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하고 싶어 (1)
조회 : 1,046 추천 : 0 글자수 : 5,079 자 2022-07-22
[김지원 선수! 화끈한 인파이트! 천재라는 수식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입니다!]
- 퍽 퍼퍼벅! 후웅! 퍽!
빠르고 강력한 펀치.
괴물 같은 반사 신경.
김지원은 대뷔 3달 2경기 만에 복싱의 신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게 불렸다.
잘한다가 아닌.
미쳤다에 가까운 천재.
[피합니다! 피합니다! 어어! 또 피해요! 김지원 선수 미쳤습니다! 최민규 선수 당황한 것 같은데요!?]
잔뜩 흥분한 해설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최민규는 당황하며 가드를 새웠다. 억울한 마음을 꾹 억누르며 말이다. 김지원은 고작 2년 동안 복싱했다. 그에 비해 최민규는 8년.
'젠장! 왜 안 맞는 거야! 저녀석은 고작 4년 복싱한 초짜인데!'
두배의 경험은 고작 재능으로 좁힐 수 있는 경지가 아닐 거다. 아니 좁힐 수 없다. 최민규에게 8년은 그저 덜 아프게 맞고 덜 맞는 것이 전부 였다. 그 어떠한 공격도 김지원에게 닿을 수 없었다. 아무리 훼이크를 넣고 반박자, 반의 반박자 빠르게 공격해도 놈은 피했다.
맞으면서 상대해보니 보니 이유를 알 것 같다. 왜 놈이 복싱의 신이라고 불리우는 지.
'예측하고 피하는 게 아니라 보고 피하는 거구나. 시발.'
나랑은 보는 세계가 달랐다.
김지원은 뒤로 빠지며 스텝을 밟고는 사이드에 몰린 최민규를 압박했다.
단 하나의 수만을 생각했다. 최민규가 김지원을 이길 수. 시합 전 감독은 딱 한가지만 말했다.
'놈은 전부 피할 거다. 그리고 때릴 거다. 판정승은 불가능해. KO만 생각해라 사이드에 몰려줘 김지원 놈은 항상 들어올때 오른손 스트레이트, 왼손 어퍼. 온 힘을 다해 카운터 때려라.'
카운터로 한 번에 KO 승으로 노리는 것.
김지원은 스텝을 밟다가 순식간에 돌진했고 예상대로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저 스트레이트에 맞으면 확실하게 KO 당한다고.
그리 생각했다.
온 힘을 다해 더킹으로 좌측으로 숙이며 스트레이트를 피해냈다. 이후 왼손으로 카운터를 강하게 날린다.
- 퍽!
[어어! 카운터! 카운터!! 완벽하게 들어갔습니다! 김지원 선수 위기!!]
주먹은 정확하게 턱을 가격했지만 김지원은 쓰러지지 않았다.
완벽한 카운터다. 내 일생 이보다 완벽한 카운터와 파워를 낼 수 없다고 장담할 정도로 완벽하게 들어간 카운터였다. 그런데 놈은 견뎠다. 처음부터 맞아 줄 생각으로 들어온 놈.
'제대로 미친놈.'
김지원의 어퍼가 순식간에 턱을 가격했다. 어마어마한 힘, 회전력, 모든 것이 완벽했다. 최민규는 재능의 차이를 느끼며 쓰러졌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을 부릅뜨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시야에는 가만히 링에 손을 기대며 회복하고 있는 놈이 보였다.
시선은 일어나려는 날 올곧게 향하고 있었다.
'이길 수 없구나.'
붙잡고 있던 정신을 줄을 놔버렸다. 그것으로 정신을 잃었다.
[김지원 선수의 어퍼! 텐! 나인! ..... 최민규 선수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경기 종료 됩니다!]
김지원의 화려한 인생이 고작 교통 사고로 인한 어깨 부상에 끝났다는 것에 많은 복싱 메니아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땅을 치고 후회했다. 이후 김지원의 행방은 숨겨졌고 천천히 뇌리에서 잊혀갔다.
*
내가 사는 세상은 남들과 시간의 밀도가 달랐다. 어렸을 적부터 계속해서.
하늘을 날아가는 새.
빗줄기.
모두 느리게 흘렀다. 그것을 알았던 것은 15살 무렵이었다. 복싱 경기를 보며 주먹이 눈에 안 보일 정도로 빠르다고 말한 아빠에게 말했다.
‘주먹이 빨라요? 느리지 않아요?’
아빠는 곧장 날 대리고 복싱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증명됐다. 압도적인 동체 시력과 반사 신경은 나를 자연스럽게 복서의 길로 인도했다. 원래 복싱을 좋아하기도 했다. 주먹을 피하고 때리고 그것이 전부였다.
18살에 데뷔해서 20전 20승 전부 KO승으로 이겼다. 항상 화끈한 걸 좋아했으니까 강하게 플레이 했고 이건 확실하게 먹혀들어 갔다. 분명히 이쪽 길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기사에도 실리며 화끈하고 가장 천부적인 재능의 한국 인파이터! 슈퍼 루키! 라는 소리도 들었으니까.
부모가 날 낳은 건 천운이라고 말했다. 막 철든 여동생 앞에서 말이다. 그 이후 교통사고만 없었다면 어땠을까.
2026년에 20살이 됐을 무렵 나의 운명을 뒤바꿔 놓은 사건이 있었다.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던 어느 날이었다.
“지혜야 창밖만 보지 말고 오빠랑 얘기도 좀 나누고 그래라. 다음 달에 시합인데 열심히 하라고 응원도 못할 망정.”
오빠와의 차별 속에서 묵묵히 견뎌온 불만 많은 여동생은 모처럼의 여행이라 참으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터져 버렸다.
“항상 나만 가지고 그래···. 어제도 말했는데···.”
서러움이 폭발했다. 나는 여동생의 손을 꼭 잡아줬다.
“엄마 모처럼 여행인데.”
그때다.
- 끼이이익!
트럭이 중앙 차선을 넘어 우리 차 쪽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내가 트럭을 발견하고 다급히 말했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앞에 트럭!”
트럭이 들이박기 직전 부모의 일그러진 표정이 자동차의 미러로 보였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트럭이 들이박는 위치를 예상하고 여동생을 감쌌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앞 좌석에 탄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트럭은 밀고 들어오며 내가 앉아 있던 좌석을 뭉그러트렸다. 자동차가 몇 번 나뒹굴고 앞 좌석이 뒤로 밀려들어 오며 여동생의 다리를 아작 냈다. 유리창에 머리를 박는 등 심하게 다친 것 같다.
“콜록··· 콜록···. 엄마! 아빠! 지혜야!”
“······.”
단 몇 초 만에 생긴 참극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떨리는 눈동자를 바로잡으며 홀로 정신을 차린 나는 아픈 어깨를 무시하고 주먹으로 금 간 유리창을 온 힘을 다해 부셨다. 이후 여동생을 대리고 차 밖으로 탈출했다. 여동생이 숨을 쉬지 않았다.
다급히 핸드폰을 찾았을 때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뒤에서 쫓아오던 차량에서 내린 부부가 곧바로 신고해 준 탓에 아슬아슬하게 여동생을 살릴 수 있었다.
혼수상태로 깨어나지 못하는 여동생을 유리창 너머에서 바라봐야 했다.
어깨가 완전히 나가 복싱을 제게 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복싱 관장님은 술을 마시며 통곡의 눈물을 흘렸다. 여기서 망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재능이라고.
그래도 곧장 날 버리지 않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날 위해 노력 해주셨다. 내 인생에 몇 안되는 은인 중 한 분이다.
“······.”
망연자실한 어느 날 작은 삼촌이 찾아왔다. 장례식도 거행하고 날 거둬줬다. 자신이 다 알아서 하겠다며 집문서를 포함해 이것저것 요구했고 나는 수락했다. 호구같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사진으로 변한 부모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무력하고 고통스러웠다.
할 것이 없다. 내 길도 접혔고 공부는 잡히지 않았다. 나는 집에서 챙겨온 낡은 컴퓨터 한 대를 키고 그렇게 폐인처럼 게임을 시작했다. 현실을 잊고 싶었고 다른 무언가에 심취하고 싶었다.
게임에 쫓겨 살았다. 어깨가 아파져 와도 키보드를 두들겼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판타지 게임이라고 해서 해봤는데 너무 쉬웠다.
그리고 곧 어깨의 통증으로 인한 한계를 느꼈다. 그렇게 최종 던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이트메어 방송을 켰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기사에도 실렸고 말이다. 삼촌은 나이트메어 1위의 기사를 보여주며 저렇게 할 것 아니면 돈만 축내지 말고 알바나 하라고 말했다.
여동생의 치료비와 입원비를 더 이상 부담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월세도 나 혼자 벌고 나 혼자 알아서 하라고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3개월이나 지나서 한 소리였다. 생계라는 벽에 막혀 랭킹 1등 칭호를 달고 사라졌다.
4년동안 게임 대신 주식 공부를 하고 편의점 알바를 하며 간간히 돈을 모으고 살아갔다. 게임을 끊고 치료 목적으로 오른손으로만 살아가니 왼쪽 어깨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다시 복싱으로 복귀할까 생각해봤지만 이미 몸은 복싱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해져 있었다. 다시 하고 싶지도 않았다.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공부에 전념했다. 어느 정도 어깨가 완치됐을 때는 타이밍 나쁘게도 군대에 들어가야 했다.
병역 의무를 다하던 어느 날. 여동생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머리가 잔뜩 새하얘져서 아무 생각 없이 부대를 탈영하고 병원으로 달렸다. 숨을 헐떡이며 여동생과 처음 눈을 마주친 그날.
우리는 서로를 보며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병원을 나올 때는 병원비와 치료비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상부에서는 사정을 생각해 탈영을 어느 정도 눈감아 주는 눈치였고 곧바로 조기 전역하며 생계를 위해 일했다. 작은 삼촌은 내가 군대에 있던 사이 어딘가로 사라졌고 원래 있던 아파트로 찾아 갔을 때는 그 자리에 세입자가 있었다.
분노에 쫓아 놈을 수소문 했고 대한민국 시골 구석탱이에서 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발견한 나는 놈을 죽어라 팼다. 죽기 직전까지. 그렇게 받아낸 2000만원. 그걸로 여동생의 입원비와 치료비를 대신하며 작은 삼촌과의 인연은 완전히 끊겼다.
*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날. 다양한 색채들이 거리에 나뒹군다. 밟히기도 하고 바람에 흩날려 어딘가로 떠나기도 했다.
가족에 대한 이별과 슬픔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부 사그라들었다. 다친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시간이라는 게 사실인가 보다.
때때로 거리에 들려오는 행복한 웃음소리, 전화 소리, 자동차 경적.
한숨을 내쉬는 존재는 이 세상에 나뿐인가. 갑자기 가방에 들어 있는 다량의 책들이 너무나도 무거워졌다.
“어휴···.”
주머니에 차가운 손을 집어넣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시간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병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병원 맞은편에 도착했다. 벽에 살짝 기대며 병원 입구를 슬쩍 봤다.
병원 입구에서 여동생이 휠체어를 탄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여동생을 만나기 전 크게 한 번 숨을 내뱉으며 양 손바닥으로 따귀를 짝하고 때렸다.
- 짝!
얼얼한 게 정신이 확 든다. 고통과 함께 돈 걱정, 잡생각이 날아갔다.
‘나는 돈이 많다. 나는 돈이 많다.’
그렇게 자가 최면도 걸었다. 씁쓸한 미소를 감추며 입꼬리를 올렸다. 혹여나 지금 우리의 재정 상황을 알릴까. 최대한 긍정적으로, 밝게 웃었다. 자조적인 웃음이다. 나도 이런 내가 싫다.
여동생을 향해 걸어갔다.
“왔어?”
“보면 모르냐.”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심한 척해줬다.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밀어주며 길거리를 산책했다. 무슨 얘기를 꺼내야 좋아할까. 그런 걸 고민하고 있을 때 여동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 달··· 입원비··· 얼마나 나왔어···?”
조심스레 꺼낸 질문이다. 뭐라고 답할까.
‘입원비 ㅈㄴ 많이 나와서 내 등골이 가루가 되겠다.’
‘혜진이 건강해지고 있나 봐! 이번 달은 얼마 안나 왔어!’
생각을 이리저리 굴리려던 찰나 극과 극 사이 중간쯤에서 합의 보기로 했다.
“하하~ 얼마 안나 왔어 알바 조금 하면 충분히 내고도 남을 돈이야. 부족하다고 해도 천천히 갚아 나가면 돼. 오빠는 넘쳐나는 게 시간이거든.”
“······.”
여동생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고개가 떨어져 땅바닥만 바라봤다.
내가 말실수를 한 건 아닐 터. 답은 하나다 이놈의 연기가 문제다. 억양이 조금 떨린 것이 실수였다. 여동생의 감이 오늘따라 예리했다. 그것보다 이미 입원비를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알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걸로 어느 정도 지금 상황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
‘다음부터는 병원에 입원비 알려주지 말라고 해야지.’
“걱정 마. 이 오빠가 어떻게든 할게. 돈 신경 쓰지 말고 인마! 모처럼 산책 나왔는데 예쁜 꽃도 보고! 웃고 있는 사람도 보고! 저 귀엽게 생긴 길고양이도 보고!”
“오빠.”
“크흠.”
여동생은 오빠의 모습을 보고는 씁쓸한 눈웃음을 미소를 지었다. 그랬기에 진심이 담긴 표정이었다.
“나는 오빠 없었으면 진짜 힘들었을 거야.”
“그런 소리 하지 말라니까.”
“그냥 그렇다고~. 항상 고마워. 책은 내 무릎에 올려줘.”
“아니야 병실까지 가져다 줄게.”
“그래주면 더 좋고~.”
흘리듯 짓는 미소는 예뻤다. 돈 많은 남자는 이런 예쁜 여동생을 안 꼬시고 뭐하냐. 나만 미소를 보기 아쉬울 정도였다.
여동생의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더욱 착잡해졌다. 길을 걷던 중 돈에 굶주리던 나는 우연히 한 게임 광고를 보게 되었다.
[나이트메어 온라인 정식 출시 발매 2주년!]
이후 각종 방송인들이 게임을 재밌게 즐기는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후 가끔씩 터지는 후원금에 줌이 되었다. 그런 류의 편집된 광고 영상이었다.
“저거 돈 많이 벌리나?”
- 퍽 퍼퍼벅! 후웅! 퍽!
빠르고 강력한 펀치.
괴물 같은 반사 신경.
김지원은 대뷔 3달 2경기 만에 복싱의 신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게 불렸다.
잘한다가 아닌.
미쳤다에 가까운 천재.
[피합니다! 피합니다! 어어! 또 피해요! 김지원 선수 미쳤습니다! 최민규 선수 당황한 것 같은데요!?]
잔뜩 흥분한 해설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최민규는 당황하며 가드를 새웠다. 억울한 마음을 꾹 억누르며 말이다. 김지원은 고작 2년 동안 복싱했다. 그에 비해 최민규는 8년.
'젠장! 왜 안 맞는 거야! 저녀석은 고작 4년 복싱한 초짜인데!'
두배의 경험은 고작 재능으로 좁힐 수 있는 경지가 아닐 거다. 아니 좁힐 수 없다. 최민규에게 8년은 그저 덜 아프게 맞고 덜 맞는 것이 전부 였다. 그 어떠한 공격도 김지원에게 닿을 수 없었다. 아무리 훼이크를 넣고 반박자, 반의 반박자 빠르게 공격해도 놈은 피했다.
맞으면서 상대해보니 보니 이유를 알 것 같다. 왜 놈이 복싱의 신이라고 불리우는 지.
'예측하고 피하는 게 아니라 보고 피하는 거구나. 시발.'
나랑은 보는 세계가 달랐다.
김지원은 뒤로 빠지며 스텝을 밟고는 사이드에 몰린 최민규를 압박했다.
단 하나의 수만을 생각했다. 최민규가 김지원을 이길 수. 시합 전 감독은 딱 한가지만 말했다.
'놈은 전부 피할 거다. 그리고 때릴 거다. 판정승은 불가능해. KO만 생각해라 사이드에 몰려줘 김지원 놈은 항상 들어올때 오른손 스트레이트, 왼손 어퍼. 온 힘을 다해 카운터 때려라.'
카운터로 한 번에 KO 승으로 노리는 것.
김지원은 스텝을 밟다가 순식간에 돌진했고 예상대로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저 스트레이트에 맞으면 확실하게 KO 당한다고.
그리 생각했다.
온 힘을 다해 더킹으로 좌측으로 숙이며 스트레이트를 피해냈다. 이후 왼손으로 카운터를 강하게 날린다.
- 퍽!
[어어! 카운터! 카운터!! 완벽하게 들어갔습니다! 김지원 선수 위기!!]
주먹은 정확하게 턱을 가격했지만 김지원은 쓰러지지 않았다.
완벽한 카운터다. 내 일생 이보다 완벽한 카운터와 파워를 낼 수 없다고 장담할 정도로 완벽하게 들어간 카운터였다. 그런데 놈은 견뎠다. 처음부터 맞아 줄 생각으로 들어온 놈.
'제대로 미친놈.'
김지원의 어퍼가 순식간에 턱을 가격했다. 어마어마한 힘, 회전력, 모든 것이 완벽했다. 최민규는 재능의 차이를 느끼며 쓰러졌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을 부릅뜨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시야에는 가만히 링에 손을 기대며 회복하고 있는 놈이 보였다.
시선은 일어나려는 날 올곧게 향하고 있었다.
'이길 수 없구나.'
붙잡고 있던 정신을 줄을 놔버렸다. 그것으로 정신을 잃었다.
[김지원 선수의 어퍼! 텐! 나인! ..... 최민규 선수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경기 종료 됩니다!]
김지원의 화려한 인생이 고작 교통 사고로 인한 어깨 부상에 끝났다는 것에 많은 복싱 메니아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땅을 치고 후회했다. 이후 김지원의 행방은 숨겨졌고 천천히 뇌리에서 잊혀갔다.
*
내가 사는 세상은 남들과 시간의 밀도가 달랐다. 어렸을 적부터 계속해서.
하늘을 날아가는 새.
빗줄기.
모두 느리게 흘렀다. 그것을 알았던 것은 15살 무렵이었다. 복싱 경기를 보며 주먹이 눈에 안 보일 정도로 빠르다고 말한 아빠에게 말했다.
‘주먹이 빨라요? 느리지 않아요?’
아빠는 곧장 날 대리고 복싱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증명됐다. 압도적인 동체 시력과 반사 신경은 나를 자연스럽게 복서의 길로 인도했다. 원래 복싱을 좋아하기도 했다. 주먹을 피하고 때리고 그것이 전부였다.
18살에 데뷔해서 20전 20승 전부 KO승으로 이겼다. 항상 화끈한 걸 좋아했으니까 강하게 플레이 했고 이건 확실하게 먹혀들어 갔다. 분명히 이쪽 길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기사에도 실리며 화끈하고 가장 천부적인 재능의 한국 인파이터! 슈퍼 루키! 라는 소리도 들었으니까.
부모가 날 낳은 건 천운이라고 말했다. 막 철든 여동생 앞에서 말이다. 그 이후 교통사고만 없었다면 어땠을까.
2026년에 20살이 됐을 무렵 나의 운명을 뒤바꿔 놓은 사건이 있었다.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던 어느 날이었다.
“지혜야 창밖만 보지 말고 오빠랑 얘기도 좀 나누고 그래라. 다음 달에 시합인데 열심히 하라고 응원도 못할 망정.”
오빠와의 차별 속에서 묵묵히 견뎌온 불만 많은 여동생은 모처럼의 여행이라 참으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터져 버렸다.
“항상 나만 가지고 그래···. 어제도 말했는데···.”
서러움이 폭발했다. 나는 여동생의 손을 꼭 잡아줬다.
“엄마 모처럼 여행인데.”
그때다.
- 끼이이익!
트럭이 중앙 차선을 넘어 우리 차 쪽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내가 트럭을 발견하고 다급히 말했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앞에 트럭!”
트럭이 들이박기 직전 부모의 일그러진 표정이 자동차의 미러로 보였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트럭이 들이박는 위치를 예상하고 여동생을 감쌌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앞 좌석에 탄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트럭은 밀고 들어오며 내가 앉아 있던 좌석을 뭉그러트렸다. 자동차가 몇 번 나뒹굴고 앞 좌석이 뒤로 밀려들어 오며 여동생의 다리를 아작 냈다. 유리창에 머리를 박는 등 심하게 다친 것 같다.
“콜록··· 콜록···. 엄마! 아빠! 지혜야!”
“······.”
단 몇 초 만에 생긴 참극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떨리는 눈동자를 바로잡으며 홀로 정신을 차린 나는 아픈 어깨를 무시하고 주먹으로 금 간 유리창을 온 힘을 다해 부셨다. 이후 여동생을 대리고 차 밖으로 탈출했다. 여동생이 숨을 쉬지 않았다.
다급히 핸드폰을 찾았을 때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뒤에서 쫓아오던 차량에서 내린 부부가 곧바로 신고해 준 탓에 아슬아슬하게 여동생을 살릴 수 있었다.
혼수상태로 깨어나지 못하는 여동생을 유리창 너머에서 바라봐야 했다.
어깨가 완전히 나가 복싱을 제게 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복싱 관장님은 술을 마시며 통곡의 눈물을 흘렸다. 여기서 망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재능이라고.
그래도 곧장 날 버리지 않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날 위해 노력 해주셨다. 내 인생에 몇 안되는 은인 중 한 분이다.
“······.”
망연자실한 어느 날 작은 삼촌이 찾아왔다. 장례식도 거행하고 날 거둬줬다. 자신이 다 알아서 하겠다며 집문서를 포함해 이것저것 요구했고 나는 수락했다. 호구같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사진으로 변한 부모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무력하고 고통스러웠다.
할 것이 없다. 내 길도 접혔고 공부는 잡히지 않았다. 나는 집에서 챙겨온 낡은 컴퓨터 한 대를 키고 그렇게 폐인처럼 게임을 시작했다. 현실을 잊고 싶었고 다른 무언가에 심취하고 싶었다.
게임에 쫓겨 살았다. 어깨가 아파져 와도 키보드를 두들겼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판타지 게임이라고 해서 해봤는데 너무 쉬웠다.
그리고 곧 어깨의 통증으로 인한 한계를 느꼈다. 그렇게 최종 던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이트메어 방송을 켰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기사에도 실렸고 말이다. 삼촌은 나이트메어 1위의 기사를 보여주며 저렇게 할 것 아니면 돈만 축내지 말고 알바나 하라고 말했다.
여동생의 치료비와 입원비를 더 이상 부담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월세도 나 혼자 벌고 나 혼자 알아서 하라고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3개월이나 지나서 한 소리였다. 생계라는 벽에 막혀 랭킹 1등 칭호를 달고 사라졌다.
4년동안 게임 대신 주식 공부를 하고 편의점 알바를 하며 간간히 돈을 모으고 살아갔다. 게임을 끊고 치료 목적으로 오른손으로만 살아가니 왼쪽 어깨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다시 복싱으로 복귀할까 생각해봤지만 이미 몸은 복싱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해져 있었다. 다시 하고 싶지도 않았다.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공부에 전념했다. 어느 정도 어깨가 완치됐을 때는 타이밍 나쁘게도 군대에 들어가야 했다.
병역 의무를 다하던 어느 날. 여동생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머리가 잔뜩 새하얘져서 아무 생각 없이 부대를 탈영하고 병원으로 달렸다. 숨을 헐떡이며 여동생과 처음 눈을 마주친 그날.
우리는 서로를 보며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병원을 나올 때는 병원비와 치료비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상부에서는 사정을 생각해 탈영을 어느 정도 눈감아 주는 눈치였고 곧바로 조기 전역하며 생계를 위해 일했다. 작은 삼촌은 내가 군대에 있던 사이 어딘가로 사라졌고 원래 있던 아파트로 찾아 갔을 때는 그 자리에 세입자가 있었다.
분노에 쫓아 놈을 수소문 했고 대한민국 시골 구석탱이에서 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발견한 나는 놈을 죽어라 팼다. 죽기 직전까지. 그렇게 받아낸 2000만원. 그걸로 여동생의 입원비와 치료비를 대신하며 작은 삼촌과의 인연은 완전히 끊겼다.
*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날. 다양한 색채들이 거리에 나뒹군다. 밟히기도 하고 바람에 흩날려 어딘가로 떠나기도 했다.
가족에 대한 이별과 슬픔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부 사그라들었다. 다친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시간이라는 게 사실인가 보다.
때때로 거리에 들려오는 행복한 웃음소리, 전화 소리, 자동차 경적.
한숨을 내쉬는 존재는 이 세상에 나뿐인가. 갑자기 가방에 들어 있는 다량의 책들이 너무나도 무거워졌다.
“어휴···.”
주머니에 차가운 손을 집어넣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시간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병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병원 맞은편에 도착했다. 벽에 살짝 기대며 병원 입구를 슬쩍 봤다.
병원 입구에서 여동생이 휠체어를 탄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여동생을 만나기 전 크게 한 번 숨을 내뱉으며 양 손바닥으로 따귀를 짝하고 때렸다.
- 짝!
얼얼한 게 정신이 확 든다. 고통과 함께 돈 걱정, 잡생각이 날아갔다.
‘나는 돈이 많다. 나는 돈이 많다.’
그렇게 자가 최면도 걸었다. 씁쓸한 미소를 감추며 입꼬리를 올렸다. 혹여나 지금 우리의 재정 상황을 알릴까. 최대한 긍정적으로, 밝게 웃었다. 자조적인 웃음이다. 나도 이런 내가 싫다.
여동생을 향해 걸어갔다.
“왔어?”
“보면 모르냐.”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심한 척해줬다.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밀어주며 길거리를 산책했다. 무슨 얘기를 꺼내야 좋아할까. 그런 걸 고민하고 있을 때 여동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 달··· 입원비··· 얼마나 나왔어···?”
조심스레 꺼낸 질문이다. 뭐라고 답할까.
‘입원비 ㅈㄴ 많이 나와서 내 등골이 가루가 되겠다.’
‘혜진이 건강해지고 있나 봐! 이번 달은 얼마 안나 왔어!’
생각을 이리저리 굴리려던 찰나 극과 극 사이 중간쯤에서 합의 보기로 했다.
“하하~ 얼마 안나 왔어 알바 조금 하면 충분히 내고도 남을 돈이야. 부족하다고 해도 천천히 갚아 나가면 돼. 오빠는 넘쳐나는 게 시간이거든.”
“······.”
여동생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고개가 떨어져 땅바닥만 바라봤다.
내가 말실수를 한 건 아닐 터. 답은 하나다 이놈의 연기가 문제다. 억양이 조금 떨린 것이 실수였다. 여동생의 감이 오늘따라 예리했다. 그것보다 이미 입원비를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알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걸로 어느 정도 지금 상황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
‘다음부터는 병원에 입원비 알려주지 말라고 해야지.’
“걱정 마. 이 오빠가 어떻게든 할게. 돈 신경 쓰지 말고 인마! 모처럼 산책 나왔는데 예쁜 꽃도 보고! 웃고 있는 사람도 보고! 저 귀엽게 생긴 길고양이도 보고!”
“오빠.”
“크흠.”
여동생은 오빠의 모습을 보고는 씁쓸한 눈웃음을 미소를 지었다. 그랬기에 진심이 담긴 표정이었다.
“나는 오빠 없었으면 진짜 힘들었을 거야.”
“그런 소리 하지 말라니까.”
“그냥 그렇다고~. 항상 고마워. 책은 내 무릎에 올려줘.”
“아니야 병실까지 가져다 줄게.”
“그래주면 더 좋고~.”
흘리듯 짓는 미소는 예뻤다. 돈 많은 남자는 이런 예쁜 여동생을 안 꼬시고 뭐하냐. 나만 미소를 보기 아쉬울 정도였다.
여동생의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더욱 착잡해졌다. 길을 걷던 중 돈에 굶주리던 나는 우연히 한 게임 광고를 보게 되었다.
[나이트메어 온라인 정식 출시 발매 2주년!]
이후 각종 방송인들이 게임을 재밌게 즐기는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후 가끔씩 터지는 후원금에 줌이 되었다. 그런 류의 편집된 광고 영상이었다.
“저거 돈 많이 벌리나?”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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