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조회 : 972 추천 : 1 글자수 : 4,473 자 2022-09-21
하셀 제국으로 돌아오는 날.
하셀 제국은 레드 드래곤의 등장에 모두 경계 태세를 갖췄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끝까지 경계의 끈을 놓을 순 없었다.
그리고 알칸의 처소 창문에 알 수 없는 다람쥐 한 마리가 서성일 뿐이었다. 다람쥐로 변한 진샬.
작고 아담한 다람쥐의 눈빛은 매우 새빨갛고 무서웠다. 다람쥐의 부드러운 털은 아주 매섭게 서 있었다.
시녀들은 알칸이 도착하기 전에 처소를 깨끗하게 정리해야 했다. 따뜻한 목욕물부터 침구까지 마지막 정리를 위해 바삐 움직였다. 분주한 처소 안을 지켜보는 다람쥐가 있었다.
“어머, 다람쥐다!”
“다람쥐?”
다람쥐라는 말에 시녀 한 명이 창문으로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귀여운 다람쥐를 생각한 시녀는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캭!”
시녀의 짧은 비명에 모두 창문을 주시했다.
“무슨 일이야!”
“저게 뭐야!”
“다, 다람쥐 눈빛이 왜 저래?”
모두 창문을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순하고 귀여운 다람쥐가 아니다. 다람쥐가 매섭게 창문 너머로 시녀들을 지켜봤다. 그 눈빛에 살기가 보였다.
“어휴, 흉해.”
“제가 다람쥐의 눈빛인가. 너무 매섭네요.”
시녀장이 커튼을 닫아버렸다. 매서운 다람쥐의 눈빛에 시녀들마저 진저리쳤다. 다람쥐가 눈에 보이지 않자 시녀들이 안심하기 시작했다. 시녀장이 말했다.
“창문 절대 열지 마. 너는 가서 기사단장에게 전해. 이상한 다람쥐가 돌아다닌다고.”
“네. 전하고 오겠습니다.”
“서둘러서 정리하고 나가자. 이제 곧 알칸 전하께서 도착하실 테니까.”
다람쥐가 시녀들에게 혀를 차 댔다.
‘저 버러지들, 쯧.’
다람쥐는 커튼에 가려져 처소가 보이지 않지만, 끝까지 처소 안을 주시했다.
그리고 하염없이 랑쥐와 알칸을 기다렸다.
*****
하셀 제국에는 희한한 일이 발생했다.
루카 황제와 고위 귀족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하지만 고위 귀족은 베베른 후작가와 그의 세력이었다.
“사라졌습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브레스를 내뿜던 레드 드래곤이 존재를 감추었습니다.”
“뭣이라!”
하셀 제국 황제는 레드 드래곤의 동태를 주시했다. 그런데 존재를 숨겨 버린 드래곤의 목적이 궁금했다.
‘복수는 아니군. 왜 제국에 등장했단 말인가.’
도통 알 수 없었다. 드래곤은 성격만 괴팍한 게 아니었다. 변덕스러운 면도 있었다. 다누만 왕국 블랙 드래곤도 그의 변덕으로 레어를 바꿀 정도였으니까.
“그 소문이 맞는다면….”
“어떤 소문 말입니까?”
베베른 후작이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
“아, 그것이 알칸 전하께서 좋은 운을 가져다준다고 하옵니다. 그래서 다누만 왕국의 블랙 드래곤도 떠났다고 말입니다.”
“또 그 영웅담입니까?”
베베른 후작이 혀를 찼다. 다누만 왕국에서 돌아올 알칸을 칭송하는 영웅담이 하셀 제국에 퍼져나갔다.
“드래곤의 변덕이 별일입니까? 배우신 분이 그런 미신을 믿는 것인지요?”
“하하. 소문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후작님.”
소문은 제국 구석구석에 퍼졌지만, 고위 귀족들은 그저 못 배운 자들이 미담이라 생각했다.
“레드 드래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하더라도 그것을 확인할 시일이 필요합니다.”
베베른 후작은 제국의 보안을 책임졌다. 전쟁과 드래곤에 대한 경험이 있는 후작의 의견은 중요했다. 후작은 황제를 향해 고개를 깊이 숙이며 의견을 고했다.
“제국의 모든 일을 축소하고 규모를 줄이시는 게 좋을 듯하옵니다.”
“그렇군. 짐이 뜻하는 바오.”
황제는 오늘 돌아오는 알칸을 위한 성대한 축제를 취소시켰다. 들떠있는 제국민과는 다르게 제국의 보안을 지켜야 하는 황제의 입장은 달랐다.
‘어디에 있을지 모르지만, 레드 드래곤의 심기를 건들만한 일은 만들지 않는 게 좋겠군.’
“하오나 알칸 전하께서 도착하시는 대로 만찬은 준비하겠습니다. 그것마저 축소하기엔 안타깝습니다.”
베베른 후작은 알칸을 위한 척 그를 위한 만찬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후작을 보던 황제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됐소. 1황자가 다누만 왕국에서 드래곤을 물리친 것도 아니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인데 만찬이라니.”
“하오나.”
“다녀온 군사들에게 휴가를 주도록 하시오. 그것이면 충분하오.”
베베른 후작의 입가가 살며시 올라갔다. 곧 고개를 숙이며 고했다.
“그럼. 명 받들겠습니다.”
*****
황궁의 워프진이 움직였다. 곧 알칸과 이천여 명의 군사들이 워프진에서 나왔고, 성으로 이동했다.
“알칸 전하. 만세!”
“하셀 제국에 존경을!”
알칸을 칭송하는 제국민들이 워프진과 황궁으로 가는 길목에 가득 찼다. 알칸과 군사들이 당당하게 성벽으로 들어섰다. 그들의 환호가 알칸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드래곤이 위협적이긴 하지. 남의 나라의 드래곤을 막기 위해 갔다 온 것뿐인데, 이렇게 환대해 주다니.’
하지만 제국민에 의해 시끌벅적한 것이지, 성대한 축제는 없어 보였다.
‘쩝, 섭섭하네.’
뭘 기대하건 아니고, 아니 기대했다.
물론 드래곤을 처리한 게 아니지만, 살아서 돌아온 것만으로도 축하받을 만했다.
성벽이 열렸다.
알칸은 제일 먼저 황제를 뵈러 알현실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는 알현실에 없었다. 그의 시종장이 알칸을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아바마마는 어디 계신 거지?”
“황제 폐하의 서재로 모시겠습니다.”
“서재?”
의아했다. 황제는 알현실이나 회의실에서 주로 사람을 만났다. 그의 서재는 처소처럼 철저하게 사람을 들이지 않았다.
서재 문이 열렸다.
황제가 넓은 책상에 책을 펼쳐두고, 깊은 사색에 잠겼다. 시종장은 늘 그렇게, 자신을 보지도 않는 황제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서재를 나갔다.
알칸은 책을 보느라 자신을 보지 않는 황제를 응시했다.
‘처음 와 보는군. 아버지의 서재.’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문이 두 군데 있었고, 벽면이 모두 책이었다. 채광이 좋았다. 그래서 어두컴컴하진 않았다. 룬문자도 보였다. 보완이 철저한 게 분명했다.
분명 황실에는 책을 모아둔 도서관도 있었지만, 이렇게 서재에 많은 책을 두고 그것을 깨우치고 있었는지 알칸도 몰랐다.
역사, 외교, 무역, 경제, 예술, 검술, 고전 주술, 흑마술 등 빠짐없이 귀한 책들이 보였다.
‘이걸 보게 되다니.’
루카 황제는 이전 삶에서도 황자들을 서재에 들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소문에는 아주 귀한 서책만 있다고 들었었다.
알칸이 아무 말 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제야 알칸의 인기척을 느낀 황제가 고개를 들어 알칸을 응시했다. 알칸은 고개를 숙였다.
“아바마마를 뵈옵니다.”
황제가 아무 말 없이 알칸을 바라보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고생했다.”
“…!”
알칸은 자기의 두 귀를 의심했다. 분명 ‘고생했다.’라고 들었다. 이전 삶에서 단 한 번도 저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도 않았다. 곧 황제가 다시 책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알칸에겐 아직도 어렵기만 한 아버지.
알칸이 아무 말 없이 서 있자, 황제가 입을 열었다.
“나가 보거라.”
“예.”
둘만의 시간이 끝났다.
알칸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서재를 나왔다. 서재를 나오자 문밖에 있던 시종이 허리를 숙였다.
“폐하께서 전하를 오래도록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알칸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살아 돌아와서 기쁜 거였어!’
알칸의 눈빛이 반짝였다.
*****
알칸의 처소 문이 열렸다.
그 소리에 창문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던 다람쥐 한 마리가 두 발로 창문을 두드렸다.
알칸은 창문에 달라붙은 다람쥐를 보며 경악했다.
‘뭐야? 언제부터 저렇게 있었던 거야. 사람 무섭게.’
다람쥐를 향해 깊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고, 바로 창문을 열었다. 다람쥐가 창문 안으로 들어왔고, 순식간의 사람으로 변했다.
“인사는 창문을 열고 해야지. 인사를 하고 창문을 여는 것은 버러지의 습성인가?”
인사하고 창문을 열 든, 창문을 열고 인사를 하든 오십보백보의 차이일 뿐.
“송구합니다. 다음엔 주의하겠습니다.”
“다음 같은 소리 하네. 오늘이 마지막이다.”
알칸의 두 눈에 이채가 실렸다.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진샬을 향해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위대한 진샬님을 항상 존경하며 따르겠습니다. 마지막이나 제가 필요하시면, 아니 이 버러지가 필요하시면 부르십시오. 하셀 제국의 모든 것을 동원하더라도 진샬님을 돕겠습니다.”
“버러지가 눈치는 좋군. 그런데 하셀 제국의 버러지들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너와 마주칠 일 없다.”
“황공하. 아. 아쉽습니다. 진샬님.”
알칸은 정성을 다해 진살의 눈치를 보며 그의 비위를 맞추었다.
“내 딸은?”
“주무십니다.”
알칸은 상자를 조심히 가리켰다. 그리고 진샬이 살금살금 걸어가 잠들어 있는 다람쥐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 미소가 미쳤다.
“이렇게 어린아이를. 한 달이나 고생하게 하다니.”
알칸이 두 눈을 바닥으로 깔았다.
‘어린긴, 다 컸구만.’
진샬이 다람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람쥐의 숨소리에 한 손을 가슴에 얹었다.
“이렇게 착한 아이를”
알칸이 다시 두 눈을 바닥으로 깔았다.
‘착하긴, 영악하구만.’
알칸은 랑쥐와 함께 한, 한 달 동안 그녀의 습성을 잘 알게 되었다.
레드 드래곤의 본성을.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괴팍한 레드 드래곤의 성격.
진샬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랑쥐는 그와 조금 달라 보이긴 했다. 그녀는 호기심이 많았고, 이상하리만큼 알칸의 말을 잘 듣기 시작했다.
“요즘에 잠을 많이 잤느냐?”
“네. 수면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얼마나?”
요즘에 잠이 많아진 건 술을 해독하느라 잠이 많아졌을 것이다. 화장실도 많이 갔고. 하지만 술을 마시게 뒀냐고 역정을 낼 게 분명했다.
“평소보다 두 배 정도 수면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래. 이제 한창 클 때지. 먹는 것도 잘 먹고.”
‘없어서 못 먹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골고루 편식 없이 잘 먹습니다.”
‘그중에 술을 제일 잘 마셔요.’
라고 고자질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알칸의 말을 들은 진샬이 그를 쳐다보았다. 알칸이 그의 눈빛에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뭐지, 나 잘못한 거 있나?’
알칸이 랑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자 진샬은 믿음직한 유모를 보듯 알칸을 바라봤다. 그리고 며칠 전만 해도 찢어 죽여버리고 싶었단 알칸을 다시 보게 되었다.
“제법 쓸만했구나. 버러지 주제에.”
마지막 유종의 미가 이런 걸까?
서로 오해를 풀고 화해하고 헤어지는.
인생을 살다가 한 번쯤 추억하게 되는 그런 사이가 되는 것일까?
‘뭐. 레드 드래곤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알칸도 진샬의 역정 없이 끝내는 유종의 미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끝의 반대말은 시작이다.
그들의 새로운 시작은 랑쥐가 잠에서 깨어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하셀 제국은 레드 드래곤의 등장에 모두 경계 태세를 갖췄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끝까지 경계의 끈을 놓을 순 없었다.
그리고 알칸의 처소 창문에 알 수 없는 다람쥐 한 마리가 서성일 뿐이었다. 다람쥐로 변한 진샬.
작고 아담한 다람쥐의 눈빛은 매우 새빨갛고 무서웠다. 다람쥐의 부드러운 털은 아주 매섭게 서 있었다.
시녀들은 알칸이 도착하기 전에 처소를 깨끗하게 정리해야 했다. 따뜻한 목욕물부터 침구까지 마지막 정리를 위해 바삐 움직였다. 분주한 처소 안을 지켜보는 다람쥐가 있었다.
“어머, 다람쥐다!”
“다람쥐?”
다람쥐라는 말에 시녀 한 명이 창문으로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귀여운 다람쥐를 생각한 시녀는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캭!”
시녀의 짧은 비명에 모두 창문을 주시했다.
“무슨 일이야!”
“저게 뭐야!”
“다, 다람쥐 눈빛이 왜 저래?”
모두 창문을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순하고 귀여운 다람쥐가 아니다. 다람쥐가 매섭게 창문 너머로 시녀들을 지켜봤다. 그 눈빛에 살기가 보였다.
“어휴, 흉해.”
“제가 다람쥐의 눈빛인가. 너무 매섭네요.”
시녀장이 커튼을 닫아버렸다. 매서운 다람쥐의 눈빛에 시녀들마저 진저리쳤다. 다람쥐가 눈에 보이지 않자 시녀들이 안심하기 시작했다. 시녀장이 말했다.
“창문 절대 열지 마. 너는 가서 기사단장에게 전해. 이상한 다람쥐가 돌아다닌다고.”
“네. 전하고 오겠습니다.”
“서둘러서 정리하고 나가자. 이제 곧 알칸 전하께서 도착하실 테니까.”
다람쥐가 시녀들에게 혀를 차 댔다.
‘저 버러지들, 쯧.’
다람쥐는 커튼에 가려져 처소가 보이지 않지만, 끝까지 처소 안을 주시했다.
그리고 하염없이 랑쥐와 알칸을 기다렸다.
*****
하셀 제국에는 희한한 일이 발생했다.
루카 황제와 고위 귀족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하지만 고위 귀족은 베베른 후작가와 그의 세력이었다.
“사라졌습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브레스를 내뿜던 레드 드래곤이 존재를 감추었습니다.”
“뭣이라!”
하셀 제국 황제는 레드 드래곤의 동태를 주시했다. 그런데 존재를 숨겨 버린 드래곤의 목적이 궁금했다.
‘복수는 아니군. 왜 제국에 등장했단 말인가.’
도통 알 수 없었다. 드래곤은 성격만 괴팍한 게 아니었다. 변덕스러운 면도 있었다. 다누만 왕국 블랙 드래곤도 그의 변덕으로 레어를 바꿀 정도였으니까.
“그 소문이 맞는다면….”
“어떤 소문 말입니까?”
베베른 후작이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
“아, 그것이 알칸 전하께서 좋은 운을 가져다준다고 하옵니다. 그래서 다누만 왕국의 블랙 드래곤도 떠났다고 말입니다.”
“또 그 영웅담입니까?”
베베른 후작이 혀를 찼다. 다누만 왕국에서 돌아올 알칸을 칭송하는 영웅담이 하셀 제국에 퍼져나갔다.
“드래곤의 변덕이 별일입니까? 배우신 분이 그런 미신을 믿는 것인지요?”
“하하. 소문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후작님.”
소문은 제국 구석구석에 퍼졌지만, 고위 귀족들은 그저 못 배운 자들이 미담이라 생각했다.
“레드 드래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하더라도 그것을 확인할 시일이 필요합니다.”
베베른 후작은 제국의 보안을 책임졌다. 전쟁과 드래곤에 대한 경험이 있는 후작의 의견은 중요했다. 후작은 황제를 향해 고개를 깊이 숙이며 의견을 고했다.
“제국의 모든 일을 축소하고 규모를 줄이시는 게 좋을 듯하옵니다.”
“그렇군. 짐이 뜻하는 바오.”
황제는 오늘 돌아오는 알칸을 위한 성대한 축제를 취소시켰다. 들떠있는 제국민과는 다르게 제국의 보안을 지켜야 하는 황제의 입장은 달랐다.
‘어디에 있을지 모르지만, 레드 드래곤의 심기를 건들만한 일은 만들지 않는 게 좋겠군.’
“하오나 알칸 전하께서 도착하시는 대로 만찬은 준비하겠습니다. 그것마저 축소하기엔 안타깝습니다.”
베베른 후작은 알칸을 위한 척 그를 위한 만찬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후작을 보던 황제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됐소. 1황자가 다누만 왕국에서 드래곤을 물리친 것도 아니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인데 만찬이라니.”
“하오나.”
“다녀온 군사들에게 휴가를 주도록 하시오. 그것이면 충분하오.”
베베른 후작의 입가가 살며시 올라갔다. 곧 고개를 숙이며 고했다.
“그럼. 명 받들겠습니다.”
*****
황궁의 워프진이 움직였다. 곧 알칸과 이천여 명의 군사들이 워프진에서 나왔고, 성으로 이동했다.
“알칸 전하. 만세!”
“하셀 제국에 존경을!”
알칸을 칭송하는 제국민들이 워프진과 황궁으로 가는 길목에 가득 찼다. 알칸과 군사들이 당당하게 성벽으로 들어섰다. 그들의 환호가 알칸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드래곤이 위협적이긴 하지. 남의 나라의 드래곤을 막기 위해 갔다 온 것뿐인데, 이렇게 환대해 주다니.’
하지만 제국민에 의해 시끌벅적한 것이지, 성대한 축제는 없어 보였다.
‘쩝, 섭섭하네.’
뭘 기대하건 아니고, 아니 기대했다.
물론 드래곤을 처리한 게 아니지만, 살아서 돌아온 것만으로도 축하받을 만했다.
성벽이 열렸다.
알칸은 제일 먼저 황제를 뵈러 알현실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는 알현실에 없었다. 그의 시종장이 알칸을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아바마마는 어디 계신 거지?”
“황제 폐하의 서재로 모시겠습니다.”
“서재?”
의아했다. 황제는 알현실이나 회의실에서 주로 사람을 만났다. 그의 서재는 처소처럼 철저하게 사람을 들이지 않았다.
서재 문이 열렸다.
황제가 넓은 책상에 책을 펼쳐두고, 깊은 사색에 잠겼다. 시종장은 늘 그렇게, 자신을 보지도 않는 황제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서재를 나갔다.
알칸은 책을 보느라 자신을 보지 않는 황제를 응시했다.
‘처음 와 보는군. 아버지의 서재.’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문이 두 군데 있었고, 벽면이 모두 책이었다. 채광이 좋았다. 그래서 어두컴컴하진 않았다. 룬문자도 보였다. 보완이 철저한 게 분명했다.
분명 황실에는 책을 모아둔 도서관도 있었지만, 이렇게 서재에 많은 책을 두고 그것을 깨우치고 있었는지 알칸도 몰랐다.
역사, 외교, 무역, 경제, 예술, 검술, 고전 주술, 흑마술 등 빠짐없이 귀한 책들이 보였다.
‘이걸 보게 되다니.’
루카 황제는 이전 삶에서도 황자들을 서재에 들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소문에는 아주 귀한 서책만 있다고 들었었다.
알칸이 아무 말 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제야 알칸의 인기척을 느낀 황제가 고개를 들어 알칸을 응시했다. 알칸은 고개를 숙였다.
“아바마마를 뵈옵니다.”
황제가 아무 말 없이 알칸을 바라보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고생했다.”
“…!”
알칸은 자기의 두 귀를 의심했다. 분명 ‘고생했다.’라고 들었다. 이전 삶에서 단 한 번도 저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도 않았다. 곧 황제가 다시 책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알칸에겐 아직도 어렵기만 한 아버지.
알칸이 아무 말 없이 서 있자, 황제가 입을 열었다.
“나가 보거라.”
“예.”
둘만의 시간이 끝났다.
알칸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서재를 나왔다. 서재를 나오자 문밖에 있던 시종이 허리를 숙였다.
“폐하께서 전하를 오래도록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알칸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살아 돌아와서 기쁜 거였어!’
알칸의 눈빛이 반짝였다.
*****
알칸의 처소 문이 열렸다.
그 소리에 창문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던 다람쥐 한 마리가 두 발로 창문을 두드렸다.
알칸은 창문에 달라붙은 다람쥐를 보며 경악했다.
‘뭐야? 언제부터 저렇게 있었던 거야. 사람 무섭게.’
다람쥐를 향해 깊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고, 바로 창문을 열었다. 다람쥐가 창문 안으로 들어왔고, 순식간의 사람으로 변했다.
“인사는 창문을 열고 해야지. 인사를 하고 창문을 여는 것은 버러지의 습성인가?”
인사하고 창문을 열 든, 창문을 열고 인사를 하든 오십보백보의 차이일 뿐.
“송구합니다. 다음엔 주의하겠습니다.”
“다음 같은 소리 하네. 오늘이 마지막이다.”
알칸의 두 눈에 이채가 실렸다.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진샬을 향해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위대한 진샬님을 항상 존경하며 따르겠습니다. 마지막이나 제가 필요하시면, 아니 이 버러지가 필요하시면 부르십시오. 하셀 제국의 모든 것을 동원하더라도 진샬님을 돕겠습니다.”
“버러지가 눈치는 좋군. 그런데 하셀 제국의 버러지들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너와 마주칠 일 없다.”
“황공하. 아. 아쉽습니다. 진샬님.”
알칸은 정성을 다해 진살의 눈치를 보며 그의 비위를 맞추었다.
“내 딸은?”
“주무십니다.”
알칸은 상자를 조심히 가리켰다. 그리고 진샬이 살금살금 걸어가 잠들어 있는 다람쥐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 미소가 미쳤다.
“이렇게 어린아이를. 한 달이나 고생하게 하다니.”
알칸이 두 눈을 바닥으로 깔았다.
‘어린긴, 다 컸구만.’
진샬이 다람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람쥐의 숨소리에 한 손을 가슴에 얹었다.
“이렇게 착한 아이를”
알칸이 다시 두 눈을 바닥으로 깔았다.
‘착하긴, 영악하구만.’
알칸은 랑쥐와 함께 한, 한 달 동안 그녀의 습성을 잘 알게 되었다.
레드 드래곤의 본성을.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괴팍한 레드 드래곤의 성격.
진샬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랑쥐는 그와 조금 달라 보이긴 했다. 그녀는 호기심이 많았고, 이상하리만큼 알칸의 말을 잘 듣기 시작했다.
“요즘에 잠을 많이 잤느냐?”
“네. 수면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얼마나?”
요즘에 잠이 많아진 건 술을 해독하느라 잠이 많아졌을 것이다. 화장실도 많이 갔고. 하지만 술을 마시게 뒀냐고 역정을 낼 게 분명했다.
“평소보다 두 배 정도 수면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래. 이제 한창 클 때지. 먹는 것도 잘 먹고.”
‘없어서 못 먹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골고루 편식 없이 잘 먹습니다.”
‘그중에 술을 제일 잘 마셔요.’
라고 고자질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알칸의 말을 들은 진샬이 그를 쳐다보았다. 알칸이 그의 눈빛에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뭐지, 나 잘못한 거 있나?’
알칸이 랑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자 진샬은 믿음직한 유모를 보듯 알칸을 바라봤다. 그리고 며칠 전만 해도 찢어 죽여버리고 싶었단 알칸을 다시 보게 되었다.
“제법 쓸만했구나. 버러지 주제에.”
마지막 유종의 미가 이런 걸까?
서로 오해를 풀고 화해하고 헤어지는.
인생을 살다가 한 번쯤 추억하게 되는 그런 사이가 되는 것일까?
‘뭐. 레드 드래곤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알칸도 진샬의 역정 없이 끝내는 유종의 미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끝의 반대말은 시작이다.
그들의 새로운 시작은 랑쥐가 잠에서 깨어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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