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조회 : 914 추천 : 0 글자수 : 4,242 자 2022-07-20
나는 서로 눈치를 보며 나와 대치 중인 단발머리 남자애를 봤다. 우리 주변에서는 이미 대련을 시작한 애들도 있었다.
기합 소리가 들어가는 애들도 있었고, 스킬 시전을 시작한 애들도 있었으며, 우리처럼 서로를 보며 멀뚱거리는 애들도 있었다.
나는 선뜻 내 앞의 놈을 공격하는 것이 불편했다. 물론 우리가 전부 일시적으로 혼령화가 됐으며 우리가 서로에게 가할 타격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대개 알아서 회복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 앞의 놈은 결론적으로 혼령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사람에게 ‘소멸’을 목적으로 하는 나의 공격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괜찮을까? 더군다나 양화주 선생의 말을 전부 믿을 수 있을지도 사실 의문이었다.
이 국퇴교라는 곳은 학생들의 목숨을 애초에 파리 목숨보다도 하찮게 생각하는 곳이니까.
이 대련을 통해 일시적으로 ‘소멸’ 당하는 일시적 혼령 학생이 나와도 과연 그 학생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저 선생이, 이 학교가, 더 나아가 이 정부가 그 학생의 소멸에 대해 신경이나 쓸까?
임의로 내가 내린 결론은 ‘아니다’였다. 고로 나는 내 눈앞의 놈을 전력으로 상대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다행히 놈도 공격을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메두사의 눈알로 놈의 스탯을 확인해봤다.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사실 다른 애들은 상대의 스킬을 파악하지 못한 채로 대련에 돌입하기에 나는 지금 어떻게 보면 편법을 쓰는 것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해도 단발머리의 스탯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메두사의 눈알]이 혼령화된 상대에게도 통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다. 메두사의 눈알을 단발머리에게로 비추자 곧바로 그의 스탯이 내 머릿속에 떴다.
[조궁의 스탯]
메두사의 눈알은 단발머리의 이름이 조궁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그리고 뒤이어 나열되는 그의 스탯에 나는 입이 살짝 벌어졌다.
아까보다도 더욱 철저히 전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분명 조궁의 적성은 [퍼니셔]로 나왔다. 그런데 메인스킬이 하필 [힐 타임]?
스킬명만 봐도 전혀 공격용 스킬이 아니었다. 내가 갖고 다니는 [한 시간 무한재생]과 비슷한 스킬인가?
그나저나 저놈이 나를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가 확연해졌다. 평소, 퍼니셔들은 실체화된 혼령을 상대로 무력이라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반실체화된 은빛 실루엣들이었다. 주먹이나 발차기와 같은 물리적 타격은 전혀 먹히지 않을 상태라는 말이다.
이 대련에서는 오로지 스킬만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놈에게는 나를 공격할만한 스킬이 하나도 없었다.
오들오들 떠는 저 은빛 실루엣이 측은해 보였다. 지금 보니 자신의 필패를 예상하며 떠는 모습이었다.
지나가는 어린애를 공격한다고 해도 이보다 죄책감이 덜 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주저하는 것을 보던 단발머리, 조궁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얼른 끝내줘......”
질끈 감는 그의 두 눈이 안쓰러웠다.
나는 내 스킬 중 그에게 적용해도 가장 안 아플 것이 뭘까 고민했다. 하필 내게도 반실체화된 혼령체를 상대로 적용가능한 스킬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태풍 속의 파도].
그 어마어마한 것을 쟤한테 써야 한다니.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공격자세를 취했다. 어차피 내가 조궁을 공격하지 않아도 그는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이 빌어먹을 [적성수업]의 대련시스템이었다. 그러니 내 손에 얼른 기절하는 것이 저놈에게도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선공한다.”
나는 먼저 공격할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이는 조궁을 향해 외치고는 [태풍 속의 파도]를 시전했다. 이 스킬을 발동시키는 것이 전보다 훨씬 쉬워졌다. 국퇴교 밖의 [현장]에서 이 스킬을 수없이 써봤기 때문이다.
내 넘실거리는 검은 물결이 내 사지를 휘감았다. 내가 봐도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니 조궁이 보기에는 어떨까?
나는 조궁을 힐끗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얼굴이 백지장보다도 하야다.
“최대한 빨리 끝내줄게. 미안하다.”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조궁에게 말하고는 검은 물결을 쏘았다. 내 팔을 휘어 감고 있던 검은 물결이 세차게 회오리를 만들며 하늘로 뻗어 나갔다. 마치 거대한 검은 파도가 바다에 간신히 떠 있는 돛단배를 덮치는 형상 같았다. 물론 그 비유 속의 돛단배는 조궁이었다.
검은 파도가 조궁의 가슴을 명중했다. 혼령의 핵을 취할 때의 버릇이 나도 모르게 나와버린 것이다. 이번에 굳이 조궁의 심장을 노릴 필요는 없었는데.
나는 뒤늦게 아차 싶은 마음으로 내 공격의 결과를 확인했다.
검은 파도가 조궁의 반 실체화된 은빛 실루엣의 가슴 정중앙에 구멍을 뚫어버렸다. 조궁의 가슴에 아찔한 검은 공동이 만들어지면서 그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조궁!”
나는 뒤늦게 그에게로 달려가 그의 넘어가는 몸을 받았다.
그의 몸도 내 몸도 모두 반 실체화된 상태라 조궁은 그를 받아내려던 내 손을 순식간에 통과하며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나는 재차 내 이마를 쳤다. 혼령들이 벽을 넘어 다닐 수 있는 이유를 간과하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나는 바닥에 쓰러진 조궁을 살폈다. 한번에 기절시키려고 했는데 내 원대로 된 것 같다.
나는 조궁의 가슴에 남은 검은 공동을 바라보며 우리의 혼령화 상태가 풀리면 저것도 자연히 치유되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런 불편한 마음으로 두리번거리던 나는 양화주 선생을 찾았다. 이번 대련에서의 내 승리를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바닥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조궁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씨, X나 아프다! 근데 강기찬, 너 내 이름 어떻게 알고 있었어?”
나는 당황한 마음으로 바닥에 쓰러진 조궁을 살폈다. 조궁의 두 눈이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 원망은 없었다. 단지 의문만 있을뿐.
자연스럽게 내 시선은 그의 가슴으로 향했다. 심장부근의 공동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남긴 타격이 결코 적지 않은데 이놈이 이렇게 정신이 멀쩡한 것이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내 눈앞에서 기적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조궁의 가슴에 생겼던 커다란 공동이 자연히 수복되고 있었다. 심지어 타격 부위 주변으로 하얀 빛도 조금 나오고 있었다.
“너 내 공격을 받고도 괜찮은 거야?”
나는 커다래진 눈으로 조궁을 살폈다. 그러자 그가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스킬 덕에. 내 스킬은 상처를 아물게 하거나 되풀이시킬 수 있는 것이거든.”
[힐 타임]이 그런 스킬이었구나! 그의 말대로 내가 그의 가슴에 남긴 상처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너 내 이름 어떻게 알았어?”
조궁이 재차 물었다. 이 대련 상황에서 지나치게 태연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순간 경계가 풀려버렸다.
“그냥 너와 동기다보니 알게 됐는걸.”
나는 당연히 그에게 [메두사의 눈알]에 대해 알릴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내 비밀 중 하나로 소문이 나서 내게 득이 될 것이 없었다.
그래서 둘러댄 말 뒤로 나는 얼른 덧붙였다.
“그러는 너는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데?”
“야, 우리 학년에서 너 모르면 간첩인 거 몰라?”
“응?”
“매 미션마다 1등을 해온 놈이니 당연히 알지!”
그의 대답을 예상못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가슴을 재차 확인했다. 이미 검은 공동도 상처의 흔적도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조궁의 [힐 타임]은 생각보다 대단해 보였다. 이 스킬을 잘만 이용하면 조궁은 진짜 전투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공격을 못해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강기찬, 사과는 오히려 내쪽에서 해야 할 것 같은데.”
내 반응을 살피며 조용히 내뱉은 조궁의 말이었다. 나는 한참을 멍하니 생각하고 나서야 그가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에게 [태풍 속의 파도]를 시전하기 전에 사과했던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말이...응?”
나는 조궁에게 반문을 하다 내 가슴을 부여잡았다.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미안해.”
뒤이어 조궁의 사과가 들려왔다. 내 가슴을 확인하니 내 가슴에 어느새 검은 공동이 뚫려 있었다. 아까 조궁의 가슴에 있었던 것과 같은 크기였다.
“이게 무슨...?”
“강기찬, 내 스킬은 비단 상처를 되돌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야. 그 상처를 회복시킬 때 복사해서 남에게 고스란히 돌려줄 수도 있거든.”
그렇다면 [힐 타임]은 곧 상처 회복 및 복사기라는 소리였다. 애초에 먼저 상대에게 상처를 만들 수는 없지만 한 번 상처를 받고 나면 그 뒤로는 무시무시한 전투를 펼칠 수 있는 잠재력이 엄청난 스킬이었다.
그래서 [메두사의 눈알]로 조궁의 스탯을 확인했을 때 [힐 타임]이 퍼니셔의 메인스킬로 분류가 됐던 것이군.
나는 깨달으면서 씁쓸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이대로 이번 대련에서 내가 지나?
나는 도끼로 내리 찍힌 뻣뻣한 나무기둥처럼 그대로 고꾸라지려고 했다.
너무 아프다. 죽을 것 같다. 이대로 죽나? 이번 생도 안녕!
고통 속에서 별 생각을 다하던 나는 순간, 억울함이 밀려왔다.
지난 생에는 조용히 살려고 하다 도깨비에게 억울하게 당해서 단명했다. 이번생에는 그래서 오래 살아보려고, 아니, 정확히 말해 나와 엄마가 이 세상을 우리 수명만큼 살아보려고 나는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도깨비를 찾으려고도 열심히 뛰었다. 그런데 그 결과가 결국 수업 중의 죽음이라니.
너무 내 인생이 하찮잖아!
짜증과 억울함이 통증과 함께 밀려오면서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진짜 미쳐버리겠네!
그때, 조궁이 내 가슴에 남긴 공동 때문에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한 내 심장이 뛰었다.
두근!
그리고 기적처럼 통증이 가라앉았다. 통증이 사라지니 머리가 맑아지며 다시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됐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내 앞에서 나를 지켜보던 조궁도 당황한 눈빛이었다. 그도 나도 상황이 이렇게 돌아갈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내가 내 가슴 부근을 확인하자 조궁이 남겼던 공동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아까 조궁의 가슴에 있었던 상처가 회복되던 모습과 같았다.
“강기찬, 네게도 회복을 도와주는 스킬이 있어?”
“그게...음.......”
물론 내게 회복을 돕는 스킬이 있었다. 서브 스킬인 [한 시간 무한 재생]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그것을 발동시키지 못했다.
그 스킬은 전부 이재경의 곰방대로 아이템화를 시켜놓은 상태였다. 그러니 [한 시간 무한 재생]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그 환을 먹어야 했는데 이번에 나는 그것을 먹을 새도 없이 혼령화가 되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이지?
나도 이해가 안 가는 이 상황에 어리둥절해하던 중, 갑자기 짚이는 점이 하나 있었다.
설마, [서당 개의 풍월]?
기합 소리가 들어가는 애들도 있었고, 스킬 시전을 시작한 애들도 있었으며, 우리처럼 서로를 보며 멀뚱거리는 애들도 있었다.
나는 선뜻 내 앞의 놈을 공격하는 것이 불편했다. 물론 우리가 전부 일시적으로 혼령화가 됐으며 우리가 서로에게 가할 타격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대개 알아서 회복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 앞의 놈은 결론적으로 혼령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사람에게 ‘소멸’을 목적으로 하는 나의 공격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괜찮을까? 더군다나 양화주 선생의 말을 전부 믿을 수 있을지도 사실 의문이었다.
이 국퇴교라는 곳은 학생들의 목숨을 애초에 파리 목숨보다도 하찮게 생각하는 곳이니까.
이 대련을 통해 일시적으로 ‘소멸’ 당하는 일시적 혼령 학생이 나와도 과연 그 학생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저 선생이, 이 학교가, 더 나아가 이 정부가 그 학생의 소멸에 대해 신경이나 쓸까?
임의로 내가 내린 결론은 ‘아니다’였다. 고로 나는 내 눈앞의 놈을 전력으로 상대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다행히 놈도 공격을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메두사의 눈알로 놈의 스탯을 확인해봤다.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사실 다른 애들은 상대의 스킬을 파악하지 못한 채로 대련에 돌입하기에 나는 지금 어떻게 보면 편법을 쓰는 것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해도 단발머리의 스탯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메두사의 눈알]이 혼령화된 상대에게도 통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다. 메두사의 눈알을 단발머리에게로 비추자 곧바로 그의 스탯이 내 머릿속에 떴다.
[조궁의 스탯]
메두사의 눈알은 단발머리의 이름이 조궁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그리고 뒤이어 나열되는 그의 스탯에 나는 입이 살짝 벌어졌다.
아까보다도 더욱 철저히 전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분명 조궁의 적성은 [퍼니셔]로 나왔다. 그런데 메인스킬이 하필 [힐 타임]?
스킬명만 봐도 전혀 공격용 스킬이 아니었다. 내가 갖고 다니는 [한 시간 무한재생]과 비슷한 스킬인가?
그나저나 저놈이 나를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가 확연해졌다. 평소, 퍼니셔들은 실체화된 혼령을 상대로 무력이라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반실체화된 은빛 실루엣들이었다. 주먹이나 발차기와 같은 물리적 타격은 전혀 먹히지 않을 상태라는 말이다.
이 대련에서는 오로지 스킬만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놈에게는 나를 공격할만한 스킬이 하나도 없었다.
오들오들 떠는 저 은빛 실루엣이 측은해 보였다. 지금 보니 자신의 필패를 예상하며 떠는 모습이었다.
지나가는 어린애를 공격한다고 해도 이보다 죄책감이 덜 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주저하는 것을 보던 단발머리, 조궁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얼른 끝내줘......”
질끈 감는 그의 두 눈이 안쓰러웠다.
나는 내 스킬 중 그에게 적용해도 가장 안 아플 것이 뭘까 고민했다. 하필 내게도 반실체화된 혼령체를 상대로 적용가능한 스킬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태풍 속의 파도].
그 어마어마한 것을 쟤한테 써야 한다니.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공격자세를 취했다. 어차피 내가 조궁을 공격하지 않아도 그는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이 빌어먹을 [적성수업]의 대련시스템이었다. 그러니 내 손에 얼른 기절하는 것이 저놈에게도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선공한다.”
나는 먼저 공격할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이는 조궁을 향해 외치고는 [태풍 속의 파도]를 시전했다. 이 스킬을 발동시키는 것이 전보다 훨씬 쉬워졌다. 국퇴교 밖의 [현장]에서 이 스킬을 수없이 써봤기 때문이다.
내 넘실거리는 검은 물결이 내 사지를 휘감았다. 내가 봐도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니 조궁이 보기에는 어떨까?
나는 조궁을 힐끗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얼굴이 백지장보다도 하야다.
“최대한 빨리 끝내줄게. 미안하다.”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조궁에게 말하고는 검은 물결을 쏘았다. 내 팔을 휘어 감고 있던 검은 물결이 세차게 회오리를 만들며 하늘로 뻗어 나갔다. 마치 거대한 검은 파도가 바다에 간신히 떠 있는 돛단배를 덮치는 형상 같았다. 물론 그 비유 속의 돛단배는 조궁이었다.
검은 파도가 조궁의 가슴을 명중했다. 혼령의 핵을 취할 때의 버릇이 나도 모르게 나와버린 것이다. 이번에 굳이 조궁의 심장을 노릴 필요는 없었는데.
나는 뒤늦게 아차 싶은 마음으로 내 공격의 결과를 확인했다.
검은 파도가 조궁의 반 실체화된 은빛 실루엣의 가슴 정중앙에 구멍을 뚫어버렸다. 조궁의 가슴에 아찔한 검은 공동이 만들어지면서 그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조궁!”
나는 뒤늦게 그에게로 달려가 그의 넘어가는 몸을 받았다.
그의 몸도 내 몸도 모두 반 실체화된 상태라 조궁은 그를 받아내려던 내 손을 순식간에 통과하며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나는 재차 내 이마를 쳤다. 혼령들이 벽을 넘어 다닐 수 있는 이유를 간과하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나는 바닥에 쓰러진 조궁을 살폈다. 한번에 기절시키려고 했는데 내 원대로 된 것 같다.
나는 조궁의 가슴에 남은 검은 공동을 바라보며 우리의 혼령화 상태가 풀리면 저것도 자연히 치유되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런 불편한 마음으로 두리번거리던 나는 양화주 선생을 찾았다. 이번 대련에서의 내 승리를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바닥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조궁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씨, X나 아프다! 근데 강기찬, 너 내 이름 어떻게 알고 있었어?”
나는 당황한 마음으로 바닥에 쓰러진 조궁을 살폈다. 조궁의 두 눈이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 원망은 없었다. 단지 의문만 있을뿐.
자연스럽게 내 시선은 그의 가슴으로 향했다. 심장부근의 공동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남긴 타격이 결코 적지 않은데 이놈이 이렇게 정신이 멀쩡한 것이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내 눈앞에서 기적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조궁의 가슴에 생겼던 커다란 공동이 자연히 수복되고 있었다. 심지어 타격 부위 주변으로 하얀 빛도 조금 나오고 있었다.
“너 내 공격을 받고도 괜찮은 거야?”
나는 커다래진 눈으로 조궁을 살폈다. 그러자 그가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스킬 덕에. 내 스킬은 상처를 아물게 하거나 되풀이시킬 수 있는 것이거든.”
[힐 타임]이 그런 스킬이었구나! 그의 말대로 내가 그의 가슴에 남긴 상처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너 내 이름 어떻게 알았어?”
조궁이 재차 물었다. 이 대련 상황에서 지나치게 태연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순간 경계가 풀려버렸다.
“그냥 너와 동기다보니 알게 됐는걸.”
나는 당연히 그에게 [메두사의 눈알]에 대해 알릴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내 비밀 중 하나로 소문이 나서 내게 득이 될 것이 없었다.
그래서 둘러댄 말 뒤로 나는 얼른 덧붙였다.
“그러는 너는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데?”
“야, 우리 학년에서 너 모르면 간첩인 거 몰라?”
“응?”
“매 미션마다 1등을 해온 놈이니 당연히 알지!”
그의 대답을 예상못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가슴을 재차 확인했다. 이미 검은 공동도 상처의 흔적도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조궁의 [힐 타임]은 생각보다 대단해 보였다. 이 스킬을 잘만 이용하면 조궁은 진짜 전투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공격을 못해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강기찬, 사과는 오히려 내쪽에서 해야 할 것 같은데.”
내 반응을 살피며 조용히 내뱉은 조궁의 말이었다. 나는 한참을 멍하니 생각하고 나서야 그가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에게 [태풍 속의 파도]를 시전하기 전에 사과했던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말이...응?”
나는 조궁에게 반문을 하다 내 가슴을 부여잡았다.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미안해.”
뒤이어 조궁의 사과가 들려왔다. 내 가슴을 확인하니 내 가슴에 어느새 검은 공동이 뚫려 있었다. 아까 조궁의 가슴에 있었던 것과 같은 크기였다.
“이게 무슨...?”
“강기찬, 내 스킬은 비단 상처를 되돌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야. 그 상처를 회복시킬 때 복사해서 남에게 고스란히 돌려줄 수도 있거든.”
그렇다면 [힐 타임]은 곧 상처 회복 및 복사기라는 소리였다. 애초에 먼저 상대에게 상처를 만들 수는 없지만 한 번 상처를 받고 나면 그 뒤로는 무시무시한 전투를 펼칠 수 있는 잠재력이 엄청난 스킬이었다.
그래서 [메두사의 눈알]로 조궁의 스탯을 확인했을 때 [힐 타임]이 퍼니셔의 메인스킬로 분류가 됐던 것이군.
나는 깨달으면서 씁쓸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이대로 이번 대련에서 내가 지나?
나는 도끼로 내리 찍힌 뻣뻣한 나무기둥처럼 그대로 고꾸라지려고 했다.
너무 아프다. 죽을 것 같다. 이대로 죽나? 이번 생도 안녕!
고통 속에서 별 생각을 다하던 나는 순간, 억울함이 밀려왔다.
지난 생에는 조용히 살려고 하다 도깨비에게 억울하게 당해서 단명했다. 이번생에는 그래서 오래 살아보려고, 아니, 정확히 말해 나와 엄마가 이 세상을 우리 수명만큼 살아보려고 나는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도깨비를 찾으려고도 열심히 뛰었다. 그런데 그 결과가 결국 수업 중의 죽음이라니.
너무 내 인생이 하찮잖아!
짜증과 억울함이 통증과 함께 밀려오면서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진짜 미쳐버리겠네!
그때, 조궁이 내 가슴에 남긴 공동 때문에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한 내 심장이 뛰었다.
두근!
그리고 기적처럼 통증이 가라앉았다. 통증이 사라지니 머리가 맑아지며 다시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됐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내 앞에서 나를 지켜보던 조궁도 당황한 눈빛이었다. 그도 나도 상황이 이렇게 돌아갈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내가 내 가슴 부근을 확인하자 조궁이 남겼던 공동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아까 조궁의 가슴에 있었던 상처가 회복되던 모습과 같았다.
“강기찬, 네게도 회복을 도와주는 스킬이 있어?”
“그게...음.......”
물론 내게 회복을 돕는 스킬이 있었다. 서브 스킬인 [한 시간 무한 재생]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그것을 발동시키지 못했다.
그 스킬은 전부 이재경의 곰방대로 아이템화를 시켜놓은 상태였다. 그러니 [한 시간 무한 재생]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그 환을 먹어야 했는데 이번에 나는 그것을 먹을 새도 없이 혼령화가 되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이지?
나도 이해가 안 가는 이 상황에 어리둥절해하던 중, 갑자기 짚이는 점이 하나 있었다.
설마, [서당 개의 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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