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조회 : 1,771 추천 : 3 글자수 : 6,584 자 2022-07-25
하셀 제국 제1황자 알칸.
그를 따르는 수만 명의 병사가 승리를 확신한 듯 함성을 질렀다.
“남아 있는 적군을 소탕하라!”
“으아아아아와와!!!”
알칸의 말에 병사들은 적군을 향해 진군했고, 전쟁터엔 다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승리는 하셀 제국의 것!”
“승리의 깃발을!”
“알칸 전하 만세!”
곧 승리의 깃발을 세울 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전하 몸을 피하십시오!”
알칸의 호위 기사 로렌은 다급하게 그를 막아섰다. 알칸이 서둘러 몸을 돌렸지만, 2황자 키밀로가 테우스라만테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알칸은 자신에게 다가온 검을 피하지 않았지만, 키밀로의 얼굴을 확인하자 혼란스러웠다.
그 모습에 로렌은 알칸을 향해 달려들어 키밀로의 테우스라만테 검을 온몸으로 막아섰다.
“ 윽!”
“짜증나게 기사 주제에. 비켜라.”
“안 됩니다. 절대 안 됩.”
“그럼, 죽어!”
로렌은 온몸으로 2황자 키밀로를 막아냈다. 하지만 키밀로의 테우스라만테의 검이 너무나 강했다.
그는 목숨을 잃으면서도 끝까지 알칸을 걱정했다.
“지켜… 드리지 못해… 송…구 하…”
“로렌!!!”
로렌은 마지막까지 버티다 쓰려졌다. 알칸을 지키던 로렌이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알칸의 두 눈에 노여움이 가득찼다.
“2황자 키밀로!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2황자 키밀로는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순식간에 알칸의 목에 테우스라만테 검을 겨누었다.
“…으.”
2황자 키밀로의 검에 오러가 일렁거렸다.
“이번 전쟁에서 죽은 이들은 하셀 제국에서 특별히 그 공을 세워줄 겁니다. 그러니 걱정마십시오. 제가 형님의 공을 잘 세워드리지요.”
2황자 키밀로의 테우스라만테 검이 알칸의 목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알칸은 두 손으로 검날을 막았다.
“…으. 아바마마가 두렵지도 않느냐.”
알칸의 두 손에 피가 흐르기 시작했지만, 2황자 키밀로는 표정 하나 일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씨익웃으며 비아냥거렸다.
“이렇게 눈치가 없으니… 아바마마가 형님을 지켜 줄 거 같습니까? 항상 약해빠진 너는 진작에 죽었어야 했어!!”
알칸의 목에서 시뻘건 피가 흘러내리며 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으, 윽.”
“멍청하니까, 우리가 파 놓은 함정에 제 발로 온 거지. 진작에 죽었어야 했어.”
“뭐, 뭐? 우리?”
“그래 우리. 나보다 더 네가 죽기만을 바라는 어마마마. 내 동생들까지 크크크.”
알칸은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을 견제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 어떻게… 나를.”
알칸의 눈에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알칸은 자신에게 걸려있던 저주를 풀었고, 마나 포스가 강하게 꿈틀거렸었다.
이제 마검사로서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조금 더 일찍 저주가 풀렸으면 좋았겠지만, 늦게라도 알게 돼서 좋았다. 다행이었다.
그래서 알칸은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억울했다.
살고 싶다.
하지만 지금 2황자 키밀로의 테우스라만테 검날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무력을 사용할 수 없다면, 마법으로 그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알칸은 테우스라만테 검을 막아내며 영창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키밀로가 그것을 눈치채고 손아귀에 힘을 실었다.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시끄러워 죽겠네.”
2황자 키밀로는 알칸의 영창 소리가 싫었다. 알칸 때문에 황태자가 될 수 없고, 황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알칸만 없어지면, 모든 것이 그의 것이었다. 키밀로는 모든 오러를 쏟아내 알칸의 숨을 단번에 끊어버렸다.
콰지지직
얼칸의 목이 떨어졌다.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졌다.
장대비가 무섭게 내리기 시작했다.
*****
쿠쿵
콰직
장대비가 멈추지 않았다.
알칸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허, 헉!!!”
끔찍한 악몽을 꾼 알칸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꾸꿈… 꿈이지?”
알칸은 온몸을 더듬었다. 분명 그의 동생인 2황자 키밀로가 자신을 죽였다. 하지만 숨이 붙은 걸 보니 악몽을 제대로 꾼 거 같다.
“하… 꿈이었구나.”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살아 있음을 확인하듯 심장 주변에서 마나 포스의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너무 고요했다.
“…뭐가 잘못된 건가?”
곧, 알칸 가슴에 와닿은 자신의 작은 손을 보게 됐다.
“…작다?”
손 아래에 보이는 발을 가만히 응시했다. 알칸의 모든 게 작아졌다. 마치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인 거 같다.
“어, 아악!”
믿지 못할 괴이한 일에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알칸은 벌떡 일어나 거울을 향해 다가섰다. 분명 어린 시절 그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똑똑똑 똑똑
당황한 순간도 잠시, 알칸의 호위무사인 로렌이 처소 문을 두드렸다.
“전하! 무슨 일이십니까? 로렌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로렌이 알칸을 향해 달려갔다. 하얗게 질려버린 알칸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알칸은 로렌의 모습에 또 다시 경악했다.
“너… 살아 있었느냐?”
달라진 알칸의 말투에 로렌의 두 눈이 빠르게 흔들렸다. 허약한 알칸이 악몽을 꾼 거로 생각했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로렌은 무릎을 꿇고 알칸의 눈을 응시했다. 그가 진정되길 바라는 눈빛이다.
“제가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칸의 어머니, 비아 황비는 알칸을 낳으면서 세상을 떠났다. 그 빈자리를 로렌이 지켜줬다. 그래서인지 알칸의 모든 일에 열성을 다했다.
단, 일부러 조금 가벼워 보이게 행동했다. 다소 마른 체형에 길쭉한 키. 호감형의 얼굴이지만, 그 가벼움에 사람들이 업신여기긴 했다. 그래서인지 로렌을 견제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알칸을 오랜 기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알칸은 로렌이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하는 걸 알고 있었다.
“너는 여전하구나.”
로렌은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알칸은 코끝이 찡했다. 전쟁터에서 자신을 지키다 죽었던 로렌의 모습이 떠올랐다.
‘날 위해 목숨을 버린 로렌.’
많이 허약했던 1황자였지만, 황태자로 내정되었다. 하셀 제국 법이 그랬다.
그래서 알칸의 동생인 황자들은 그를 알게 모르게 괴롭히거나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당하다 보니 그들이 파놓은 함정에 걸려 전쟁터에서 죽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돌아왔다.’
해괴한 일이지만, 어린 시절로 되돌아왔다. 눈떠보니 회귀했다.
‘다시 기회가 있어.’
알칸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다짐했다.
‘내가 다 복수하겠다. 더 강해지겠다.’
알칸이 로렌에게 물었다.
“로렌, 오늘이 무슨 날이지?”
“네?”
“그러니까,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지?”
“네에?”
황태자로 내정된 황자지만,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별다른 일정은 없었다. 하지만 로렌은 알칸의 말에 대답해주고 싶었다.
로렌은 두 눈을 좌우로 움직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전하. 에, 그러니까. 오늘은….”
“아니, 됐다.”
“?”
“내가 지금 몇 살이냐?”
“열두 살 이옵니다.”
“열두 살이라….”
알칸은 열두 살에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모습에 로렌이 안절부절하기 시작했다. 로렌은 알칸이 어린아이답지 않은 말투와 억양에 놀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왜?”
“그것이, 전하….”
검술 가문에 장남인 로렌은 평소 진지했다. 하지만 알칸을 호위하면서 진짜 모습을 숨기고 이렇게 촐싹대는 행동을 보였다. 그 모습이 정말 오랜만이다.
그 모습에 알칸이 씩 웃었다. 로렌의 이 모습이 그리웠다.
“전하. 정말 괜찮으시옵니까? 걱정되옵니다.”
“괜찮다. 걱정 말거라.”
“아니옵니다. 전하가 너무… 의젓하시옵니다.”
맞다. 알칸은 허약한 몸뿐 아니라 내향적인 성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열두살 아이가 아닌 성인 남자 같은 말투와 행동이다.
“흠. 그래?”
생각해보니 말투와 행동을 조심해야 할 거 같다. 지금 어린 시절로 회귀한 걸 로렌에게 말해봐야 도움이 될 게 없다.
“알겠다.”
그 말에 로렌이 다시 두 눈을 좁혔다. 알칸은 짧게 숨을 내쉬며, 열두 살 아이처럼 다시 말해줬다.
“응. 알았다고.”
그제야 로렌이 어깨에 힘을 빼며 미소 지었다.
“전하. 이제 괜찮으시군요.”
로렌이 마음을 내려놓기 무섭게 처소 문이 열렸다.
똑똑똑
알칸의 시종장이 들어왔다. 알칸에게 딱딱하게 인사를 한 후 입을 열었다.
“방금 폐하께서 전하를 부르셨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빛이 일하기 싫어하는 건지, 알칸을 무시하는 건지 모를 정도다.
“지금?”
“네.”
“이 새벽에?”
“네.”
“비 오는데?”
“네.”
“나만?”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왜 불러?”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시종장은 알칸이 가기 싫어서 질문을 한다고 생각했다. 루카 황제는 아주 늦은 밤이나 천둥 번개가 치는 날에 황자들을 호출했다. 알칸은 무섭다고 가지 않은 적이 있었다.
“참석이 힘들다고 전달할까요?”
“아니.”
“?”
“가야지.”
“!”
“마차는?”
“즈, 준비하겠습니다.”
시종장은 놀란 눈으로 알칸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바로 숙였다. 그리고 서둘로 처소를 나갔다.
루카 황제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기를 바랐다. 지금 가지 않는다면 그 시험에서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알칸은 엄하기만 했던 루카 황제를 더 이상 피할 이유가 없다.
“로렌. 서둘러줘.”
로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종장은 열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나중에 확 갈아치워야지.’
그리고 지금은 로렌을 시켜야 일이 빨리 진행될 테다.
로렌이 시종과 시녀를 불러 모았다. 그리고 깊게 한숨을 들이셨다. 갑자기 눈빛이 변했다. 그의 호들갑이 시작됐다.
“전하께서 빗방울 한 톨 맞지 않게 준비하거라. 손과 발을 빨리 움직이거라. 신속하고 정확하게. 빨리, 더. 더. 더.”
잔소리에 잔소리가 더해지자, 모두 일사천리 움직였다. 오지랖은 넓지만, 일 하나만큼은 똑 부러졌다.
황궁으로 가는 길이 멀긴 멀다만, 준비가 너무 철저하게 진행됐다.
알칸은 정말 빗방울 한 톨도 맞지 않고 마차에 올라탔다.
오랜만에 타 보는 알칸의 전용 마차.
불안할 때마다 손톱으로 뜯어 둔 의자 손잡이가 보였다. 손톱자국을 만져보았다. 그 시절 그대로 남아 있다.
‘뭐가 그리 무서웠을까?’
죽었다 다시 살아나니 어린 시절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약했기 때문에 무너졌고, 강한 자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렇게 지난날을 생각하자 눈동자에 핏줄이 섰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알칸처럼 빗방울 한 톨 맞지 않은 로렌이 알칸의 안색을 살폈다. 그제야 알칸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너무 티를 내선 안 되겠어.’
알칸은 회귀를 한 사실을 숨겨야 했다. 그래야 호구처럼 당한 일 모두 갚을 수 있다.
잠시 생각에 빠졌는데, 황궁에 도착했다. 마차 창밖을 보니, 이미 황자들이 도착해 있다.
알칸은 고개를 들며 마차에서 내렸다.
*****
루카 황제가 황좌에 앉아 무의미한 표정으로 네 명의 황자들을 내려다봤다.
“존경하는 루카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알칸은 무릎을 꿇었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어 루카 황제의 눈을 응시했다.
루카 황제는 황자들을 내려다봤다. 그들 모두에게 황실에서 내려오는 포스가 꿈틀거리는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알칸의 포스 움직임은 미약했다.
‘어찌 황태자가 될 황자가 이렇게 약해빠져서야.’
후첩이 아닌 비아 황비가 낳은 순수 혈통. 그런데 알칸의 포스가 제대로 역할을 못 한다는 생각에 찹찹했다.
“짐이 말하마.”
루카 황제는 여유롭게 황좌에 앉아 말을 꺼냈다. 그를 둘러싼 네 명의 황자.
아들만 네 명인데, 황태자가 될 알칸은 허약하다. 그렇다면 세 명의 동생들이 형의 자리를 넘볼 수밖에 없다.
알칸은 고개를 들어 세명의 동생을 하나씩 쳐다보았다. 하지만 동생들은 형이 쳐다보는 데도 무시하는 행동을 보였다.
‘그래. 똑똑히 기억난다. 하나씩 복수해줄게. 기다려라.’
알칸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루카 황제는 황자들을 보며 말했다.
“삼 일 후 영지전이 시작된다. 자곱 후작가와 프레드릭 백작가. 짐은 황자들이 원하는 한 가문에 지원하도록 명한다.”
“!”
루카 황제는 황자들의 표정을 살폈다. 영지전은 루카 황제가 허락했지만, 황실에서 지원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루카 황제가 황자들의 싸움을 부추겼다.
“그대들의 생각이 어떠한가?”
루카 황제의 물음에 2황자 키밀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옆에 있던 황자들이 기회를 놓친 듯 어깨를 움직였다.
“루카 황제 폐하의 뜻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저는 검술 명가인 자곱 후작가를 지원하겠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더냐?”
2황자 키밀로가 어깨를 으쓱였다. 11살 난 아이의 표정이 무척 교만했다.
“프레드릭 백작가는 마법 명가이지만, 저희 제국에선 마법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약합니다.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상대 옵니다.”
하셀 제국. 이곳은 기사 제국이다. 명문 검술 가문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마법 가문들은 인정받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영지전 또한 검술 명가인 자곱 후작의 승리를 예측했다.
2황자 키밀로의 말에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 황제가 무표정하게 물었다.
“너희들의 생각이 모두 그러한가?”
모두 “네”라고 대답했고, 2황자 키밀로보다 먼저 대답하지 못한 게 분한 듯 보였다. 루카 황제는 무료했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황자들이 거기서 거기였다.
그런데 그 무료함을 알칸이 깨트렸다.
“저는 프레드릭 백작가의 가문을 지원하겠습니다.”
“!”
루카 황제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흥미로운 듯 알칸을 응시했다. 알칸은 모두 “네”라고 대답하는데 혼자 “아니오”라고 말했다. 그 모습에 황자들은 말도 잘하지 못하는 형이 어쩌다 자신 있게 말한 답이 오답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비아냥거렸다.
“더. 말하라.”
루카 황제는 알칸의 생각이 궁금했다. 알칸은 그걸 알기라도 하는 듯 빠르게 대답했다.
“첫째, 사람 앞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피식
키키킥
동생들이 비웃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렴 그렇지 지가 뭘 하겠어.’라며 조롱하듯 알칸을 쳐다봤다. 예전 같으면 그 눈초리에 아무 말 못했겠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알칸은 정말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걸 방금 경험했다. 알칸은 눈떠보니 회귀한 사람이다.
“둘째, 마법 명가이기 때문입니다. 하셀 제국은 기사들의 제국입니다. 당연히 프레드릭 백작가는 자곱 후작가의 전술을 뻔히 알고 있습니다.”
“후작가의 전쟁 전술을 알고 있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기사들이 어떻게 싸울지 알고 있는 상황이지만, 자곱 후작가는 마법 가문이 어떻게 싸울지 모릅니다.”
루카 황제가 허리를 숙이며 알칸을 향해 몸을 숙였다. 그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 모습에 황자들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리고 셋째. 영지전은 루카 황제 폐하의 승낙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바마마께서 상대가 되지 않는 가문과 영지전을 승낙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니 이번 영지전은 프레드릭 백작가가 자곱 후작가를 이길 확률이 있다는 것입니다.”
루카 황제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황자들은 표정이 굳어져 갔고, 루카 황제의 심중을 살폈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알칸은 여유로웠다.
‘프레드릭 백작가의 승리를 알고 있는 게 나에겐 득이군.’
알칸은 루카 황제에게 시선을 두었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이전 삶에선 루카 황제의 눈빛을 피했을 거다. 하지만 그는 루카 황제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하하하하하!”
어쩐 일인지 루카 황제가 눈물을 닦으며 웃어댔다. 뭔가 만족한 표정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정도로 웃었다. 그가 한참을 웃고 난 후 알칸에게 말했다.
“3대 1이구나. 자신 있느냐?”
알칸은 입매를 올리며 대답했다.
“네. 100대 1이라도 이길 자신 있습니다!”
알칸은 회귀했다.
이제 강해져야 할 시간이다.
그를 따르는 수만 명의 병사가 승리를 확신한 듯 함성을 질렀다.
“남아 있는 적군을 소탕하라!”
“으아아아아와와!!!”
알칸의 말에 병사들은 적군을 향해 진군했고, 전쟁터엔 다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승리는 하셀 제국의 것!”
“승리의 깃발을!”
“알칸 전하 만세!”
곧 승리의 깃발을 세울 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전하 몸을 피하십시오!”
알칸의 호위 기사 로렌은 다급하게 그를 막아섰다. 알칸이 서둘러 몸을 돌렸지만, 2황자 키밀로가 테우스라만테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알칸은 자신에게 다가온 검을 피하지 않았지만, 키밀로의 얼굴을 확인하자 혼란스러웠다.
그 모습에 로렌은 알칸을 향해 달려들어 키밀로의 테우스라만테 검을 온몸으로 막아섰다.
“ 윽!”
“짜증나게 기사 주제에. 비켜라.”
“안 됩니다. 절대 안 됩.”
“그럼, 죽어!”
로렌은 온몸으로 2황자 키밀로를 막아냈다. 하지만 키밀로의 테우스라만테의 검이 너무나 강했다.
그는 목숨을 잃으면서도 끝까지 알칸을 걱정했다.
“지켜… 드리지 못해… 송…구 하…”
“로렌!!!”
로렌은 마지막까지 버티다 쓰려졌다. 알칸을 지키던 로렌이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알칸의 두 눈에 노여움이 가득찼다.
“2황자 키밀로!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2황자 키밀로는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순식간에 알칸의 목에 테우스라만테 검을 겨누었다.
“…으.”
2황자 키밀로의 검에 오러가 일렁거렸다.
“이번 전쟁에서 죽은 이들은 하셀 제국에서 특별히 그 공을 세워줄 겁니다. 그러니 걱정마십시오. 제가 형님의 공을 잘 세워드리지요.”
2황자 키밀로의 테우스라만테 검이 알칸의 목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알칸은 두 손으로 검날을 막았다.
“…으. 아바마마가 두렵지도 않느냐.”
알칸의 두 손에 피가 흐르기 시작했지만, 2황자 키밀로는 표정 하나 일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씨익웃으며 비아냥거렸다.
“이렇게 눈치가 없으니… 아바마마가 형님을 지켜 줄 거 같습니까? 항상 약해빠진 너는 진작에 죽었어야 했어!!”
알칸의 목에서 시뻘건 피가 흘러내리며 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으, 윽.”
“멍청하니까, 우리가 파 놓은 함정에 제 발로 온 거지. 진작에 죽었어야 했어.”
“뭐, 뭐? 우리?”
“그래 우리. 나보다 더 네가 죽기만을 바라는 어마마마. 내 동생들까지 크크크.”
알칸은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을 견제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 어떻게… 나를.”
알칸의 눈에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알칸은 자신에게 걸려있던 저주를 풀었고, 마나 포스가 강하게 꿈틀거렸었다.
이제 마검사로서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조금 더 일찍 저주가 풀렸으면 좋았겠지만, 늦게라도 알게 돼서 좋았다. 다행이었다.
그래서 알칸은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억울했다.
살고 싶다.
하지만 지금 2황자 키밀로의 테우스라만테 검날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무력을 사용할 수 없다면, 마법으로 그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알칸은 테우스라만테 검을 막아내며 영창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키밀로가 그것을 눈치채고 손아귀에 힘을 실었다.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시끄러워 죽겠네.”
2황자 키밀로는 알칸의 영창 소리가 싫었다. 알칸 때문에 황태자가 될 수 없고, 황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알칸만 없어지면, 모든 것이 그의 것이었다. 키밀로는 모든 오러를 쏟아내 알칸의 숨을 단번에 끊어버렸다.
콰지지직
얼칸의 목이 떨어졌다.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졌다.
장대비가 무섭게 내리기 시작했다.
*****
쿠쿵
콰직
장대비가 멈추지 않았다.
알칸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허, 헉!!!”
끔찍한 악몽을 꾼 알칸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꾸꿈… 꿈이지?”
알칸은 온몸을 더듬었다. 분명 그의 동생인 2황자 키밀로가 자신을 죽였다. 하지만 숨이 붙은 걸 보니 악몽을 제대로 꾼 거 같다.
“하… 꿈이었구나.”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살아 있음을 확인하듯 심장 주변에서 마나 포스의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너무 고요했다.
“…뭐가 잘못된 건가?”
곧, 알칸 가슴에 와닿은 자신의 작은 손을 보게 됐다.
“…작다?”
손 아래에 보이는 발을 가만히 응시했다. 알칸의 모든 게 작아졌다. 마치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인 거 같다.
“어, 아악!”
믿지 못할 괴이한 일에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알칸은 벌떡 일어나 거울을 향해 다가섰다. 분명 어린 시절 그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똑똑똑 똑똑
당황한 순간도 잠시, 알칸의 호위무사인 로렌이 처소 문을 두드렸다.
“전하! 무슨 일이십니까? 로렌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로렌이 알칸을 향해 달려갔다. 하얗게 질려버린 알칸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알칸은 로렌의 모습에 또 다시 경악했다.
“너… 살아 있었느냐?”
달라진 알칸의 말투에 로렌의 두 눈이 빠르게 흔들렸다. 허약한 알칸이 악몽을 꾼 거로 생각했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로렌은 무릎을 꿇고 알칸의 눈을 응시했다. 그가 진정되길 바라는 눈빛이다.
“제가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칸의 어머니, 비아 황비는 알칸을 낳으면서 세상을 떠났다. 그 빈자리를 로렌이 지켜줬다. 그래서인지 알칸의 모든 일에 열성을 다했다.
단, 일부러 조금 가벼워 보이게 행동했다. 다소 마른 체형에 길쭉한 키. 호감형의 얼굴이지만, 그 가벼움에 사람들이 업신여기긴 했다. 그래서인지 로렌을 견제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알칸을 오랜 기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알칸은 로렌이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하는 걸 알고 있었다.
“너는 여전하구나.”
로렌은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알칸은 코끝이 찡했다. 전쟁터에서 자신을 지키다 죽었던 로렌의 모습이 떠올랐다.
‘날 위해 목숨을 버린 로렌.’
많이 허약했던 1황자였지만, 황태자로 내정되었다. 하셀 제국 법이 그랬다.
그래서 알칸의 동생인 황자들은 그를 알게 모르게 괴롭히거나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당하다 보니 그들이 파놓은 함정에 걸려 전쟁터에서 죽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돌아왔다.’
해괴한 일이지만, 어린 시절로 되돌아왔다. 눈떠보니 회귀했다.
‘다시 기회가 있어.’
알칸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다짐했다.
‘내가 다 복수하겠다. 더 강해지겠다.’
알칸이 로렌에게 물었다.
“로렌, 오늘이 무슨 날이지?”
“네?”
“그러니까,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지?”
“네에?”
황태자로 내정된 황자지만,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별다른 일정은 없었다. 하지만 로렌은 알칸의 말에 대답해주고 싶었다.
로렌은 두 눈을 좌우로 움직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전하. 에, 그러니까. 오늘은….”
“아니, 됐다.”
“?”
“내가 지금 몇 살이냐?”
“열두 살 이옵니다.”
“열두 살이라….”
알칸은 열두 살에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모습에 로렌이 안절부절하기 시작했다. 로렌은 알칸이 어린아이답지 않은 말투와 억양에 놀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왜?”
“그것이, 전하….”
검술 가문에 장남인 로렌은 평소 진지했다. 하지만 알칸을 호위하면서 진짜 모습을 숨기고 이렇게 촐싹대는 행동을 보였다. 그 모습이 정말 오랜만이다.
그 모습에 알칸이 씩 웃었다. 로렌의 이 모습이 그리웠다.
“전하. 정말 괜찮으시옵니까? 걱정되옵니다.”
“괜찮다. 걱정 말거라.”
“아니옵니다. 전하가 너무… 의젓하시옵니다.”
맞다. 알칸은 허약한 몸뿐 아니라 내향적인 성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열두살 아이가 아닌 성인 남자 같은 말투와 행동이다.
“흠. 그래?”
생각해보니 말투와 행동을 조심해야 할 거 같다. 지금 어린 시절로 회귀한 걸 로렌에게 말해봐야 도움이 될 게 없다.
“알겠다.”
그 말에 로렌이 다시 두 눈을 좁혔다. 알칸은 짧게 숨을 내쉬며, 열두 살 아이처럼 다시 말해줬다.
“응. 알았다고.”
그제야 로렌이 어깨에 힘을 빼며 미소 지었다.
“전하. 이제 괜찮으시군요.”
로렌이 마음을 내려놓기 무섭게 처소 문이 열렸다.
똑똑똑
알칸의 시종장이 들어왔다. 알칸에게 딱딱하게 인사를 한 후 입을 열었다.
“방금 폐하께서 전하를 부르셨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빛이 일하기 싫어하는 건지, 알칸을 무시하는 건지 모를 정도다.
“지금?”
“네.”
“이 새벽에?”
“네.”
“비 오는데?”
“네.”
“나만?”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왜 불러?”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시종장은 알칸이 가기 싫어서 질문을 한다고 생각했다. 루카 황제는 아주 늦은 밤이나 천둥 번개가 치는 날에 황자들을 호출했다. 알칸은 무섭다고 가지 않은 적이 있었다.
“참석이 힘들다고 전달할까요?”
“아니.”
“?”
“가야지.”
“!”
“마차는?”
“즈, 준비하겠습니다.”
시종장은 놀란 눈으로 알칸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바로 숙였다. 그리고 서둘로 처소를 나갔다.
루카 황제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기를 바랐다. 지금 가지 않는다면 그 시험에서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알칸은 엄하기만 했던 루카 황제를 더 이상 피할 이유가 없다.
“로렌. 서둘러줘.”
로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종장은 열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나중에 확 갈아치워야지.’
그리고 지금은 로렌을 시켜야 일이 빨리 진행될 테다.
로렌이 시종과 시녀를 불러 모았다. 그리고 깊게 한숨을 들이셨다. 갑자기 눈빛이 변했다. 그의 호들갑이 시작됐다.
“전하께서 빗방울 한 톨 맞지 않게 준비하거라. 손과 발을 빨리 움직이거라. 신속하고 정확하게. 빨리, 더. 더. 더.”
잔소리에 잔소리가 더해지자, 모두 일사천리 움직였다. 오지랖은 넓지만, 일 하나만큼은 똑 부러졌다.
황궁으로 가는 길이 멀긴 멀다만, 준비가 너무 철저하게 진행됐다.
알칸은 정말 빗방울 한 톨도 맞지 않고 마차에 올라탔다.
오랜만에 타 보는 알칸의 전용 마차.
불안할 때마다 손톱으로 뜯어 둔 의자 손잡이가 보였다. 손톱자국을 만져보았다. 그 시절 그대로 남아 있다.
‘뭐가 그리 무서웠을까?’
죽었다 다시 살아나니 어린 시절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약했기 때문에 무너졌고, 강한 자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렇게 지난날을 생각하자 눈동자에 핏줄이 섰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알칸처럼 빗방울 한 톨 맞지 않은 로렌이 알칸의 안색을 살폈다. 그제야 알칸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너무 티를 내선 안 되겠어.’
알칸은 회귀를 한 사실을 숨겨야 했다. 그래야 호구처럼 당한 일 모두 갚을 수 있다.
잠시 생각에 빠졌는데, 황궁에 도착했다. 마차 창밖을 보니, 이미 황자들이 도착해 있다.
알칸은 고개를 들며 마차에서 내렸다.
*****
루카 황제가 황좌에 앉아 무의미한 표정으로 네 명의 황자들을 내려다봤다.
“존경하는 루카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알칸은 무릎을 꿇었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어 루카 황제의 눈을 응시했다.
루카 황제는 황자들을 내려다봤다. 그들 모두에게 황실에서 내려오는 포스가 꿈틀거리는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알칸의 포스 움직임은 미약했다.
‘어찌 황태자가 될 황자가 이렇게 약해빠져서야.’
후첩이 아닌 비아 황비가 낳은 순수 혈통. 그런데 알칸의 포스가 제대로 역할을 못 한다는 생각에 찹찹했다.
“짐이 말하마.”
루카 황제는 여유롭게 황좌에 앉아 말을 꺼냈다. 그를 둘러싼 네 명의 황자.
아들만 네 명인데, 황태자가 될 알칸은 허약하다. 그렇다면 세 명의 동생들이 형의 자리를 넘볼 수밖에 없다.
알칸은 고개를 들어 세명의 동생을 하나씩 쳐다보았다. 하지만 동생들은 형이 쳐다보는 데도 무시하는 행동을 보였다.
‘그래. 똑똑히 기억난다. 하나씩 복수해줄게. 기다려라.’
알칸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루카 황제는 황자들을 보며 말했다.
“삼 일 후 영지전이 시작된다. 자곱 후작가와 프레드릭 백작가. 짐은 황자들이 원하는 한 가문에 지원하도록 명한다.”
“!”
루카 황제는 황자들의 표정을 살폈다. 영지전은 루카 황제가 허락했지만, 황실에서 지원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루카 황제가 황자들의 싸움을 부추겼다.
“그대들의 생각이 어떠한가?”
루카 황제의 물음에 2황자 키밀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옆에 있던 황자들이 기회를 놓친 듯 어깨를 움직였다.
“루카 황제 폐하의 뜻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저는 검술 명가인 자곱 후작가를 지원하겠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더냐?”
2황자 키밀로가 어깨를 으쓱였다. 11살 난 아이의 표정이 무척 교만했다.
“프레드릭 백작가는 마법 명가이지만, 저희 제국에선 마법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약합니다.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상대 옵니다.”
하셀 제국. 이곳은 기사 제국이다. 명문 검술 가문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마법 가문들은 인정받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영지전 또한 검술 명가인 자곱 후작의 승리를 예측했다.
2황자 키밀로의 말에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 황제가 무표정하게 물었다.
“너희들의 생각이 모두 그러한가?”
모두 “네”라고 대답했고, 2황자 키밀로보다 먼저 대답하지 못한 게 분한 듯 보였다. 루카 황제는 무료했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황자들이 거기서 거기였다.
그런데 그 무료함을 알칸이 깨트렸다.
“저는 프레드릭 백작가의 가문을 지원하겠습니다.”
“!”
루카 황제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흥미로운 듯 알칸을 응시했다. 알칸은 모두 “네”라고 대답하는데 혼자 “아니오”라고 말했다. 그 모습에 황자들은 말도 잘하지 못하는 형이 어쩌다 자신 있게 말한 답이 오답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비아냥거렸다.
“더. 말하라.”
루카 황제는 알칸의 생각이 궁금했다. 알칸은 그걸 알기라도 하는 듯 빠르게 대답했다.
“첫째, 사람 앞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피식
키키킥
동생들이 비웃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렴 그렇지 지가 뭘 하겠어.’라며 조롱하듯 알칸을 쳐다봤다. 예전 같으면 그 눈초리에 아무 말 못했겠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알칸은 정말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걸 방금 경험했다. 알칸은 눈떠보니 회귀한 사람이다.
“둘째, 마법 명가이기 때문입니다. 하셀 제국은 기사들의 제국입니다. 당연히 프레드릭 백작가는 자곱 후작가의 전술을 뻔히 알고 있습니다.”
“후작가의 전쟁 전술을 알고 있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기사들이 어떻게 싸울지 알고 있는 상황이지만, 자곱 후작가는 마법 가문이 어떻게 싸울지 모릅니다.”
루카 황제가 허리를 숙이며 알칸을 향해 몸을 숙였다. 그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 모습에 황자들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리고 셋째. 영지전은 루카 황제 폐하의 승낙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바마마께서 상대가 되지 않는 가문과 영지전을 승낙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니 이번 영지전은 프레드릭 백작가가 자곱 후작가를 이길 확률이 있다는 것입니다.”
루카 황제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황자들은 표정이 굳어져 갔고, 루카 황제의 심중을 살폈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알칸은 여유로웠다.
‘프레드릭 백작가의 승리를 알고 있는 게 나에겐 득이군.’
알칸은 루카 황제에게 시선을 두었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이전 삶에선 루카 황제의 눈빛을 피했을 거다. 하지만 그는 루카 황제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하하하하하!”
어쩐 일인지 루카 황제가 눈물을 닦으며 웃어댔다. 뭔가 만족한 표정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정도로 웃었다. 그가 한참을 웃고 난 후 알칸에게 말했다.
“3대 1이구나. 자신 있느냐?”
알칸은 입매를 올리며 대답했다.
“네. 100대 1이라도 이길 자신 있습니다!”
알칸은 회귀했다.
이제 강해져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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