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에한 네르딘에 대해(8)
조회 : 1,108 추천 : 0 글자수 : 7,157 자 2022-09-26
“춥네.”
벌떡 일어선 디트에한은 장작을 들고 벽난로 쪽으로 다가갔다. 던져넣은 장작은 사그라들던 불꽃에 조금씩 삼켜져가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추워.”
이미 가게 안의 온도는 따뜻했음에도, 디트에한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옆에 있던 담요로 몸을 감쌌다. 벽난로에서 피어오르는 열기를 쬐기 위해 쪼그려 앉은 디트에한은, 더는 말이 없었다.
“디테.”
“플리, 추워.”
“디테.”
“밤이 오면,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어. 추워서. 내 자신이 미워서. 아니면 셀시가 와줄까봐.”
“오늘만은 편하게 잠들어. 내가 지키고 있을 거니까.”
셰레샤이데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믿음을 놓지 않고 있는 디트에한이 안쓰러워, 플라니아는 디트에한을 소파에 옮기고 그 옆에서 멸망의 노래를 껴안고 있었다. 이대로 아침의 해가 새벽을 기다릴 때까지 눈을 뜨고 있을 셈이었다.
디트에한은 몸을 옹송그리면서 잠에 들었다. 오랜 만에 잔 것인지 불러도 일어나지 않고 푹 잠들었다. 플라니아는 디트에한의 그 초라한 모습에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렸다. 아침이 오기를 두려워하던 셰레샤이데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셀시라고 했나?”
반을 처음 옮겨왔을 때였다. 신이 나서 앞서 가는 셰레샤이데의 등에, 플라니아는 무심코 물었다.
“넌 여자애면서 왜 그렇게 험하게 지내는거야?”
“저 여자 아닌데요. 남자에요. 저. 벗어서 보여드릴 수도 없고, 어쩌죠.”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셰레샤이데는 말을 피했다. 플라니아는 단박에 직감했다. 셰레샤이데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정말 넌 남자야?”
“그럼요.”
“그렇구나. 미안.”
더 의심해봤자 반감만 살 것이기에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사과했다. 플라니아는 셰레샤이데가 안심하는 모습을 보고 더 의심했다. 셰레샤이데는 남자가 맞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심은 확신으로 이어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셰레샤이데의 바지에 피가 묻어있었다.
“뭐야, 치질 걸렸냐?”
“아, 어. 매운 걸 좀 많이 먹었더니.”
“피를 먹는 뱀은 엉덩이는 회복 못 시키냐?”
“그런가봐. 나 좀 쉬어야 할듯.”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것치고는 셰레샤이데는 안절부절한 것처럼 보였다. 짜증도 늘고, 예민한 상태였다. 평소처럼 생글생글한 얼굴이었지만 내뱉는 말마다 가시가 있었다. 평소처럼 힘든 검술 수업을 마치고, 플라니아는 빨리 돌아가려는 셰레샤이데를 불러세웠다.
“셀시. 나 좀 봐. 할 이야기가 있어.”
“중요한 이야기라면 들어가서 쉬고 싶은데요......”
“중요한 이야기니까, 꼭 단 둘이 봤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하자, 셰레샤이데는 순순히 따라왔다. 손가락을 꼼질거리면서 플라니아의 말을 기다리는 셰레샤이데에게, 플라니아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정말 여자 아니야?”
“아니라니.....”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나도 널 도울 수 없어.”
“.........”
“네가 나를 도와준 것처럼, 나도 널 돕고 싶어.”
셰레샤이데는 부시부시하게 내려온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면서 깊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피를 먹는 뱀은, 용살자 집안에 내려오는 대검이라고 들었어. 용을 벨 때까지는 죽지 못하게 살리는 검이라고도 들었어.”
흉내지빠귀의 부리는 입이 아니다. 플라니아는 유리성의 공주였던 그 때처럼 진실을 눈 앞에 두고 모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셰레샤이데의 불안한 모습이 그런 생각을 더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플라니아는 의심을 놓지 않았다. 불안해하는 셰레샤이데를 모른 척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안될 것 같았다.
“치질 정도의 손상이라면 피를 먹는 뱀이 회복시켰겠지. 목의 동맥이 잘렸어도 살려냈다고 들었어. 작은 상처라서 남겼다기엔 네 몸엔 잔 상처조차 남지 않잖아. 그러면 한 가지 밖에 경우가 없어.”
셰레샤이데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미소지었다.
“뭔데요?”
“그 상처란 건, 회복시킬 필요가 없는 상처였던거지. 월경은, 많은 여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증명이기도 해. 용 사냥꾼이 대를 이어야 사용될 수 있는 피를 먹는 뱀이라면, 월경을 회복시킬 이유는 없었을거야.”
“하하.... 들켰네요. 이제 어떻게 할건가요?”
플라니아는 그저 웃는 셰레샤이데의 초탈한 반응에 화가 났다.
“어떻게 할거냐니?”
“속인 게 들통났잖아요.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제가 뭘하면 될까요? 뭘 해야.... 다른 애들한테 안 말할 건가요?”
호박색 눈동자가 우울하게 가라앉았다. 당장 신발이라도 핥으라고 하면 얌전히 핥을 것만 같이 순종적이었다. 물론, 플라니아는 그런 것엔 전혀 관심이 없었으므로, 셰레샤이데의 등짝을 치며 말했다.
“너 월경대 하는 방법은 알아?”
“아뇨?”
“그러면 일단 내꺼 중에 새거 줄게.”
플라니아는 미리 챙겨온 파우치에서 새 월경대를 꺼냈다. 얼결에 받아든 셰레샤이데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월경대와 플라니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네?”
“월경대 몰라, 월경대? 계속 바지를 적시고 다니면 불편할거야. 피는 끈적하고 불편하잖아. 그러니까 차고 다녀야해. 수치스러워도 나랑 같이 화장실 들어가자. 처음엔 혼자 하긴 어려울거야.”
플라니아는 얼떨떨해하는 셰레샤이데에게 여러가지를 알려주었다. 월경대를 착용하는 방법, 세탁하는 방법, 관리하는 방법, 유모에게 배운 여러가지 것들을.
“왜 저한테 이렇게 알려주시는거죠?”
아직도 어색해하며 경계하는 셰레샤이데는, 플라니아에게 물었다. 플라니아는 단지 자신이 초경을 맞았을 때를 떠올렸다. 팬티에는 갈색이 묻어나왔고, 부끄럽고 창피해서 입었던 속옷을 숨겨버렸다. 하지만 월경은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플라니아가 숨긴 속옷을 발견한 유모는 조그만 케익을 사와서 플라니아의 앞에 놓아주었다. 유모는 따뜻한 말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플라니아가 그 때 느낀 유모의 마음은 플라니아가 월경을 부끄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었다.
플라니아는 셰레샤이데 역시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했다. 플라니아에겐 유모가 있었지만, 지금 셰레샤이데에겐 그걸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선 것 뿐이었다. 셰레샤이데에겐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플라니아는 머리 속으로 말을 고르면서 뭐라 대답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넌 왜 날 구해줬는데?”
질문을 질문으로 돌려주었다. 셰레샤이데는 쭈뼛거리다가, 다시 평상시처럼 헤실헤실 웃었다.셰레샤이데가 플라니아를 구한 것도 분명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저 도움이 필요해보였으니까.
“고마워요.”
“나도, 고마웠어. 그런데 혹시 네 성별이 바뀐 거, 일시적인거야? 돌아갈 수는 있지?”
셰레샤이데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앞으로도 여자로 살아야하는거야?”
“아마도요.”
“친구들한테는 아직 말 못했지.”
“....네.”
“말할 생각은 있어?”
“글쎄요......”
셰레샤이데는 말을 흘리면서 뭉갰다. 플라니아는 셰레샤이데의 생각을 존중했다. 그래서 디트에한이 점점 셰레샤이데를 다른 눈으로 보는 것을 알아차렸으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영원히 감출 수는 없었다.
셰레샤이데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여자로 사는 법에 대해서 천천히 알려주고 있을 때였다. 디트에한은 무슨 생각인지 셰레샤이데를 피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공주님. 디테가. 디테가 절 피해요. 제가 뭘 잘못했을까요?”
“아니, 셀시. 네 잘못은 아니고. 걔가 지금 지독한 짝사랑을 하고 있어서 그래.”
“아, 공주님이 좀 예쁘긴 하죠.”
“아니, 나 말고. 다른 애야.”
“누구요?”
“모르는 게 나을 걸.”
그리고 일이 커졌다. 디트에한은 무슨 일인지 셰레샤이데를 무시하고 방에 틀어박혔다. 플라니아는 누샨에게 슬쩍 이야기 좀 해보라고 했는데, 누샨은 그대로 술자리만 벌이다가 돌아왔다. 자신을 빼놓고 술자리를 연 것을 안 셰레샤이데는 크게 삐져버린채로 던전에 들어갔다.
“셀시한테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하는 디트에한을 보며, 플라니아는 혀를 찼다. 사과하라고 말은 해두었다. 다행히 디트에한은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하게, 셰레샤이데의 성별이 드러나게 되어버렸다.
“셀시가..... 여자였다고?”
디트에한이 부상을 당한 셰레샤이데의 몸에서 파편을 빼내려다가, 셰레샤이데의 봉긋한 가슴이 드러나버렸다. 플라니아가 몸을 던져 가리긴했지만 이미 다 보여지고 난 뒤였다. 어떻게든 학교 의무실에 데려갔지만 그 이후가 더 문제였다.
“다들 반응이 어땠어요?”
셰레샤이데가 침울하게 물었다. 궁금하지만 대답을 듣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플라니아는 차분히 말해줬다.
“다들 놀랐지. 하지만 네가 다친 것에 더 놀랐어. 왜 그렇게까지 몸을 던진거야?”
“우리의 검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니까요.”
“또 그 소리.”
“이제 다들 절 싫어하겠죠. 거짓말까지 했으니까 더 싫어할거에요.”
셰레샤이데의 눈망울에 눈물이 빠르게 차올랐다. 그와 대조적으로 셰레샤이데는 웃고 있었다. 어딘가 고장난 사람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
“아침이 오는 게 무서워요.... 다들 분명 절 싫어할거에요.”
몸은 나은지 오래였지만, 셰레샤이데는 의무실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아했다. 홀로 셰레샤이데를 방문한 플라니아는 불안해하는 셰레샤이데의 손을 잡아주었다.
“내가 있을게.”
그 말에, 마주 잡은 셰레샤이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플라니아는 셰레샤이데에게 기운을 주려고, 예전에 읽었던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이불을 코 바로 아래까지 끌어올린 셰레샤이데는 이야기를 듣다가 어느 새 잠이 들어버렸다. 플라니아도 그 옆에서 간병인 침대를 끌어다 곤히 잠에 들었다.
“교수님, 셀시는 어딨어요?”
시끌시끌한 소리에, 플라니아는 눈을 떴다. 디트에한의 목소리 뒤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셰레샤이데는 이미 깨어있는 상태였다. 셰레샤이데는 긴장한 듯, 숨조차 멈추고 침상에 앉아 굳어있었다.
“좋은 아침, 셀시. 들어가도 돼? 다른 애들도 왔어.”
디트에한이 셰레샤이데가 있는 병실 문을 살짝 열고 눈만 내밀어 물었다. 셰레샤이데는 굳어진 그대로 딱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푹 쉬었어?”
“으응.”
“그래, 들어갈게.”
심호흡을 하던 디트에한은 천천히 병실로 발걸음을 내밀었다. 디트에한의 모습을 확인한 플라니아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슬쩍 셰레샤이데 쪽을 보니, 셰레샤이데는 이미 웃다가 눈물이 고였다.
“왜, 내가 좀 예쁘니?”
디트에한은 리본이 주렁주렁 달린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얼굴에는 뇌쇄적인 화장을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안녕, 셀시. 난 귀여운 타입이야.”
레믈롯은 귀여운 원피스를 입었다. 제거하지 않은 다리털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네가 좋아하는 카므슈슈 사왔어. 그런데 절반은 내가 먹었어.”
에인헤랴르는 짧은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서 허벅지가 트인, 길게 내려오는 원피스를 입었다. 원피스는 근육에 의해 미어져,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뭐.”
쇼우는 붉은 머리카락을 곱게 땋고, 새치름한 아가씨처럼 입었다. 머리 끝에 꽂은 꽃핀이 썩 잘 어울렸다.
“이 몸 등장!”
누샨은..... 누샨은 누샨이었다. 여자로 보이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가슴 근육을 반쯤 드러낸채로, 담비 가죽 숄을 두르고 다리를 쩍쩍 벌려가며 들어왔다. 그것도 미니스커트를 입은채로.
처음에는 그저 웃었지만 마지막에서 표정이 경악으로 굳어진 셰레샤이데는 짧게 감상을 남겼다.
“이게 뭔 지랄들이냐?”
뇌쇄적인 차림의 디트에한이 입을 가리면서 웃었다.
“호호호, 나는 디트에한이야. 애칭은 디테고, 내 친구 셀시를 만나러 왔어.”
“나는 레믈롯~”
“에인헤랴르.”
“난 쇼우.”
“누샨이다.”
하나씩 천천히 들어온 친구들은 쪼르르 셰레샤이데의 침대 옆에 앉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셰레샤이데에게 말을 걸었다.
“셀시, 너 그러니까 작작 좀 쳐 박으라니까 괜히 무리해선.”
“피를 먹는 뱀만 믿고 나대니까 그런거지. 쯧쯧.”
아무렇게 농담을 던지는 친구들을 보면서 셰레샤이데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참다참다 못한 셰레샤이데는, 화를 내듯 물었다.
“야, 내가 여자인 거 숨긴 걸로 아무렇지도 않은거야? 다들 왜 이렇게 구는거야?”
“아, 그거.”
디트에한이 씨익 웃었다.
“네 눈엔 내가 뭘로 보이냐? 디트에한 아니야?”
“그럼 네가 뭐겠냐?”
“우리 눈에도 그렇다고. 여장해도 나는 디테고, 쟤는 레믈롯, 아인, 쇼우, 누샨일텐데. 너라고 다르겠냐?”
“나는 여장이 아니라.”
“그래도 여전히 셀시 아니야?”
“맞지.”
“그럼 됐지 뭐.”
“그런가?”
“그런거야. 혹시 여자가 된 게 창피하고 그러면 언제든 말해. 우리는 친구니까 얼마든지 같이 여자 해줄게!”
“맞아, 우리 여자로 다닐 때를 대비해서 건배사도 준비해왔어.”
레믈롯이 차분하게 가방에서 길다란 병을 꺼내들었다. 은잔도 나란히 세팅했다. 레믈롯은 노련한 손놀림으로 모든 잔에 술을 채우고 돌렸다. 플라니아도 얼결에 받아들었다.
“하나, 둘, 셋 하면 여자하자! 하면 돼.”
“하나, 둘, 셋.”
“여자하자!”
은 잔이 청량하게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에인헤랴르가 챙겨온 육포를 뜯으며 모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여자하자!”
“야, 너네만 술 마시냐?”
밖에서 여장한 플라니아의 반을 보며 웃어대던 놈들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보더니 슬쩍 다가왔다. 술은 엄연히 기사학교의 반입 금지 물품. 레믈롯 정도가 아니라면 들일 수도 없었기에, 그들은 하이에나처럼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 너네도 마실래? 그런데 건배사는 여자하자임. 안 그러면 못 마셔.”
레믈롯이 여분의 잔을 꺼내어 나눠주었다.
“여자하자!”
의무실에는 알콜 냄새와 함께 여자하자!라는 의문의 고함이 가득 퍼졌고, 뒤늦게 발견한 의무교수 에반은 술 쳐먹고 널부러진 15명의 금수를 의무실에서 쫓아내었다. 취할 정도로 마시지도 않은 플라니아는, 그 날 널부러진 15명의 의식불명 금수들을 대신해 열심히 사과해야만 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플라니아는 천천히 떠오르는 해를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 때는 사과하느라 고생이었는데, 돌아보면 그 사과조차도 즐거웠다.
벌떡 일어선 디트에한은 장작을 들고 벽난로 쪽으로 다가갔다. 던져넣은 장작은 사그라들던 불꽃에 조금씩 삼켜져가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추워.”
이미 가게 안의 온도는 따뜻했음에도, 디트에한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옆에 있던 담요로 몸을 감쌌다. 벽난로에서 피어오르는 열기를 쬐기 위해 쪼그려 앉은 디트에한은, 더는 말이 없었다.
“디테.”
“플리, 추워.”
“디테.”
“밤이 오면,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어. 추워서. 내 자신이 미워서. 아니면 셀시가 와줄까봐.”
“오늘만은 편하게 잠들어. 내가 지키고 있을 거니까.”
셰레샤이데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믿음을 놓지 않고 있는 디트에한이 안쓰러워, 플라니아는 디트에한을 소파에 옮기고 그 옆에서 멸망의 노래를 껴안고 있었다. 이대로 아침의 해가 새벽을 기다릴 때까지 눈을 뜨고 있을 셈이었다.
디트에한은 몸을 옹송그리면서 잠에 들었다. 오랜 만에 잔 것인지 불러도 일어나지 않고 푹 잠들었다. 플라니아는 디트에한의 그 초라한 모습에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렸다. 아침이 오기를 두려워하던 셰레샤이데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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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시라고 했나?”
반을 처음 옮겨왔을 때였다. 신이 나서 앞서 가는 셰레샤이데의 등에, 플라니아는 무심코 물었다.
“넌 여자애면서 왜 그렇게 험하게 지내는거야?”
“저 여자 아닌데요. 남자에요. 저. 벗어서 보여드릴 수도 없고, 어쩌죠.”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셰레샤이데는 말을 피했다. 플라니아는 단박에 직감했다. 셰레샤이데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정말 넌 남자야?”
“그럼요.”
“그렇구나. 미안.”
더 의심해봤자 반감만 살 것이기에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사과했다. 플라니아는 셰레샤이데가 안심하는 모습을 보고 더 의심했다. 셰레샤이데는 남자가 맞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심은 확신으로 이어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셰레샤이데의 바지에 피가 묻어있었다.
“뭐야, 치질 걸렸냐?”
“아, 어. 매운 걸 좀 많이 먹었더니.”
“피를 먹는 뱀은 엉덩이는 회복 못 시키냐?”
“그런가봐. 나 좀 쉬어야 할듯.”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것치고는 셰레샤이데는 안절부절한 것처럼 보였다. 짜증도 늘고, 예민한 상태였다. 평소처럼 생글생글한 얼굴이었지만 내뱉는 말마다 가시가 있었다. 평소처럼 힘든 검술 수업을 마치고, 플라니아는 빨리 돌아가려는 셰레샤이데를 불러세웠다.
“셀시. 나 좀 봐. 할 이야기가 있어.”
“중요한 이야기라면 들어가서 쉬고 싶은데요......”
“중요한 이야기니까, 꼭 단 둘이 봤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하자, 셰레샤이데는 순순히 따라왔다. 손가락을 꼼질거리면서 플라니아의 말을 기다리는 셰레샤이데에게, 플라니아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정말 여자 아니야?”
“아니라니.....”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나도 널 도울 수 없어.”
“.........”
“네가 나를 도와준 것처럼, 나도 널 돕고 싶어.”
셰레샤이데는 부시부시하게 내려온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면서 깊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피를 먹는 뱀은, 용살자 집안에 내려오는 대검이라고 들었어. 용을 벨 때까지는 죽지 못하게 살리는 검이라고도 들었어.”
흉내지빠귀의 부리는 입이 아니다. 플라니아는 유리성의 공주였던 그 때처럼 진실을 눈 앞에 두고 모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셰레샤이데의 불안한 모습이 그런 생각을 더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플라니아는 의심을 놓지 않았다. 불안해하는 셰레샤이데를 모른 척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안될 것 같았다.
“치질 정도의 손상이라면 피를 먹는 뱀이 회복시켰겠지. 목의 동맥이 잘렸어도 살려냈다고 들었어. 작은 상처라서 남겼다기엔 네 몸엔 잔 상처조차 남지 않잖아. 그러면 한 가지 밖에 경우가 없어.”
셰레샤이데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미소지었다.
“뭔데요?”
“그 상처란 건, 회복시킬 필요가 없는 상처였던거지. 월경은, 많은 여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증명이기도 해. 용 사냥꾼이 대를 이어야 사용될 수 있는 피를 먹는 뱀이라면, 월경을 회복시킬 이유는 없었을거야.”
“하하.... 들켰네요. 이제 어떻게 할건가요?”
플라니아는 그저 웃는 셰레샤이데의 초탈한 반응에 화가 났다.
“어떻게 할거냐니?”
“속인 게 들통났잖아요.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제가 뭘하면 될까요? 뭘 해야.... 다른 애들한테 안 말할 건가요?”
호박색 눈동자가 우울하게 가라앉았다. 당장 신발이라도 핥으라고 하면 얌전히 핥을 것만 같이 순종적이었다. 물론, 플라니아는 그런 것엔 전혀 관심이 없었으므로, 셰레샤이데의 등짝을 치며 말했다.
“너 월경대 하는 방법은 알아?”
“아뇨?”
“그러면 일단 내꺼 중에 새거 줄게.”
플라니아는 미리 챙겨온 파우치에서 새 월경대를 꺼냈다. 얼결에 받아든 셰레샤이데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월경대와 플라니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네?”
“월경대 몰라, 월경대? 계속 바지를 적시고 다니면 불편할거야. 피는 끈적하고 불편하잖아. 그러니까 차고 다녀야해. 수치스러워도 나랑 같이 화장실 들어가자. 처음엔 혼자 하긴 어려울거야.”
플라니아는 얼떨떨해하는 셰레샤이데에게 여러가지를 알려주었다. 월경대를 착용하는 방법, 세탁하는 방법, 관리하는 방법, 유모에게 배운 여러가지 것들을.
“왜 저한테 이렇게 알려주시는거죠?”
아직도 어색해하며 경계하는 셰레샤이데는, 플라니아에게 물었다. 플라니아는 단지 자신이 초경을 맞았을 때를 떠올렸다. 팬티에는 갈색이 묻어나왔고, 부끄럽고 창피해서 입었던 속옷을 숨겨버렸다. 하지만 월경은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플라니아가 숨긴 속옷을 발견한 유모는 조그만 케익을 사와서 플라니아의 앞에 놓아주었다. 유모는 따뜻한 말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플라니아가 그 때 느낀 유모의 마음은 플라니아가 월경을 부끄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었다.
플라니아는 셰레샤이데 역시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했다. 플라니아에겐 유모가 있었지만, 지금 셰레샤이데에겐 그걸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선 것 뿐이었다. 셰레샤이데에겐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플라니아는 머리 속으로 말을 고르면서 뭐라 대답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넌 왜 날 구해줬는데?”
질문을 질문으로 돌려주었다. 셰레샤이데는 쭈뼛거리다가, 다시 평상시처럼 헤실헤실 웃었다.셰레샤이데가 플라니아를 구한 것도 분명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저 도움이 필요해보였으니까.
“고마워요.”
“나도, 고마웠어. 그런데 혹시 네 성별이 바뀐 거, 일시적인거야? 돌아갈 수는 있지?”
셰레샤이데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앞으로도 여자로 살아야하는거야?”
“아마도요.”
“친구들한테는 아직 말 못했지.”
“....네.”
“말할 생각은 있어?”
“글쎄요......”
셰레샤이데는 말을 흘리면서 뭉갰다. 플라니아는 셰레샤이데의 생각을 존중했다. 그래서 디트에한이 점점 셰레샤이데를 다른 눈으로 보는 것을 알아차렸으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영원히 감출 수는 없었다.
셰레샤이데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여자로 사는 법에 대해서 천천히 알려주고 있을 때였다. 디트에한은 무슨 생각인지 셰레샤이데를 피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공주님. 디테가. 디테가 절 피해요. 제가 뭘 잘못했을까요?”
“아니, 셀시. 네 잘못은 아니고. 걔가 지금 지독한 짝사랑을 하고 있어서 그래.”
“아, 공주님이 좀 예쁘긴 하죠.”
“아니, 나 말고. 다른 애야.”
“누구요?”
“모르는 게 나을 걸.”
그리고 일이 커졌다. 디트에한은 무슨 일인지 셰레샤이데를 무시하고 방에 틀어박혔다. 플라니아는 누샨에게 슬쩍 이야기 좀 해보라고 했는데, 누샨은 그대로 술자리만 벌이다가 돌아왔다. 자신을 빼놓고 술자리를 연 것을 안 셰레샤이데는 크게 삐져버린채로 던전에 들어갔다.
“셀시한테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하는 디트에한을 보며, 플라니아는 혀를 찼다. 사과하라고 말은 해두었다. 다행히 디트에한은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하게, 셰레샤이데의 성별이 드러나게 되어버렸다.
“셀시가..... 여자였다고?”
디트에한이 부상을 당한 셰레샤이데의 몸에서 파편을 빼내려다가, 셰레샤이데의 봉긋한 가슴이 드러나버렸다. 플라니아가 몸을 던져 가리긴했지만 이미 다 보여지고 난 뒤였다. 어떻게든 학교 의무실에 데려갔지만 그 이후가 더 문제였다.
“다들 반응이 어땠어요?”
셰레샤이데가 침울하게 물었다. 궁금하지만 대답을 듣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플라니아는 차분히 말해줬다.
“다들 놀랐지. 하지만 네가 다친 것에 더 놀랐어. 왜 그렇게까지 몸을 던진거야?”
“우리의 검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니까요.”
“또 그 소리.”
“이제 다들 절 싫어하겠죠. 거짓말까지 했으니까 더 싫어할거에요.”
셰레샤이데의 눈망울에 눈물이 빠르게 차올랐다. 그와 대조적으로 셰레샤이데는 웃고 있었다. 어딘가 고장난 사람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
“아침이 오는 게 무서워요.... 다들 분명 절 싫어할거에요.”
몸은 나은지 오래였지만, 셰레샤이데는 의무실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아했다. 홀로 셰레샤이데를 방문한 플라니아는 불안해하는 셰레샤이데의 손을 잡아주었다.
“내가 있을게.”
그 말에, 마주 잡은 셰레샤이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플라니아는 셰레샤이데에게 기운을 주려고, 예전에 읽었던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이불을 코 바로 아래까지 끌어올린 셰레샤이데는 이야기를 듣다가 어느 새 잠이 들어버렸다. 플라니아도 그 옆에서 간병인 침대를 끌어다 곤히 잠에 들었다.
“교수님, 셀시는 어딨어요?”
시끌시끌한 소리에, 플라니아는 눈을 떴다. 디트에한의 목소리 뒤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셰레샤이데는 이미 깨어있는 상태였다. 셰레샤이데는 긴장한 듯, 숨조차 멈추고 침상에 앉아 굳어있었다.
“좋은 아침, 셀시. 들어가도 돼? 다른 애들도 왔어.”
디트에한이 셰레샤이데가 있는 병실 문을 살짝 열고 눈만 내밀어 물었다. 셰레샤이데는 굳어진 그대로 딱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푹 쉬었어?”
“으응.”
“그래, 들어갈게.”
심호흡을 하던 디트에한은 천천히 병실로 발걸음을 내밀었다. 디트에한의 모습을 확인한 플라니아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슬쩍 셰레샤이데 쪽을 보니, 셰레샤이데는 이미 웃다가 눈물이 고였다.
“왜, 내가 좀 예쁘니?”
디트에한은 리본이 주렁주렁 달린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얼굴에는 뇌쇄적인 화장을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안녕, 셀시. 난 귀여운 타입이야.”
레믈롯은 귀여운 원피스를 입었다. 제거하지 않은 다리털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네가 좋아하는 카므슈슈 사왔어. 그런데 절반은 내가 먹었어.”
에인헤랴르는 짧은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서 허벅지가 트인, 길게 내려오는 원피스를 입었다. 원피스는 근육에 의해 미어져,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뭐.”
쇼우는 붉은 머리카락을 곱게 땋고, 새치름한 아가씨처럼 입었다. 머리 끝에 꽂은 꽃핀이 썩 잘 어울렸다.
“이 몸 등장!”
누샨은..... 누샨은 누샨이었다. 여자로 보이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가슴 근육을 반쯤 드러낸채로, 담비 가죽 숄을 두르고 다리를 쩍쩍 벌려가며 들어왔다. 그것도 미니스커트를 입은채로.
처음에는 그저 웃었지만 마지막에서 표정이 경악으로 굳어진 셰레샤이데는 짧게 감상을 남겼다.
“이게 뭔 지랄들이냐?”
뇌쇄적인 차림의 디트에한이 입을 가리면서 웃었다.
“호호호, 나는 디트에한이야. 애칭은 디테고, 내 친구 셀시를 만나러 왔어.”
“나는 레믈롯~”
“에인헤랴르.”
“난 쇼우.”
“누샨이다.”
하나씩 천천히 들어온 친구들은 쪼르르 셰레샤이데의 침대 옆에 앉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셰레샤이데에게 말을 걸었다.
“셀시, 너 그러니까 작작 좀 쳐 박으라니까 괜히 무리해선.”
“피를 먹는 뱀만 믿고 나대니까 그런거지. 쯧쯧.”
아무렇게 농담을 던지는 친구들을 보면서 셰레샤이데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참다참다 못한 셰레샤이데는, 화를 내듯 물었다.
“야, 내가 여자인 거 숨긴 걸로 아무렇지도 않은거야? 다들 왜 이렇게 구는거야?”
“아, 그거.”
디트에한이 씨익 웃었다.
“네 눈엔 내가 뭘로 보이냐? 디트에한 아니야?”
“그럼 네가 뭐겠냐?”
“우리 눈에도 그렇다고. 여장해도 나는 디테고, 쟤는 레믈롯, 아인, 쇼우, 누샨일텐데. 너라고 다르겠냐?”
“나는 여장이 아니라.”
“그래도 여전히 셀시 아니야?”
“맞지.”
“그럼 됐지 뭐.”
“그런가?”
“그런거야. 혹시 여자가 된 게 창피하고 그러면 언제든 말해. 우리는 친구니까 얼마든지 같이 여자 해줄게!”
“맞아, 우리 여자로 다닐 때를 대비해서 건배사도 준비해왔어.”
레믈롯이 차분하게 가방에서 길다란 병을 꺼내들었다. 은잔도 나란히 세팅했다. 레믈롯은 노련한 손놀림으로 모든 잔에 술을 채우고 돌렸다. 플라니아도 얼결에 받아들었다.
“하나, 둘, 셋 하면 여자하자! 하면 돼.”
“하나, 둘, 셋.”
“여자하자!”
은 잔이 청량하게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에인헤랴르가 챙겨온 육포를 뜯으며 모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여자하자!”
“야, 너네만 술 마시냐?”
밖에서 여장한 플라니아의 반을 보며 웃어대던 놈들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보더니 슬쩍 다가왔다. 술은 엄연히 기사학교의 반입 금지 물품. 레믈롯 정도가 아니라면 들일 수도 없었기에, 그들은 하이에나처럼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 너네도 마실래? 그런데 건배사는 여자하자임. 안 그러면 못 마셔.”
레믈롯이 여분의 잔을 꺼내어 나눠주었다.
“여자하자!”
의무실에는 알콜 냄새와 함께 여자하자!라는 의문의 고함이 가득 퍼졌고, 뒤늦게 발견한 의무교수 에반은 술 쳐먹고 널부러진 15명의 금수를 의무실에서 쫓아내었다. 취할 정도로 마시지도 않은 플라니아는, 그 날 널부러진 15명의 의식불명 금수들을 대신해 열심히 사과해야만 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플라니아는 천천히 떠오르는 해를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 때는 사과하느라 고생이었는데, 돌아보면 그 사과조차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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