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조회 : 986 추천 : 1 글자수 : 4,933 자 2022-09-20
바우튼 국왕이 표정을 풀며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술잔을 들었다. 인자한 표정으로 알칸을 응시했다.
순간 시녀들이 등장해 빈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알칸이 마시지도 않았던 잔을 다른 잔을 바꾸었다.
그것을 지켜본 국왕이 자기의 잔을 높이 들었다. 그 모습에 모든 귀족이 앞에 놓인 잔을 들었다.
“모든 것이 알칸님 덕분이오. 고맙소.”
알칸은 바우튼 국왕의 답례로 앞에 놓인 술잔을 높이 들었다.
“아닙니다. 이 모든 게 베르트르 갑옷을 하사하신 덕분입니다.”
승리를 만끽하듯, 알칸의 말에 모든 귀족이 건배하며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다.
알칸이 술잔에 입술을 댔다.
바우튼 국왕은 두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알칸을 지켜봤다.
‘네가 죽는다면 베르테르의 갑옷은 다시 내게 돌아온다. 그리고 그 모든 죄는 도스만토 백작이 가져갈 것이다. 죽어라. 알칸.’
알칸은 한 번에 술을 털어 마셨다.
꿀꺽꿀꺽
국왕의 입가가 떨려왔다. 곧 입매가 올라갔다.
‘약해빠진 황자가 그저 운이 좋았을 뿐. 너를 죽이려는 자가 나뿐이겠냐만은, 너의 생은 이곳에서 마무리하거라.’
알칸이 술잔에서 입술을 떼었다.
“윽!”
알칸이 자신의 심장에 손을 대었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바우튼 국왕의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알칸을 응시했다.
알칸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윽, 이거, 독주인가요? 아주 독하네요!”
그리곤 다시 잔을 들었다. 독하다던 술을 다시 퍼마시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바우튼 국왕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칸은 수도 없이 술을 마시고 있지만, 취기 하나 없이 말똥했다.
국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알칸이 그에게 말했다.
“폐하.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국왕의 눈밑이 파르르 떨려왔다. 그는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짐은 자리를 일어날테니 모두 오늘을 즐기시오.”
“황송하옵니다. 폐하.”
바우튼 국왕이 만찬장을 나서자, 귀족들이 허락이라도 받은 듯 더 흥청망청 놀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스만토 백작은 국왕의 뒤를 뒤따랐다. 국왕이 도스만토 백작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기회는 단 한 번이었다. 독을 탄 게 맞느냐!”
“마, 맞습니다. 어, 억울합니다. 폐하.”
바우튼 국왕은 도스만토 백작에게 알칸을 독살하라 명했다. 그리고 알칸이 독살당하면 모든 것을 도스만토 백작에게 덮어둘 요량이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셔라!”
“네에?”
“증명하라!”
바우튼 왕국의 눈빛에 도스만토 백작이 몸을 주춤거렸다. 하지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는 겁도 없이 술잔을 들었다.
꿀꺽꿀꺽
도스만토 백작의 입에 피가 뿜어졌다.
챙그랑
그는 바운튼 국왕에게 억울한 눈빛을 보냈다.
“…저 …는 결백합니….”
국왕 앞에 도스만토 백작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쓰러진 그가 걸리적거렸다.
사람이 죽었지만, 국왕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 똑같은 술인데, 어떻게 알칸이 안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바우튼 국왕은 마지막까지 빼앗으려던 베르트르 갑옷을 영원히 갖지 못했다.
*****
성대한 축제가 열리기 전.
랑쥐가 소녀의 모습을 변했다. 그리고 만찬장으로 가는 알칸을 불러 세웠다.
“너 오늘 독살당한다는데?”
“!!!”
“내가 도스만토 백작이 이상한 걸 들고 다니는 걸 봤는데. 너 술잔에 탈 거라고 했어.”
알칸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을 독살하려는 바우튼 국왕과 도스만토 백작의 계획을 들어서일까.
아니면…
알칸은 랑쥐의 어깨를 붙잡았다.
“너 또?”
“?”
“술 훔쳐 마신 거야?”
“!!!”
랑쥐의 두 눈이 똥그래졌다. 두 눈을 깜박였지만, 이미 들켜버린 일에 당황했다. 랑쥐는 다람쥐로 변해 왕국 이곳저곳을 다니며 술을 훔쳐 먹었다.
알칸은 혹시라도 랑쥐가 술에 취해 드래곤으로 변하면 어쩔까 걱정됐다.
“어, 어떻게 알았지…?”
“술 좀 그만 마셔. 그러다가. 그러다가.”
별일 없을 것이다. 드래곤인데 술에 취하진 않을 테니까.
“이빨 썩어.”
“뭐?”
“이빨이 썩는다고. 누렇게 변한다고.”
랑쥐는 충격받은 듯 움직이질 못했다. 술의 씁씁함과 달달함이 좋았다. 그런데 그게 자기 이빨을 썩게 한단다.
랑쥐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닐 거야. 아니야!”
“지금은 아니겠지. 나중에 천 살 넘어가고 오천 살 넘어가면 이가 빠질지도 몰라.”
이가 없는 드래곤이라니.
랑쥐가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
알칸은 급하게 해독제를 찾기 위해, 진샬이 준 아공간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 이것도 진샬이 준 거잖아. 고맙긴 하네.’
진샬을 보고 싶진 않지만, 그가 준 선물들이 고맙긴 했다. 뭐, 따지고 보면 랑쥐를 잘 지키라고 준 선물이지만.
알칸은 하셀 제국 고위 귀족들이 준 선물 중 초록색 빛이 나는 해독제를 꺼내어 마셨다.
“으, 텁텁하네.”
몸에 별 반응은 없었다. 미리 해독제를 마셨으니, 걱정 없이 만찬을 즐기기로 했다.
“나 갔다 올게.”
알칸은 방에서 나갔고, 랑쥐는 멍하니 자기 이빨을 한 개씩 만졌다.
“하. 속상해.”
생각해 보니 클린 마법을 사용한다면 이가 빠질 일은 없다.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인간은 늙으면 이가 빠지던데. 설마….’
알칸이 자기를 인간처럼 대해 준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어떻게 보면 랑쥐를 제일 잘 살펴주는 건 알칸뿐이었다.
“역시 내 반려 인간. 좀 더 지켜봐야겠어.”
랑쥐는 한 달이 지난 후에도 알칸과 함께 있기로 결심했다.
*****
엘리젤 황비 알현실.
그녀의 아버지인 베베른 후작은 연륜이 있었다. 하지만 견고한 신체는 검사임을 증명하듯 건장했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조각이라도 한 듯 오목조목한 얼굴은 엘리젤 황비와 똑같았다.
베베른 후작과 엘리젤 황비가 마주 앉았다. 그 모습이 딸과 아빠의 모습이었다.
“아버지. 알칸을 막아야 합니다. 베베른 후작가의 가보가 걸린 일입니다.”
“…하.”
베베른 후작의 깊은 한숨.
웬일인지 엘리젤 황비의 계획처럼 대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단숨에 베베른 후작이 어떤 수를 낼 것이라 예상했었다. 베베른 후작이 마른 세수를 했다.
“엘리젤.”
“네. 아버지.”
“테우스라만테 검은 포기해야 한다.”
“!!!”
엘리젤의 눈이 일그러졌다. 곧 그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누가 보아도 화가 났고, 분노의 표정이었다.
하지만 베베른 후작은 그런 그녀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내 딸의 것을 빼앗다니.’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엘리젤이 실망하는 모습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왜요? 제 거잖아요. 테우스라만테 검은 제거예요. 그리고 제 아들에게 물려줄 거예요.”
베베른 후작가의 가보였지만, 베베른 후작은 엘리젤에게 물려 주기로 약조했었다. 그래서 가문의 가보였지만, 엘리젤이 힘을 행사할 수 있었다.
“엘리젤.”
“아버지. 갖고 싶어요. 다시 뺏어 올 수 있잖아요.”
베베른 후작이 고개를 저었다. 엘리젤 이 베베른 후작 옆으로 다가와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아버지. 제 부탁이에요. 딸의 부탁을 거절하실 건가요?”
베베른 후작이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어린아이 달래듯 말을 꺼냈다.
“하셀 제국 상공에 레드 드래곤이 포착되었단다.”
“…네?”
생각지도 못한 레드 드래곤의 등장.
엘리젤 황비는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갑자기 경직이라도 된 듯 멍하니 베베른 후작을 응시했다. 베베른 후작은 놀란 그녀를 다독였다.
잠시 후 겨우 정신을 차린 엘리젤 황비가 입을 열었다.
“언제요? 저는 들은 게 없습니다.”
“그렇겠지. 제국 보안이란다. 오늘까지 7차례 보고되었단다.”
“마. 말도 안 돼.”
엘리젤 황비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드래곤이 사람으로 변신해서 돌아다니는 건 문제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정체를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드래곤 자체로서 제국에 등장하면 말이 다르다. 제국민 모두가 드래곤의 침입이라고 생각하고, 제국의 기세가 기울었다.
제국에 드래곤이 침공하면 그 제국은 끝이 난다. 주로 눈치를 보며 보안과 공격 작전을 짜야 했고, 온 제국이 드래곤에 집중해야 했다.
그만큼 드래곤의 등장은 위험했다.
“가보를 다시 뺏기 위해 다누만 왕국으로 보낼 인력도 없을뿐더러, 그 인원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은 하셀 제국의 보안에 힘써야 한단다.”
“다… 레드 드래곤 때문이야.”
엘리젤 황비의 두 눈에 시뻘건 핏줄이 서렸다. 곧 두 눈에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베베른 후작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미안하구나. 갖고 싶은 게 있다면, 아비가 모두 들어주마.”
“그러면.”
엘리젤 황비가 눈물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알칸이 꼴도 보기 싫어요. 내가 원하는 건 우리 키밀로가 황태자가 되고, 왕위를 물려받는 거예요.”
“알칸이 황태자가 되는 일은 없단다. 그쪽 외가를 모두 없애지 않았니. 이젠 힘이 없단다. 그놈을 도와줄 정치적 세력이 없단다. 그러니 그 걱정은 그만하거라.”
“모두 없앤 거 맞죠. 아버지?”
“그래. 내가 다 확인했단다.”
그제야 진정이 된 엘리젤 황비가 훌쩍거렸다. 마치 어린 딸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에 베베른 후작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네. 아버지.”
“성질 좀 죽이거라.”
“?”
베베른 후작이 어린아이 달래듯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네가 알칸을 싫어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단다. 정치엔 좋고 싫음을 숨겨야 하는 법이란다.”
그녀는 순한 양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베베른 후작도 만족한 듯 웃음 지었다.
“나는 폐하를 뵙고 가야겠단다. 이만 가보마.”
베베른 후작은 레드 드래곤 등장으로 불안했다. 아니 제국 보안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불안해했다.
설상가상 요즘 들어 레드 드래곤이 브레스를 쏘아 대고 있었다.
‘큰일이군. 레드 드래곤이 브레스를 쏘았다면. 침입한다는 의미인가.’
하지만 이 사실을 엘리젤 황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엘리젤을 놀라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드래곤 중에 제일인 레드 드래곤. 그가 제국을 파괴했다는 얘기는 많았지만, 제국에 쳐들어온 레드 드래곤을 이겼다는 얘기는 단 한 개도 없었다.
베베른 후작의 근심이 깊어갔다.
*****
하셀 제국 상공
알칸과 랑쥐를 애타게 기다리는 드래곤이 있었다.
레드 드레곤이 하셀 제국 상공을 비행했다. 아주 큰 날개가 하늘을 덮자 불구덩이에 빠진 듯 하늘이 시뻘겋게 변한 것처럼 보였다.
‘…하.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군!’
깊은 한숨을 쉬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레드 드래곤. 그의 이름은 진샬!
‘…하. 다누만 왕국으로 직접 가 볼 수도 없고 말이야.’
다누만 왕국에는 블랙 드래곤이 있다. 그가 떠난 줄 모르는 레드 드래곤은 다누만 왕국으로 갈 수가 없었다.
‘블랙 드래곤이 레어로 예민해 보이던데. 내가 끼어들면 싸움만 날 뿐. 딸이 있어서 더 불안하군.’
랑쥐에게는 진작에 드래곤의 기색을 숨기는 마법을 걸어두었다. 하지만 진샬은 블랙 드래곤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진샬이 스스로 드래곤의 기척을 숨겨다 할지라도, 발각된다면 블랙 드래곤과 싸움이 일어날 확률이 높았다.
‘랑쥐야. 어서 오거라. 아빠가 너무 많이 보고 싶단다.’
하염없이 하셀 제국에서 랑쥐를 기다렸다. 그렇게 속절없이 하늘을 비상하며 딸의 기척을 기다리는 진샬이 갑자기 브레스를 쏘아댔다.
‘이게 다 그 버러지 때문이군!’
진샬은 알칸이 떠올랐다. 랑쥐와 친한 알칸. 어쩌면 자신이 아빠인데, 랑쥐는 아빠보다 알칸이랑 더 친해 보였다.
그래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진샬은 하늘을 향해 브레스를 주저 없이 쏘아댔다.
‘버러지 주제에! 블랙 드래곤이 있는 곳엔 왜 가서 이 지경을 만든 것이냐!’
그리고 드래곤의 눈빛이 매섭게 반짝였다.
‘랑쥐를 데려가는 날을 어기기만 해봐라. 내가 대륙에서 제일 작은 먼지로 만들어 줄 테다!’
진샬은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며, 하셀 제국 상공을 날아다니며 브레스를 쏘아댔다.
순간 시녀들이 등장해 빈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알칸이 마시지도 않았던 잔을 다른 잔을 바꾸었다.
그것을 지켜본 국왕이 자기의 잔을 높이 들었다. 그 모습에 모든 귀족이 앞에 놓인 잔을 들었다.
“모든 것이 알칸님 덕분이오. 고맙소.”
알칸은 바우튼 국왕의 답례로 앞에 놓인 술잔을 높이 들었다.
“아닙니다. 이 모든 게 베르트르 갑옷을 하사하신 덕분입니다.”
승리를 만끽하듯, 알칸의 말에 모든 귀족이 건배하며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다.
알칸이 술잔에 입술을 댔다.
바우튼 국왕은 두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알칸을 지켜봤다.
‘네가 죽는다면 베르테르의 갑옷은 다시 내게 돌아온다. 그리고 그 모든 죄는 도스만토 백작이 가져갈 것이다. 죽어라. 알칸.’
알칸은 한 번에 술을 털어 마셨다.
꿀꺽꿀꺽
국왕의 입가가 떨려왔다. 곧 입매가 올라갔다.
‘약해빠진 황자가 그저 운이 좋았을 뿐. 너를 죽이려는 자가 나뿐이겠냐만은, 너의 생은 이곳에서 마무리하거라.’
알칸이 술잔에서 입술을 떼었다.
“윽!”
알칸이 자신의 심장에 손을 대었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바우튼 국왕의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알칸을 응시했다.
알칸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윽, 이거, 독주인가요? 아주 독하네요!”
그리곤 다시 잔을 들었다. 독하다던 술을 다시 퍼마시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바우튼 국왕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칸은 수도 없이 술을 마시고 있지만, 취기 하나 없이 말똥했다.
국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알칸이 그에게 말했다.
“폐하.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국왕의 눈밑이 파르르 떨려왔다. 그는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짐은 자리를 일어날테니 모두 오늘을 즐기시오.”
“황송하옵니다. 폐하.”
바우튼 국왕이 만찬장을 나서자, 귀족들이 허락이라도 받은 듯 더 흥청망청 놀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스만토 백작은 국왕의 뒤를 뒤따랐다. 국왕이 도스만토 백작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기회는 단 한 번이었다. 독을 탄 게 맞느냐!”
“마, 맞습니다. 어, 억울합니다. 폐하.”
바우튼 국왕은 도스만토 백작에게 알칸을 독살하라 명했다. 그리고 알칸이 독살당하면 모든 것을 도스만토 백작에게 덮어둘 요량이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셔라!”
“네에?”
“증명하라!”
바우튼 왕국의 눈빛에 도스만토 백작이 몸을 주춤거렸다. 하지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는 겁도 없이 술잔을 들었다.
꿀꺽꿀꺽
도스만토 백작의 입에 피가 뿜어졌다.
챙그랑
그는 바운튼 국왕에게 억울한 눈빛을 보냈다.
“…저 …는 결백합니….”
국왕 앞에 도스만토 백작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쓰러진 그가 걸리적거렸다.
사람이 죽었지만, 국왕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 똑같은 술인데, 어떻게 알칸이 안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바우튼 국왕은 마지막까지 빼앗으려던 베르트르 갑옷을 영원히 갖지 못했다.
*****
성대한 축제가 열리기 전.
랑쥐가 소녀의 모습을 변했다. 그리고 만찬장으로 가는 알칸을 불러 세웠다.
“너 오늘 독살당한다는데?”
“!!!”
“내가 도스만토 백작이 이상한 걸 들고 다니는 걸 봤는데. 너 술잔에 탈 거라고 했어.”
알칸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을 독살하려는 바우튼 국왕과 도스만토 백작의 계획을 들어서일까.
아니면…
알칸은 랑쥐의 어깨를 붙잡았다.
“너 또?”
“?”
“술 훔쳐 마신 거야?”
“!!!”
랑쥐의 두 눈이 똥그래졌다. 두 눈을 깜박였지만, 이미 들켜버린 일에 당황했다. 랑쥐는 다람쥐로 변해 왕국 이곳저곳을 다니며 술을 훔쳐 먹었다.
알칸은 혹시라도 랑쥐가 술에 취해 드래곤으로 변하면 어쩔까 걱정됐다.
“어, 어떻게 알았지…?”
“술 좀 그만 마셔. 그러다가. 그러다가.”
별일 없을 것이다. 드래곤인데 술에 취하진 않을 테니까.
“이빨 썩어.”
“뭐?”
“이빨이 썩는다고. 누렇게 변한다고.”
랑쥐는 충격받은 듯 움직이질 못했다. 술의 씁씁함과 달달함이 좋았다. 그런데 그게 자기 이빨을 썩게 한단다.
랑쥐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닐 거야. 아니야!”
“지금은 아니겠지. 나중에 천 살 넘어가고 오천 살 넘어가면 이가 빠질지도 몰라.”
이가 없는 드래곤이라니.
랑쥐가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
알칸은 급하게 해독제를 찾기 위해, 진샬이 준 아공간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 이것도 진샬이 준 거잖아. 고맙긴 하네.’
진샬을 보고 싶진 않지만, 그가 준 선물들이 고맙긴 했다. 뭐, 따지고 보면 랑쥐를 잘 지키라고 준 선물이지만.
알칸은 하셀 제국 고위 귀족들이 준 선물 중 초록색 빛이 나는 해독제를 꺼내어 마셨다.
“으, 텁텁하네.”
몸에 별 반응은 없었다. 미리 해독제를 마셨으니, 걱정 없이 만찬을 즐기기로 했다.
“나 갔다 올게.”
알칸은 방에서 나갔고, 랑쥐는 멍하니 자기 이빨을 한 개씩 만졌다.
“하. 속상해.”
생각해 보니 클린 마법을 사용한다면 이가 빠질 일은 없다.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인간은 늙으면 이가 빠지던데. 설마….’
알칸이 자기를 인간처럼 대해 준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어떻게 보면 랑쥐를 제일 잘 살펴주는 건 알칸뿐이었다.
“역시 내 반려 인간. 좀 더 지켜봐야겠어.”
랑쥐는 한 달이 지난 후에도 알칸과 함께 있기로 결심했다.
*****
엘리젤 황비 알현실.
그녀의 아버지인 베베른 후작은 연륜이 있었다. 하지만 견고한 신체는 검사임을 증명하듯 건장했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조각이라도 한 듯 오목조목한 얼굴은 엘리젤 황비와 똑같았다.
베베른 후작과 엘리젤 황비가 마주 앉았다. 그 모습이 딸과 아빠의 모습이었다.
“아버지. 알칸을 막아야 합니다. 베베른 후작가의 가보가 걸린 일입니다.”
“…하.”
베베른 후작의 깊은 한숨.
웬일인지 엘리젤 황비의 계획처럼 대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단숨에 베베른 후작이 어떤 수를 낼 것이라 예상했었다. 베베른 후작이 마른 세수를 했다.
“엘리젤.”
“네. 아버지.”
“테우스라만테 검은 포기해야 한다.”
“!!!”
엘리젤의 눈이 일그러졌다. 곧 그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누가 보아도 화가 났고, 분노의 표정이었다.
하지만 베베른 후작은 그런 그녀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내 딸의 것을 빼앗다니.’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엘리젤이 실망하는 모습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왜요? 제 거잖아요. 테우스라만테 검은 제거예요. 그리고 제 아들에게 물려줄 거예요.”
베베른 후작가의 가보였지만, 베베른 후작은 엘리젤에게 물려 주기로 약조했었다. 그래서 가문의 가보였지만, 엘리젤이 힘을 행사할 수 있었다.
“엘리젤.”
“아버지. 갖고 싶어요. 다시 뺏어 올 수 있잖아요.”
베베른 후작이 고개를 저었다. 엘리젤 이 베베른 후작 옆으로 다가와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아버지. 제 부탁이에요. 딸의 부탁을 거절하실 건가요?”
베베른 후작이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어린아이 달래듯 말을 꺼냈다.
“하셀 제국 상공에 레드 드래곤이 포착되었단다.”
“…네?”
생각지도 못한 레드 드래곤의 등장.
엘리젤 황비는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갑자기 경직이라도 된 듯 멍하니 베베른 후작을 응시했다. 베베른 후작은 놀란 그녀를 다독였다.
잠시 후 겨우 정신을 차린 엘리젤 황비가 입을 열었다.
“언제요? 저는 들은 게 없습니다.”
“그렇겠지. 제국 보안이란다. 오늘까지 7차례 보고되었단다.”
“마. 말도 안 돼.”
엘리젤 황비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드래곤이 사람으로 변신해서 돌아다니는 건 문제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정체를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드래곤 자체로서 제국에 등장하면 말이 다르다. 제국민 모두가 드래곤의 침입이라고 생각하고, 제국의 기세가 기울었다.
제국에 드래곤이 침공하면 그 제국은 끝이 난다. 주로 눈치를 보며 보안과 공격 작전을 짜야 했고, 온 제국이 드래곤에 집중해야 했다.
그만큼 드래곤의 등장은 위험했다.
“가보를 다시 뺏기 위해 다누만 왕국으로 보낼 인력도 없을뿐더러, 그 인원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은 하셀 제국의 보안에 힘써야 한단다.”
“다… 레드 드래곤 때문이야.”
엘리젤 황비의 두 눈에 시뻘건 핏줄이 서렸다. 곧 두 눈에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베베른 후작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미안하구나. 갖고 싶은 게 있다면, 아비가 모두 들어주마.”
“그러면.”
엘리젤 황비가 눈물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알칸이 꼴도 보기 싫어요. 내가 원하는 건 우리 키밀로가 황태자가 되고, 왕위를 물려받는 거예요.”
“알칸이 황태자가 되는 일은 없단다. 그쪽 외가를 모두 없애지 않았니. 이젠 힘이 없단다. 그놈을 도와줄 정치적 세력이 없단다. 그러니 그 걱정은 그만하거라.”
“모두 없앤 거 맞죠. 아버지?”
“그래. 내가 다 확인했단다.”
그제야 진정이 된 엘리젤 황비가 훌쩍거렸다. 마치 어린 딸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에 베베른 후작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네. 아버지.”
“성질 좀 죽이거라.”
“?”
베베른 후작이 어린아이 달래듯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네가 알칸을 싫어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단다. 정치엔 좋고 싫음을 숨겨야 하는 법이란다.”
그녀는 순한 양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베베른 후작도 만족한 듯 웃음 지었다.
“나는 폐하를 뵙고 가야겠단다. 이만 가보마.”
베베른 후작은 레드 드래곤 등장으로 불안했다. 아니 제국 보안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불안해했다.
설상가상 요즘 들어 레드 드래곤이 브레스를 쏘아 대고 있었다.
‘큰일이군. 레드 드래곤이 브레스를 쏘았다면. 침입한다는 의미인가.’
하지만 이 사실을 엘리젤 황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엘리젤을 놀라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드래곤 중에 제일인 레드 드래곤. 그가 제국을 파괴했다는 얘기는 많았지만, 제국에 쳐들어온 레드 드래곤을 이겼다는 얘기는 단 한 개도 없었다.
베베른 후작의 근심이 깊어갔다.
*****
하셀 제국 상공
알칸과 랑쥐를 애타게 기다리는 드래곤이 있었다.
레드 드레곤이 하셀 제국 상공을 비행했다. 아주 큰 날개가 하늘을 덮자 불구덩이에 빠진 듯 하늘이 시뻘겋게 변한 것처럼 보였다.
‘…하.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군!’
깊은 한숨을 쉬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레드 드래곤. 그의 이름은 진샬!
‘…하. 다누만 왕국으로 직접 가 볼 수도 없고 말이야.’
다누만 왕국에는 블랙 드래곤이 있다. 그가 떠난 줄 모르는 레드 드래곤은 다누만 왕국으로 갈 수가 없었다.
‘블랙 드래곤이 레어로 예민해 보이던데. 내가 끼어들면 싸움만 날 뿐. 딸이 있어서 더 불안하군.’
랑쥐에게는 진작에 드래곤의 기색을 숨기는 마법을 걸어두었다. 하지만 진샬은 블랙 드래곤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진샬이 스스로 드래곤의 기척을 숨겨다 할지라도, 발각된다면 블랙 드래곤과 싸움이 일어날 확률이 높았다.
‘랑쥐야. 어서 오거라. 아빠가 너무 많이 보고 싶단다.’
하염없이 하셀 제국에서 랑쥐를 기다렸다. 그렇게 속절없이 하늘을 비상하며 딸의 기척을 기다리는 진샬이 갑자기 브레스를 쏘아댔다.
‘이게 다 그 버러지 때문이군!’
진샬은 알칸이 떠올랐다. 랑쥐와 친한 알칸. 어쩌면 자신이 아빠인데, 랑쥐는 아빠보다 알칸이랑 더 친해 보였다.
그래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진샬은 하늘을 향해 브레스를 주저 없이 쏘아댔다.
‘버러지 주제에! 블랙 드래곤이 있는 곳엔 왜 가서 이 지경을 만든 것이냐!’
그리고 드래곤의 눈빛이 매섭게 반짝였다.
‘랑쥐를 데려가는 날을 어기기만 해봐라. 내가 대륙에서 제일 작은 먼지로 만들어 줄 테다!’
진샬은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며, 하셀 제국 상공을 날아다니며 브레스를 쏘아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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