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하고 싶어 (3)
조회 : 999 추천 : 1 글자수 : 5,271 자 2022-07-22
[신규 유저님 튜토리얼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아니요.”
거절했다.
본래 목적인 방송은 조금 잊고 일주일 동안은 순수하게 즐기기로 이미 마음먹었다. 즐기는 것일 뿐 본문을 절대 잊지 않는다.
돈에 갇혀서 좁은 시야로 이 게임을 하고 싶지 않았다. 돈만 쫓으면 더 높이 있는 것을 쟁취할 수 없었다. 많은 것을 볼 수 없다. 관장님은 항상 세상을 넓게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높게 보라고 하셨다.
‘천천히 하나 씩.’
원작 나이트메어1의 시스템은 전부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몬스터의 눈동자로 알 수 있는 공격 위치나. 스텟에 따른 단점과 장점 같은 초보자들은 알기 어려운 시스템 말이다. 몬스터의 눈동자를 보고 공격 위치를 예측한다는 건 아는 자가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극히 드물었다. 공격 피하기도 바쁜 마당에 누가 몬스터의 눈동자를 보고 공격을 피할 생각을 할까.
내가 그랬다. 공격이 느리게 보이니 자연스럽게 여유가 생겼고 몬스터의 생김새를 눈에 담아둘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거다.
나이트메어 온라인도 아직 발견되지 못한 세밀하고 디테일한 전투 시스템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 그 전에 우선 나이트메어2의 시스템에 적응하기로 했다.
양산형 판타지 게임에는 뽑기 시스템이 무조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나이트메어 온라인의 시스템을 이해하면 디테일하게 숨겨 진 시스템의 연결점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그리 생각했다.
시간을 소비했다. 10분쯤 메뉴와 설정 창을 번갈아 가며 뒤적거렸다.
퀘스트
지도
상태창
스킬
장비
개인 창고
친구
파티
길드
커뮤니티
메인 퀘스트가 있고 스킬이 있으며 직업이 있었다. 그런 것들만 대충 알아두고 외웠다. 레벨이 적어서 인지 할 수 있는 건 메인 퀘스트를 미는 것이 전부였다. 설정 창은 매우 부실했다. 취향에 맞춰 전투 연출 설정하는 걸 제외하면 내가 조정할 것이 없었다.
동화율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뭔지 궁금해 동화율 옆에 뜬 물음표를 누르고 읽어보니 동화율에 대한 설명이 길고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대충 요약하면 동화율은 현실의 감각을 느끼는 정도라고 한다. 그 부분은 상황에 따라서 조정된다고 하는데 전투 중이 아닐 때는 동화율이 70% 이상으로 올라가고 전투 중일 때는 동화율이 10% 이하로 낮아진다고 한다.
지금 내 동화율은 98%였다. 전투 중이 아니니 현실과 거의 흡사한 감각이다.
설정은 그게 전부였다.
이제 메인 퀘스트를 밀어 직업을 얻을 차례였다. 직업의 종류는 100가지나 된다. 당연히 히든 직업도 있다. 알아보니 히든 직업은 단순히 마이너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배려해서 따로 숨겨놓은 직업이라고 한다.
낚시나. 농부 같은 직업도 전부 히든 직업에 속했다. 따로 숨겨진 MPC의 퀘스트를 클리어 해야 얻을 수 있는 숨겨진 직업.
대부분의 히든 직업은 인터넷 상에 정보가 풀려 영상을 보고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확실히 전작과는 달랐다. 직업이 엄청 다양하게 있으니 고르는 맛도 있을 것이다. 대충 초반에 알아둬야 할 건 전부 알아둔 모양이니 했으니 퀘스트를 밀기 위해 움직였다.
“퀘스트 내용 확인.”
- 띠링
익숙한 소리였다. 눈앞에 직사각형 스크린이 떠오른다. 손을 뻗으니 스크린을 그대로 통과했다.
[ 광활한 세계에 발을 들이기 위한 준비! (1) ]
당신은 아직 광활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된 직업도 없고 말이죠. 빌헬름이 초짜인 당신을 도와줄 겁니다.
《빌헬름을 찾아가세요 0/1》
(보상)
낡은 철 검 1+
딱딱한 빵 2+
시야에 내비게이션처럼 방향을 표시하는 화살표가 생겼다.
보아하니 직접 걸어서 퀘스트 장소로 가야 하는 모양이다. 우측 위에 보이는 지도를 크게 확대하자 저 멀리 ★표시로 퀘스트 위치가 찍혀 있었다. 어림잡아도 5km 이상 되어 보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게임을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한테 3km를 걸어가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됐다.
조금 편하게 갈 방법이 없을까 찾아보다가 메뉴에서 가방을 열게 되었다.
가방 안에는 원래 없던 [퀘스트 이동권]이 존재했다.
불친절했다. 생각 없이 무식하게 플레이 하면 효율적인 측면에서 손해를 많이 볼 것이라는 나이트메어의 간접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곧장 이동권을 사용하니. 시야가 어두워졌다가 다시 색채가 채워졌다. 눈앞에는 하얀 백발과 풍성한 수염의 중년을 볼 수 있었다. 시야에 화살표는 남자를 가리키고 있었고 머리 위에 빌헬름이라 적혀 있다.
“편리하네.”
빌헬름에게 다가가니 그가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호오 요즘 보기 드문 초보자군. 퀘스트를 받으러 왔나?”
“네.”
곧장 대답했다. 그가 낡은 철 검과 종이 한 장을 내게 건넸다. 종이에는 어렴풋이 퀘스트 내용에 관해 적혀 있었다. 종이를 잡자마자 그래픽 조각을 휘날리며 불타듯 사라졌고 철 검은 허리춤에 장착되었다.
“퀘스트를 클리어 하고 다시 한번 날 찾아오게.”
딱딱한 말투였다. 실제 살아있는 인간처럼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달하였다고 하던데. 왜인지는 모르겠다.
- 띠링
[퀘스트 클리어! 퀘스트가 연계됩니다!]
[ 광활한 세계에 발을 들이기 위한 준비! (2) ]
초보의 숲에 있는 초록 슬라임을 잡아 당신의 전투 센스를 마음껏 발휘해보세요!
《초록 슬라임 처치 0/10》
(보상)
1500XP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당장 움직이려고 발을 뗄 그때다.
“잠깐.”
“네?”
빌헬름이 말을 걸었다.
“내가 자네에게 이름을 안 물어 봤구만 자네는 이름을 뭔가?”
갑자기 인공지능이 말을 걸었다.
‘왜지? 이름을 물어볼 만큼 그리 우호적인 관계는 아닌 듯 했는데.’
이름이라면 분명 닉네임을 말하는 것일 거다.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난선두.”
“난선두라···. 역시나.”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뭔가 있어 보인다.
“왜 하필 그 ‘닉네임’을 적은 건가. 어리석은자들 중 한 명이군···. 참으로 유감이야.”
빌헬름의 얼굴에는 착잡함이 묻어 있었다.
왜 이 닉네임을 골랐냐고 한다면 예전부터 써온 닉네임이고 전작에 랭킹 1등을 했던 닉네임이기 때문이다.
‘잠만 전작 랭킹 1등?’
과거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이트메어1 최종 던전을 클리어하고 그 위에 있었던 일 말이다. 왜 지금 떠올랐을까.
돈에 쫓겨 살다 보니 과거를 돌아볼 일이 없었다. 잊혀 질 뻔 한 제작자의 말이 떠오른다.
“유감인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그가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바라봤다. 이후 다시 날 본다.
“난선두는 저주 받은 이름일세. 그 닉네임을 가진 자 들은 전부 죽었거든. 물론 자네는 다를 수도 있지. 그 닉네임을 품을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야.”
- 띠링
뭔가 적색 글씨로 강조된 퀘스트가 떴다.
[ 랭킹 1위로 가는 길! (1) ]
‘난선두’ 그 이름은 과거, 세계가 발달하기 전, 모든 던전을 홀로 클리어한 전설적인 플레이어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1위라는 찬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당신은 시련을 이겨내며 닉네임을 귀속할 가치를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가치 증명하지 못한다면 천벌을 받습니다.
《저주받은 해골 병사 처치 0/1》
(보상)
평범한 반격기(진화 권한)
50000XP
- 띠링
스킬 〈부족한 반격기〉를 습득하셨습니다.
반격기. 랭킹 1위로 가는 길.
누가 봐도 과거 내 전적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6년전 과거.
나는 모든 던전을 클리어하며 마지막 제작자의 영접실로 이동했다. 제작자는 날 축하해줬고 곧 게임을 클리어 하기 위해 전투를 벌였다.
제작자가 직접 컨트롤하는 최종 보스였다. 신박하면서도 미친 게임이다. 연신 그의 참신함에 감탄만 나왔다.
플레이어 VS 플레이어
제작자는 종결급 아이템으로 무장하고 마법 스킬을 퍼부었지만 고전 끝에 승리한 쪽은 나였다.
그는 분하고 아쉬운 듯 보였지만 할 말은 해야 했기에 입을 열었다.
‘축하드립니다 (난선두) 유저님 최초로 나이트메어를 클리어한 유저가 되셨습니다. 최초로 클리어한 유저에게는 당연히 보상이 필요하겠죠? 유저님의 발자취가 세상에 남을 겁니다. 그러니 기대하셔도 좋아요.’
기껏 해봤자 재밌게 즐기라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때 당시만 해도 후속작이 나온다는 건 나만 알고 있었으니까.
‘설마 닉네임으로 직업으로 만들 줄은.’
- 씨익
뭐든 좋았다. 이건 나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니까. 누가 치사하다고, 사기라고, 불공평하다고 따져 보라지.
[레전드 직업 (난선두) 퀘스트 장소로 이동합니다]
이후 시야가 뚝- 끊겼다.
*
당연하지만 처음 보는 장소였다. 주위는 온통 사방이 돌이다. 바닥은 사각형 타일로 이뤄져 있었다. 그런 공간이었다. 고개를 위로 올려다 보면 구름 한 점 떠다니는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다시금 고개를 앞으로 하면 시야에는 검을 든 해골 병사가 보였다. 몸에서 악한 검고 무거운 기운이 스멀스멀 뿜어져 나와 가라앉고 있다.
〈저주 받은 나약한 해골 병사 LV100〉
HP 999/9999
- 철컥
상부와 하부 철갑이 맞물리며 소리를 냈다. 해골 병사는 날 보더니 적으로 인식했는지 검을 뽑아 들었고 내게 돌진했다.
속도는 빨랐다.
내 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놈이 더 접근하기 전 곧장 메뉴를 거쳐 스킬을 눌렸다. 아까 습득한 〈부족한 반격기〉가 있을 거다. 스킬창이 띄워지고 눈에는 〈부족한 반격기〉가 보였다.
〈부족한 반격기〉
쿨타임:5초
반사 데미지 5%
방어:99%
(아직 결점이 많이 보입니다.)
스킬이 있는 건 확인 됐다.
‘그런데 어떻게 사용하지?’
생각해 내야 했다. 고민하던 사이 놈이 가까이 근접했고 검을 높게 들었다. 이후 두개골 안쪽 푸른 불꽃을 번뜩이며 검을 내질렀다.
- 후웅!
상단에서 하단이었다.
- 캉!
검이 허공을 가르며 돌바닥에 박힌다.
옆으로 몸을 날리며 피해냈다. 동시에 낡은 철 검을 허리춤에서 길게 뽑아 들었다.
“······!”
철 검이 무겁다.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건 무게가 없다시피 가벼웠는데 드는 순간 무거운 추로 검을 짓누르듯 매우 무거워졌다.
검을 뽑아 든 것으로 내 행동은 끝났다. 놈이 또다시 돌진하며 검을 휘둘렀다. 피하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놈의 검에 정면으로 맞섰다.
놈은 검을 높게 들어 올려 하단으로 내리 찍었다. 놈의 패턴을 하나 찾았다.
- 카앙!
검과 검이 만났다. 불꽃이 튀며 압도적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릎을 꿇어야 했다.
HP100 → 98
분명 방어했다. 그런데 시야 위에 보이는 HP가 깎였다. 방어한다고 완벽히 막아지는 게 아닌 모양이다.
-털썩
위에서 무언가가 계속 짓누르고 있었다.
“크윽!”
위기였다. 적의 강함도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들이민 내 잘못이다. 침착하고 시간을 들여 공략했다면 가능했을지도 몰랐다.
이놈의 인파이터 기질이 내 발목을 잡는구나.
‘제기랄 그냥 피할걸!’
나는 직접 몬스터를 눈으로 마주치고 맞부딪히며 느꼈다. 카페에서 봤던 머쉬룸독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깔끔하고 완벽하게 플레이했는지.
눈으로 보고 쉽다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내가 직접 겪어보니 전혀 쉬운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크으윽···!”
낡은 철검이 위태롭게 떨렸다. 반면 해골 놈의 얼굴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텅 빈 머리로 같은 동작만 반복할 뿐이었다. 몇 번이고 검으로 내리쳤다. 빠져나갈 틈이 없었기에 무력하게 막고만 있었다.
- 카앙! 카앙! 카앙!
HP98 → 91
낡은 철검의 내구성은 매우 약했다. 놈의 공격 몇 번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곧.
- 카앙!! 써억!
HP91 → 89···87···83···71···53
놈의 공격과 함께 두동강 나며 부러졌다. 검의 단면에는 실금이 잔뜩 남아 있었다. 놈의 검은 칼을 부신 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파고들며 내 오른팔과 어깨를 회 썰 듯 가볍게 썰어 버렸다.
놈의 공격에 확신이 담겼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챘고 좌측으로 숙였기에 팔 한쪽이 같이 날아가는 걸로 끝날 수 있었다.
·········13
순간 당황했다. 고통은 따끔한 정도로 끝났다. 내가 데미지를 받기 전 동화율이 감소했나 보다.
자리에 엉덩이를 박고 쓰러졌다.
오른쪽 팔과 어깨가 통째로 떨어져 나갔지만, 피가 나오거나 그런 리얼한 연출은 일어나지 않았다. 썰려 나간 어깨와 오른팔은 그래픽 쪼가리가 되어 흩어졌다. 눈에만 안 보일 뿐 나는 오른손의 감각은 살아 있었다.
크게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며 왼손으로 부러진 검 예리한 부분을 앉아 있는 상태로 놈에게 겨뤘다.
제기랄 답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죽어도 그냥 곱게 죽지 않는다는 걸 보여 줄 거다. 쥐새끼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걸.
“덤벼.”
[출혈 상태에 빠집니다. 지속적으로 HP가 0.1%씩 감소합니다]
[정신력으로 패닉을 저항했습니다. 그 반동으로 1분간 정신력이 50% 증가합니다]
“아니요.”
거절했다.
본래 목적인 방송은 조금 잊고 일주일 동안은 순수하게 즐기기로 이미 마음먹었다. 즐기는 것일 뿐 본문을 절대 잊지 않는다.
돈에 갇혀서 좁은 시야로 이 게임을 하고 싶지 않았다. 돈만 쫓으면 더 높이 있는 것을 쟁취할 수 없었다. 많은 것을 볼 수 없다. 관장님은 항상 세상을 넓게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높게 보라고 하셨다.
‘천천히 하나 씩.’
원작 나이트메어1의 시스템은 전부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몬스터의 눈동자로 알 수 있는 공격 위치나. 스텟에 따른 단점과 장점 같은 초보자들은 알기 어려운 시스템 말이다. 몬스터의 눈동자를 보고 공격 위치를 예측한다는 건 아는 자가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극히 드물었다. 공격 피하기도 바쁜 마당에 누가 몬스터의 눈동자를 보고 공격을 피할 생각을 할까.
내가 그랬다. 공격이 느리게 보이니 자연스럽게 여유가 생겼고 몬스터의 생김새를 눈에 담아둘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거다.
나이트메어 온라인도 아직 발견되지 못한 세밀하고 디테일한 전투 시스템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 그 전에 우선 나이트메어2의 시스템에 적응하기로 했다.
양산형 판타지 게임에는 뽑기 시스템이 무조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나이트메어 온라인의 시스템을 이해하면 디테일하게 숨겨 진 시스템의 연결점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그리 생각했다.
시간을 소비했다. 10분쯤 메뉴와 설정 창을 번갈아 가며 뒤적거렸다.
퀘스트
지도
상태창
스킬
장비
개인 창고
친구
파티
길드
커뮤니티
메인 퀘스트가 있고 스킬이 있으며 직업이 있었다. 그런 것들만 대충 알아두고 외웠다. 레벨이 적어서 인지 할 수 있는 건 메인 퀘스트를 미는 것이 전부였다. 설정 창은 매우 부실했다. 취향에 맞춰 전투 연출 설정하는 걸 제외하면 내가 조정할 것이 없었다.
동화율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뭔지 궁금해 동화율 옆에 뜬 물음표를 누르고 읽어보니 동화율에 대한 설명이 길고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대충 요약하면 동화율은 현실의 감각을 느끼는 정도라고 한다. 그 부분은 상황에 따라서 조정된다고 하는데 전투 중이 아닐 때는 동화율이 70% 이상으로 올라가고 전투 중일 때는 동화율이 10% 이하로 낮아진다고 한다.
지금 내 동화율은 98%였다. 전투 중이 아니니 현실과 거의 흡사한 감각이다.
설정은 그게 전부였다.
이제 메인 퀘스트를 밀어 직업을 얻을 차례였다. 직업의 종류는 100가지나 된다. 당연히 히든 직업도 있다. 알아보니 히든 직업은 단순히 마이너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배려해서 따로 숨겨놓은 직업이라고 한다.
낚시나. 농부 같은 직업도 전부 히든 직업에 속했다. 따로 숨겨진 MPC의 퀘스트를 클리어 해야 얻을 수 있는 숨겨진 직업.
대부분의 히든 직업은 인터넷 상에 정보가 풀려 영상을 보고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확실히 전작과는 달랐다. 직업이 엄청 다양하게 있으니 고르는 맛도 있을 것이다. 대충 초반에 알아둬야 할 건 전부 알아둔 모양이니 했으니 퀘스트를 밀기 위해 움직였다.
“퀘스트 내용 확인.”
- 띠링
익숙한 소리였다. 눈앞에 직사각형 스크린이 떠오른다. 손을 뻗으니 스크린을 그대로 통과했다.
[ 광활한 세계에 발을 들이기 위한 준비! (1) ]
당신은 아직 광활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된 직업도 없고 말이죠. 빌헬름이 초짜인 당신을 도와줄 겁니다.
《빌헬름을 찾아가세요 0/1》
(보상)
낡은 철 검 1+
딱딱한 빵 2+
시야에 내비게이션처럼 방향을 표시하는 화살표가 생겼다.
보아하니 직접 걸어서 퀘스트 장소로 가야 하는 모양이다. 우측 위에 보이는 지도를 크게 확대하자 저 멀리 ★표시로 퀘스트 위치가 찍혀 있었다. 어림잡아도 5km 이상 되어 보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게임을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한테 3km를 걸어가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됐다.
조금 편하게 갈 방법이 없을까 찾아보다가 메뉴에서 가방을 열게 되었다.
가방 안에는 원래 없던 [퀘스트 이동권]이 존재했다.
불친절했다. 생각 없이 무식하게 플레이 하면 효율적인 측면에서 손해를 많이 볼 것이라는 나이트메어의 간접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곧장 이동권을 사용하니. 시야가 어두워졌다가 다시 색채가 채워졌다. 눈앞에는 하얀 백발과 풍성한 수염의 중년을 볼 수 있었다. 시야에 화살표는 남자를 가리키고 있었고 머리 위에 빌헬름이라 적혀 있다.
“편리하네.”
빌헬름에게 다가가니 그가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호오 요즘 보기 드문 초보자군. 퀘스트를 받으러 왔나?”
“네.”
곧장 대답했다. 그가 낡은 철 검과 종이 한 장을 내게 건넸다. 종이에는 어렴풋이 퀘스트 내용에 관해 적혀 있었다. 종이를 잡자마자 그래픽 조각을 휘날리며 불타듯 사라졌고 철 검은 허리춤에 장착되었다.
“퀘스트를 클리어 하고 다시 한번 날 찾아오게.”
딱딱한 말투였다. 실제 살아있는 인간처럼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달하였다고 하던데. 왜인지는 모르겠다.
- 띠링
[퀘스트 클리어! 퀘스트가 연계됩니다!]
[ 광활한 세계에 발을 들이기 위한 준비! (2) ]
초보의 숲에 있는 초록 슬라임을 잡아 당신의 전투 센스를 마음껏 발휘해보세요!
《초록 슬라임 처치 0/10》
(보상)
1500XP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당장 움직이려고 발을 뗄 그때다.
“잠깐.”
“네?”
빌헬름이 말을 걸었다.
“내가 자네에게 이름을 안 물어 봤구만 자네는 이름을 뭔가?”
갑자기 인공지능이 말을 걸었다.
‘왜지? 이름을 물어볼 만큼 그리 우호적인 관계는 아닌 듯 했는데.’
이름이라면 분명 닉네임을 말하는 것일 거다.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난선두.”
“난선두라···. 역시나.”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뭔가 있어 보인다.
“왜 하필 그 ‘닉네임’을 적은 건가. 어리석은자들 중 한 명이군···. 참으로 유감이야.”
빌헬름의 얼굴에는 착잡함이 묻어 있었다.
왜 이 닉네임을 골랐냐고 한다면 예전부터 써온 닉네임이고 전작에 랭킹 1등을 했던 닉네임이기 때문이다.
‘잠만 전작 랭킹 1등?’
과거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이트메어1 최종 던전을 클리어하고 그 위에 있었던 일 말이다. 왜 지금 떠올랐을까.
돈에 쫓겨 살다 보니 과거를 돌아볼 일이 없었다. 잊혀 질 뻔 한 제작자의 말이 떠오른다.
“유감인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그가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바라봤다. 이후 다시 날 본다.
“난선두는 저주 받은 이름일세. 그 닉네임을 가진 자 들은 전부 죽었거든. 물론 자네는 다를 수도 있지. 그 닉네임을 품을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야.”
- 띠링
뭔가 적색 글씨로 강조된 퀘스트가 떴다.
[ 랭킹 1위로 가는 길! (1) ]
‘난선두’ 그 이름은 과거, 세계가 발달하기 전, 모든 던전을 홀로 클리어한 전설적인 플레이어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1위라는 찬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당신은 시련을 이겨내며 닉네임을 귀속할 가치를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가치 증명하지 못한다면 천벌을 받습니다.
《저주받은 해골 병사 처치 0/1》
(보상)
평범한 반격기(진화 권한)
50000XP
- 띠링
스킬 〈부족한 반격기〉를 습득하셨습니다.
반격기. 랭킹 1위로 가는 길.
누가 봐도 과거 내 전적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6년전 과거.
나는 모든 던전을 클리어하며 마지막 제작자의 영접실로 이동했다. 제작자는 날 축하해줬고 곧 게임을 클리어 하기 위해 전투를 벌였다.
제작자가 직접 컨트롤하는 최종 보스였다. 신박하면서도 미친 게임이다. 연신 그의 참신함에 감탄만 나왔다.
플레이어 VS 플레이어
제작자는 종결급 아이템으로 무장하고 마법 스킬을 퍼부었지만 고전 끝에 승리한 쪽은 나였다.
그는 분하고 아쉬운 듯 보였지만 할 말은 해야 했기에 입을 열었다.
‘축하드립니다 (난선두) 유저님 최초로 나이트메어를 클리어한 유저가 되셨습니다. 최초로 클리어한 유저에게는 당연히 보상이 필요하겠죠? 유저님의 발자취가 세상에 남을 겁니다. 그러니 기대하셔도 좋아요.’
기껏 해봤자 재밌게 즐기라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때 당시만 해도 후속작이 나온다는 건 나만 알고 있었으니까.
‘설마 닉네임으로 직업으로 만들 줄은.’
- 씨익
뭐든 좋았다. 이건 나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니까. 누가 치사하다고, 사기라고, 불공평하다고 따져 보라지.
[레전드 직업 (난선두) 퀘스트 장소로 이동합니다]
이후 시야가 뚝- 끊겼다.
*
당연하지만 처음 보는 장소였다. 주위는 온통 사방이 돌이다. 바닥은 사각형 타일로 이뤄져 있었다. 그런 공간이었다. 고개를 위로 올려다 보면 구름 한 점 떠다니는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다시금 고개를 앞으로 하면 시야에는 검을 든 해골 병사가 보였다. 몸에서 악한 검고 무거운 기운이 스멀스멀 뿜어져 나와 가라앉고 있다.
〈저주 받은 나약한 해골 병사 LV100〉
HP 999/9999
- 철컥
상부와 하부 철갑이 맞물리며 소리를 냈다. 해골 병사는 날 보더니 적으로 인식했는지 검을 뽑아 들었고 내게 돌진했다.
속도는 빨랐다.
내 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놈이 더 접근하기 전 곧장 메뉴를 거쳐 스킬을 눌렸다. 아까 습득한 〈부족한 반격기〉가 있을 거다. 스킬창이 띄워지고 눈에는 〈부족한 반격기〉가 보였다.
〈부족한 반격기〉
쿨타임:5초
반사 데미지 5%
방어:99%
(아직 결점이 많이 보입니다.)
스킬이 있는 건 확인 됐다.
‘그런데 어떻게 사용하지?’
생각해 내야 했다. 고민하던 사이 놈이 가까이 근접했고 검을 높게 들었다. 이후 두개골 안쪽 푸른 불꽃을 번뜩이며 검을 내질렀다.
- 후웅!
상단에서 하단이었다.
- 캉!
검이 허공을 가르며 돌바닥에 박힌다.
옆으로 몸을 날리며 피해냈다. 동시에 낡은 철 검을 허리춤에서 길게 뽑아 들었다.
“······!”
철 검이 무겁다.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건 무게가 없다시피 가벼웠는데 드는 순간 무거운 추로 검을 짓누르듯 매우 무거워졌다.
검을 뽑아 든 것으로 내 행동은 끝났다. 놈이 또다시 돌진하며 검을 휘둘렀다. 피하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놈의 검에 정면으로 맞섰다.
놈은 검을 높게 들어 올려 하단으로 내리 찍었다. 놈의 패턴을 하나 찾았다.
- 카앙!
검과 검이 만났다. 불꽃이 튀며 압도적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릎을 꿇어야 했다.
HP100 → 98
분명 방어했다. 그런데 시야 위에 보이는 HP가 깎였다. 방어한다고 완벽히 막아지는 게 아닌 모양이다.
-털썩
위에서 무언가가 계속 짓누르고 있었다.
“크윽!”
위기였다. 적의 강함도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들이민 내 잘못이다. 침착하고 시간을 들여 공략했다면 가능했을지도 몰랐다.
이놈의 인파이터 기질이 내 발목을 잡는구나.
‘제기랄 그냥 피할걸!’
나는 직접 몬스터를 눈으로 마주치고 맞부딪히며 느꼈다. 카페에서 봤던 머쉬룸독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깔끔하고 완벽하게 플레이했는지.
눈으로 보고 쉽다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내가 직접 겪어보니 전혀 쉬운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크으윽···!”
낡은 철검이 위태롭게 떨렸다. 반면 해골 놈의 얼굴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텅 빈 머리로 같은 동작만 반복할 뿐이었다. 몇 번이고 검으로 내리쳤다. 빠져나갈 틈이 없었기에 무력하게 막고만 있었다.
- 카앙! 카앙! 카앙!
HP98 → 91
낡은 철검의 내구성은 매우 약했다. 놈의 공격 몇 번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곧.
- 카앙!! 써억!
HP91 → 89···87···83···71···53
놈의 공격과 함께 두동강 나며 부러졌다. 검의 단면에는 실금이 잔뜩 남아 있었다. 놈의 검은 칼을 부신 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파고들며 내 오른팔과 어깨를 회 썰 듯 가볍게 썰어 버렸다.
놈의 공격에 확신이 담겼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챘고 좌측으로 숙였기에 팔 한쪽이 같이 날아가는 걸로 끝날 수 있었다.
·········13
순간 당황했다. 고통은 따끔한 정도로 끝났다. 내가 데미지를 받기 전 동화율이 감소했나 보다.
자리에 엉덩이를 박고 쓰러졌다.
오른쪽 팔과 어깨가 통째로 떨어져 나갔지만, 피가 나오거나 그런 리얼한 연출은 일어나지 않았다. 썰려 나간 어깨와 오른팔은 그래픽 쪼가리가 되어 흩어졌다. 눈에만 안 보일 뿐 나는 오른손의 감각은 살아 있었다.
크게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며 왼손으로 부러진 검 예리한 부분을 앉아 있는 상태로 놈에게 겨뤘다.
제기랄 답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죽어도 그냥 곱게 죽지 않는다는 걸 보여 줄 거다. 쥐새끼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걸.
“덤벼.”
[출혈 상태에 빠집니다. 지속적으로 HP가 0.1%씩 감소합니다]
[정신력으로 패닉을 저항했습니다. 그 반동으로 1분간 정신력이 50% 증가합니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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