그걸 아직 갖고 있다는 게 대단하다.”
“이렇게 갖고 있으니까 이게 환각제의 샘플이 될 수 있잖아. 샘플이 있어야 나도 뭔가를 시도하지. 내가 천재도 아니고 어떻게 맨땅에 헤딩하며 갑자기 약을 만들어내냐?”
“너 정도면 천재 맞거든.”
“헛소리한다.”
나는 웃으며 이재경이 하는 대로 놔뒀다. 그는 자신의 변화를 못 느끼는 것 같지만 내 눈에는 확실히 보였다.
이재경은 전보다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다. 더불어 행동과 말투도 달라지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능력을 하나씩 개발해 나아가면서 생기는 변화일 것이다.
저놈의 준비성과 조심성은 여전한 것 같지만.
이재경은 [알짜배기 쏙쏙쏙]으로 챙겨온 음식의 잔재로부터 [바이킹의 정신]을 추출했다.
나는 그 과정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다 뒤늦게 내 주머니에 있는 환약을 떠올렸다.
아직 양화주 선생이 준 환약을 이재경에게는 주지 않은 상태였다.
“이재경, 이거, 너도 먹으려면 먹어. 양화주 선생의 말에 의하면 [바이킹의 정신]이 남기는 후유증을 없애준다는데.”
“그래? 잠깐 확인 좀 해볼게.”
이재경은 곰방대의 담배통에 추출한 [바이킹의 정신]을 한쪽에 덜어놓더니 내게서 받아간 환약을 담배통 안에 넣었다.
“이재경, 너 뭐 하는 거냐?”
“이게 [바이킹의 정신]이 남기는 후유증을 없애준다며. 제조 성분이 [바이킹의 정신]과 어떻게 다른지 확인해보려고.”
“담배통 안에 그걸 넣으면 그런 것도 보여?”
“나도 몰라. 그냥 해보는 거야.”
그렇게 막무가내로 자신의 실험에 집중하던 이재경이 곧 탄성을 질렀다.
“와! 보인다! [바이킹의 정신]의 성분 조합을 정확히 역으로 바꿔놓은 건데. 거의 환각제의 해독제 수준이야. 이 두 가지만 연구해도 약과 해독제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겠어. 그런데 이런 걸 애초에 누가 만들었을까? 대단한 사람이었겠는데.”
“양화당님이래.”
“그 전설의 알케미스트, 양화당님?”
“응.”
“어쩐지.......”
“근데 내가 보기에는 네가 조만간 그 전설의 뒤를 이을 수 있겠는데.”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또 한다, 너.”
이재경은 내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자신의 실험에 집중했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이런 인재를 도깨비보다 먼저 포섭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강기찬, 아무래도 [바이킹의 정신]과 같은 환각제를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것은 내 능력 밖인 것 같아.”
“그래? 뭐. 지금은 안 돼도 나중에 네가 성장하면서 가능해질 수도 있는 일이니까.”
“대신...지금 있는 [바이킹의 정신]과 양화주 선생이 준 해독환을 여러 개로 복사해둘 수는 있을 것 같아.”
“그게 제조하는 것하고 무슨 차이야!”
내가 이재경의 여상한 태도에 기겁하며 묻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엄연히 제조와 복사는 다르지. 제조는 원재료들로부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과정이니까. 복사는 있는 것을 그대로 베끼는 거고.”
나는 한동안 그의 앞에서 침묵하다 얼른 덧붙였다.
“이재경, 우리 앞으로도 계속 친하게 지내자!”
“강기찬, 뭐 잘못 먹었냐?”
“해독환 먹었지.”
“혹시 이 해독환에 정신 해리를 일으키는 성분이 있었나?”
이재경이 홀로 중얼거리며 [바이킹의 정신]과 해독환을 복사하기 시작했다.
“야, 이왕 하는 것, 최대한 많이 해둬. 우리에게 언제 필요할지 모르니까.”
내가 신나서 말하자 이재경은 고개만 끄덕였다. 그의 곰방대가 바쁘게 움직였다. 길어졌다 짧아지기를 반복하며 환약과 액체화된 [바이킹의 정신] 스킬을 연기로 방출했다.
“어, 근데 이재경. 오늘따라 네 곰방대에 새겨진 무늬에서 빛이 더 많이 나는 것 같아.”
“어디?”
한 차례 환각제와 해독환을 복사해 작은 알약들로 만들어낸 이재경이 고개를 들었다.
“여기.”
내가 곰방대의 옆면을 가리키자 이재경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 옛날부터 새겨져 있던 고어인데. 곰방대의 힘을 쓰다 보면 가끔 여기서 빛이 나오더라고.”
“이 고어에 뭐라고 적혀있는지 알아?”
“내가 고어를 읽을 줄은 몰라서.”
“고어의 내용이 진짜 궁금한데. 이거 가족들이 준 유물이라며. 가족들이 알려주지는 않았어?”
“대충 뜻을 해석해주기는 했어. 근데 아마 정확하지는 않을걸.”
“뭐라고 들었는데?”
“이승과 저승을 찰흙으로 빚은 뒤 마음을 담아 주무르리.”
“그게 무슨 뜻이야?”
“나도 몰라. 그러니까 아마 우리 가족도 고어를 잘못 읽은 것으로 생각했지.”
“근데 그 글귀가 묘하게 네가 곰방대를 활용하는 방법과 어울리기는 한다.”
“흠......어째든, 환각제와 해독환들은 여기에 있어.”
“고생했다. 참, 내가 이번 현장에서 얻은 혼령의 핵 중 목 속성인 것들을 넘겨줄게.”
나는 초록빛을 발하는 혼령의 핵 3개를 품에서 꺼낸 뒤 이재경에게 건넸다.
“이걸 정말 나에게 다 줘도 되는 거야?”
“내가 구한 거니까 내 마음이지. 내 주변에서 가장 친한 목 속성인 동료는 너뿐이고.”
“고맙다 강기찬. 앞으로도 내가 네 가장 친한 목 속성인 동료로 남으마.”
이재경이 농담을 하며 기꺼이 핵들을 받아갔다.
두근.
그것들은 이재경의 손가락 끝이 닿자마자 순식간에 그와 공명하며 그의 몸속으로 흡수됐다.
“이번에는 무슨 스킬이 생겼을까?”
내 말에 이재경이 고개를 저었다.
“큰 기대는 하지 마. 저번에도 목 속성의 핵을 엄청나게 흡수했는데 그것 중 태반이 [오행 분석]이더라고.”
“야, 그 [오행 분석] 덕에 네가 나를 구미호의 분신들과 구별해낸 거잖아.”
“아, 나도 [오행 분석]이 별보일 없는 스킬이라는 것은 아니야. 사실,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어. 그래도 멋진 전투용 스킬은 아니라 조금 아쉬웠다는 말이지.”
“그럼 이번에는 [오행 분석]이 아니기를 빌자. 얼른 컴퓨터로 스탯을 확인해봐.”
내 재촉에 이재경이 스탯 확인을 클릭했다.
[이재경 학생의 현재 스탯]
체력: 5
민첩: 0
근력: 측정 불가
지성: 측정 불가
영계 감응도: 200
속성 감응도: 미발현
메인 스킬: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Lv. 10
[현자의 돌] Lv. 2
[한오백년 나무의 뿌리] Lv. 0
서브 스킬: [길어져라 쭉쭉이] Lv.10
[알짜배기 쏙쏙쏙] Lv.4
[원소 분류] X 25
추천 적성: 알케미스트(alchemist)
[원소 분류]의 개수가 조금 더 는 건가? 이재경이 그 사이에 [원소 분류]를 얼마나 자주 썼는지 확인하지 못해서 알 수 있었다.
그때 처음 보는 스킬이 눈에 띄었다.
[한오백년 나무의 뿌리] Lv. 0
“저것도 딱히 공격용 스킬명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이재경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메인 스킬로 분류된 거니까 뭔가 유용한 것이 아닐까?”
“연구 좀 해보면서 그런 것이기를 바라야지.”
이재경이 맥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이 김에 스탯 확인 좀 해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금지구역, 인천에서 현장 전투를 벌이며 그 많은 수 속성의 핵들을 흡수하고도 내게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나는 컴퓨터로 다가가 내 스탯 확인을 클릭했다.
[강기찬 학생의 현재 스탯]
체력: 200
민첩: 200
근력: 240
지성: ???
영계 감응도: 오류. 측정 불가.
속성 감응도: 수(水) Lv.21
메인 스킬: [타이탄의 힘] Lv. 3
[???] 분류되지 않은 스킬입니다.
[성장 속도 X 3] Lv. 없음
[언령] Lv. 없음
[태풍 속의 파도] Lv. 4
[서당 개의 풍월] Lv. 0
서브 스킬: [한 시간 무한 재생] x 500
[연금술사의 인형] x 2
추천 적성: 퍼니셔(punisher)
내 스탯도 아주 약간의 변화만 있었다. 내가 흡수했던 대부분의 핵들은 [한 시간 무한 재생]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나도 새 스킬이 하나 생겼다.
[서당 개의 풍월] Lv.0
별로 중요하게 들리지 않는 스킬명이었다.
“야, 우리 일단 잠이나 자자. 잘 수 있을 때 자야지.”
나는 실망스러운 새 스킬에 얼른 생각을 전환했다.
우리 둘이서 방바닥에 요를 펴고 누워있는데 나는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이재경, 근데 너 요새 다른 애들 중에 네게 먼저 다가오는 애는 없어?”
“다가오는 애라니?”
“실력자로 보이는 애.”
“글쎄. 내 주변은 언제나 너와 최만혁과 방성환 뿐이었는데.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건데.”
“우리랑 협동할 새로운 실력자가 혹시 있을까 싶어서.”
나는 이재경에게 대충 이유를 둘러댔다. 하지만 이것을 묻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재경은 전생에 도깨비의 최측근이었다. 아주 뛰어난 실력자이기도 했다.
요새 이재경의 스킬 발현으로 미루어보면 학생들 사이에서 조만간 그가 실력자라는 소문이 퍼질 것 같았다. 즉, 미래의 도깨비가 현재는 우리 학교의 학생으로서 이재경에게 접근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닌가 보다.
나는 안심하며 눈을 붙였다.
그때 영락없이 우리의 수면을 방해하는 경박한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더불어 익숙한 교내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학생들은 배정된 교실로 모이십시오. 조만간 [적성 수업]을 진행하겠습니다.
다시 찾아온 [적성 수업]이었다.
그는 막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는 것 같았다.
“이재경, 우리가 먹었던 환각제, [바이킹의 정신] 기억나?”
“응. 그건 왜?”
“혹시 네 알케미스트 스킬로 그 환각제나 다른 비슷한 환각제를 만들 수 있을까?”
“음. 딱히 시도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그럼 지금이라도 시도해봐.”
“뭐를?”
“환각제 만드는 것을.”
내 말에 이재경이 보기 드물게 내 앞에서 팔짱을 꼈다.
“강기찬!”
“응?”
“내가 감 나오라 하면 감 나오고 배 나오라 하면 배 나오는 인간인 줄 알아?”
아무래도 내가 이재경에게 너무 압박을 줬던 모양이다.
“아니, 딱히 그렇게 생각했다기보다는 네 실력을 원체 높이 평가했던 거지. 너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해서 물었던 거야.”
내 말에 이재경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런데 너, 곰방대도 그렇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스킬명도 그렇고, 방금 그 속담 선택도 그렇고 진짜 옛날 사람 같은 거 알아?”
나는 그 틈을 타서 이재경을 살짝 놀렸다. 그랬더니 그가 다시 발끈했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그 옛날 사람다운 스킬을 잘 이용해서 약 좀 만들어보자고.”
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웃으며 말하자 그가 고래를 저었다.
“그래, 내가 졌다.”
이재경은 흘러내리는 안경을 한번 밀어 올리더니 곰방대를 꺼냈다.
그리고 자신의 주머니를 한참 뒤지더니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뭔가를 꺼냈다.
“그건 뭐야?”
“현장 파견 때 먹었던 만찬의 일부.”
“내가 챙기라고 해서 챙겼던 것?”
“응.”
“그거 그때 다 안 먹었던 거야?”
“나는 뒤늦게 혹시나 해서 조금만 떼어먹었어.”
“그걸 아직 갖고 있다는 게 대단하다.”
“이렇게 갖고 있으니까 이게 환각제의 샘플이 될 수 있잖아. 샘플이 있어야 나도 뭔가를 시도하지. 내가 천재도 아니고 어떻게 맨땅에 헤딩하며 갑자기 약을 만들어내냐?”
“너 정도면 천재 맞거든.”
“헛소리한다.”
나는 웃으며 이재경이 하는 대로 놔뒀다. 그는 자신의 변화를 못 느끼는 것 같지만 내 눈에는 확실히 보였다.
이재경은 전보다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다. 더불어 행동과 말투도 달라지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능력을 하나씩 개발해 나아가면서 생기는 변화일 것이다.
저놈의 준비성과 조심성은 여전한 것 같지만.
이재경은 [알짜배기 쏙쏙쏙]으로 챙겨온 음식의 잔재로부터 [바이킹의 정신]을 추출했다.
나는 그 과정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다 뒤늦게 내 주머니에 있는 환약을 떠올렸다.
아직 양화주 선생이 준 환약을 이재경에게는 주지 않은 상태였다.
“이재경, 이거, 너도 먹으려면 먹어. 양화주 선생의 말에 의하면 [바이킹의 정신]이 남기는 후유증을 없애준다는데.”
“그래? 잠깐 확인 좀 해볼게.”
이재경은 곰방대의 담배통에 추출한 [바이킹의 정신]을 한쪽에 덜어놓더니 내게서 받아간 환약을 담배통 안에 넣었다.
“이재경, 너 뭐 하는 거냐?”
“이게 [바이킹의 정신]이 남기는 후유증을 없애준다며. 제조 성분이 [바이킹의 정신]과 어떻게 다른지 확인해보려고.”
“담배통 안에 그걸 넣으면 그런 것도 보여?”
“나도 몰라. 그냥 해보는 거야.”
그렇게 막무가내로 자신의 실험에 집중하던 이재경이 곧 탄성을 질렀다.
“와! 보인다! [바이킹의 정신]의 성분 조합을 정확히 역으로 바꿔놓은 건데. 거의 환각제의 해독제 수준이야. 이 두 가지만 연구해도 약과 해독제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겠어. 그런데 이런 걸 애초에 누가 만들었을까? 대단한 사람이었겠는데.”
“양화당님이래.”
“그 전설의 알케미스트, 양화당님?”
“응.”
“어쩐지.......”
“근데 내가 보기에는 네가 조만간 그 전설의 뒤를 이을 수 있겠는데.”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또 한다, 너.”
이재경은 내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자신의 실험에 집중했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이런 인재를 도깨비보다 먼저 포섭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강기찬, 아무래도 [바이킹의 정신]과 같은 환각제를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것은 내 능력 밖인 것 같아.”
“그래? 뭐. 지금은 안 돼도 나중에 네가 성장하면서 가능해질 수도 있는 일이니까.”
“대신...지금 있는 [바이킹의 정신]과 양화주 선생이 준 해독환을 여러 개로 복사해둘 수는 있을 것 같아.”
“그게 제조하는 것하고 무슨 차이야!”
내가 이재경의 여상한 태도에 기겁하며 묻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엄연히 제조와 복사는 다르지. 제조는 원재료들로부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과정이니까. 복사는 있는 것을 그대로 베끼는 거고.”
나는 한동안 그의 앞에서 침묵하다 얼른 덧붙였다.
“이재경, 우리 앞으로도 계속 친하게 지내자!”
“강기찬, 뭐 잘못 먹었냐?”
“해독환 먹었지.”
“혹시 이 해독환에 정신 해리를 일으키는 성분이 있었나?”
이재경이 홀로 중얼거리며 [바이킹의 정신]과 해독환을 복사하기 시작했다.
“야, 이왕 하는 것, 최대한 많이 해둬. 우리에게 언제 필요할지 모르니까.”
내가 신나서 말하자 이재경은 고개만 끄덕였다. 그의 곰방대가 바쁘게 움직였다. 길어졌다 짧아지기를 반복하며 환약과 액체화된 [바이킹의 정신] 스킬을 연기로 방출했다.
“어, 근데 이재경. 오늘따라 네 곰방대에 새겨진 무늬에서 빛이 더 많이 나는 것 같아.”
“어디?”
한 차례 환각제와 해독환을 복사해 작은 알약들로 만들어낸 이재경이 고개를 들었다.
“여기.”
내가 곰방대의 옆면을 가리키자 이재경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 옛날부터 새겨져 있던 고어인데. 곰방대의 힘을 쓰다 보면 가끔 여기서 빛이 나오더라고.”
“이 고어에 뭐라고 적혀있는지 알아?”
“내가 고어를 읽을 줄은 몰라서.”
“고어의 내용이 진짜 궁금한데. 이거 가족들이 준 유물이라며. 가족들이 알려주지는 않았어?”
“대충 뜻을 해석해주기는 했어. 근데 아마 정확하지는 않을걸.”
“뭐라고 들었는데?”
“이승과 저승을 찰흙으로 빚은 뒤 마음을 담아 주무르리.”
“그게 무슨 뜻이야?”
“나도 몰라. 그러니까 아마 우리 가족도 고어를 잘못 읽은 것으로 생각했지.”
“근데 그 글귀가 묘하게 네가 곰방대를 활용하는 방법과 어울리기는 한다.”
“흠......어째든, 환각제와 해독환들은 여기에 있어.”
“고생했다. 참, 내가 이번 현장에서 얻은 혼령의 핵 중 목 속성인 것들을 넘겨줄게.”
나는 초록빛을 발하는 혼령의 핵 3개를 품에서 꺼낸 뒤 이재경에게 건넸다.
“이걸 정말 나에게 다 줘도 되는 거야?”
“내가 구한 거니까 내 마음이지. 내 주변에서 가장 친한 목 속성인 동료는 너뿐이고.”
“고맙다 강기찬. 앞으로도 내가 네 가장 친한 목 속성인 동료로 남으마.”
이재경이 농담을 하며 기꺼이 핵들을 받아갔다.
두근.
그것들은 이재경의 손가락 끝이 닿자마자 순식간에 그와 공명하며 그의 몸속으로 흡수됐다.
“이번에는 무슨 스킬이 생겼을까?”
내 말에 이재경이 고개를 저었다.
“큰 기대는 하지 마. 저번에도 목 속성의 핵을 엄청나게 흡수했는데 그것 중 태반이 [오행 분석]이더라고.”
“야, 그 [오행 분석] 덕에 네가 나를 구미호의 분신들과 구별해낸 거잖아.”
“아, 나도 [오행 분석]이 별보일 없는 스킬이라는 것은 아니야. 사실,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어. 그래도 멋진 전투용 스킬은 아니라 조금 아쉬웠다는 말이지.”
“그럼 이번에는 [오행 분석]이 아니기를 빌자. 얼른 컴퓨터로 스탯을 확인해봐.”
내 재촉에 이재경이 스탯 확인을 클릭했다.
[이재경 학생의 현재 스탯]
체력: 5
민첩: 0
근력: 측정 불가
지성: 측정 불가
영계 감응도: 200
속성 감응도: 미발현
메인 스킬: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Lv. 10
[현자의 돌] Lv. 2
[한오백년 나무의 뿌리] Lv. 0
서브 스킬: [길어져라 쭉쭉이] Lv.10
[알짜배기 쏙쏙쏙] Lv.4
[원소 분류] X 25
추천 적성: 알케미스트(alchemist)
[원소 분류]의 개수가 조금 더 는 건가? 이재경이 그 사이에 [원소 분류]를 얼마나 자주 썼는지 확인하지 못해서 알 수 있었다.
그때 처음 보는 스킬이 눈에 띄었다.
[한오백년 나무의 뿌리] Lv. 0
“저것도 딱히 공격용 스킬명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이재경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메인 스킬로 분류된 거니까 뭔가 유용한 것이 아닐까?”
“연구 좀 해보면서 그런 것이기를 바라야지.”
이재경이 맥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이 김에 스탯 확인 좀 해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금지구역, 인천에서 현장 전투를 벌이며 그 많은 수 속성의 핵들을 흡수하고도 내게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나는 컴퓨터로 다가가 내 스탯 확인을 클릭했다.
[강기찬 학생의 현재 스탯]
체력: 200
민첩: 200
근력: 240
지성: ???
영계 감응도: 오류. 측정 불가.
속성 감응도: 수(水) Lv.21
메인 스킬: [타이탄의 힘] Lv. 3
[???] 분류되지 않은 스킬입니다.
[성장 속도 X 3] Lv. 없음
[언령] Lv. 없음
[태풍 속의 파도] Lv. 4
[서당 개의 풍월] Lv. 0
서브 스킬: [한 시간 무한 재생] x 500
[연금술사의 인형] x 2
추천 적성: 퍼니셔(punisher)
내 스탯도 아주 약간의 변화만 있었다. 내가 흡수했던 대부분의 핵들은 [한 시간 무한 재생]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나도 새 스킬이 하나 생겼다.
[서당 개의 풍월] Lv.0
별로 중요하게 들리지 않는 스킬명이었다.
“야, 우리 일단 잠이나 자자. 잘 수 있을 때 자야지.”
나는 실망스러운 새 스킬에 얼른 생각을 전환했다.
우리 둘이서 방바닥에 요를 펴고 누워있는데 나는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이재경, 근데 너 요새 다른 애들 중에 네게 먼저 다가오는 애는 없어?”
“다가오는 애라니?”
“실력자로 보이는 애.”
“글쎄. 내 주변은 언제나 너와 최만혁과 방성환 뿐이었는데.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건데.”
“우리랑 협동할 새로운 실력자가 혹시 있을까 싶어서.”
나는 이재경에게 대충 이유를 둘러댔다. 하지만 이것을 묻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재경은 전생에 도깨비의 최측근이었다. 아주 뛰어난 실력자이기도 했다.
요새 이재경의 스킬 발현으로 미루어보면 학생들 사이에서 조만간 그가 실력자라는 소문이 퍼질 것 같았다. 즉, 미래의 도깨비가 현재는 우리 학교의 학생으로서 이재경에게 접근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닌가 보다.
나는 안심하며 눈을 붙였다.
그때 영락없이 우리의 수면을 방해하는 경박한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더불어 익숙한 교내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학생들은 배정된 교실로 모이십시오. 조만간 [적성 수업]을 진행하겠습니다.
다시 찾아온 [적성 수업]이었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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