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2부] 내 누나는 히스테리 마녀(1)
조회 : 798 추천 : 0 글자수 : 4,313 자 2024-02-11
벤이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그녀의 엄청난 눈빛을 애써 외면하는 사이, 나에게로 극도의 혐오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 아연실색이 짙게 드러났다.
뻔하지. 뻔해.
피한다고 해서 별수도 없어지자, 나온 마당에 어디 오늘은 제대로 아르휀의 하나밖에 없는 누님과 맞부딪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제 그녀에게 꿀릴 것도 없다.
과거의 아르휀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신성휘로써 움직여 보는 것도 재미있을지도 모르지?
으, 응…. 뭐지?
나름 한 결심하는데 내 눈에 뭔가 포착이 되었다.
엔테리아 아카데미 안에서 흔하지 않지만 나한테는 최근에 제법 익숙해진 여학생의 자수정 머릿결이 레이첼의 뒤에서 아른아른했다.
“아, 아르휀 군?!”
레이첼 뒤에 가려져 있던 뜻밖의 인물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친해질 수 없는 루트의 묘한 궁합이었다.
릴리스티아가 여긴 왜….
나는 몇십 초 동안 릴리스티아에게서 확장된 동공을 통해 눈을 떼지 못했다.
“야, 아르휀 왜 그래? 정신 차려?!”
레이첼 누나 때문에 겁먹은 듯이 굴던 벤은 현실도피라도 하듯 그녀의 시선을 계속 회피하며 나에게 살며시 말을 걸었다.
뭐…. 뭔 소리야?
내가 언제 정신을 놓았다는 거야?
안 보이던 애가 불쑥 나타나니까 반응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
( 아르휀. 그만 정신 차리고 제발 네 누님 좀 어떻게 해보면 안 되겠냐? 엉?! )
당연한 건 나뿐이었던 듯싶다.
벤은 레이첼 누나의 뒤에서 가려져서 등장한 릴리스티아에겐 전혀 관심 없는 듯한 반응으로 오로지 그녀의 표독스러운 살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발을 동동 굴러대기에 바빴다.
그리고 침대 쪽에 기대어 선 내 옆에 바싹 다가와 귓말을 하고 있는 벤을 보니. 몇십 초가 지난 게 아니라 이미 짧은 몇 분이 지나간 듯싶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거군.
상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건 시간 낭비였다.
바로 눈앞에서 표독에 찌든 마녀(?)를 내버려 둘 수만도 없었다.
내가 아르휀이 되고 나서 레이첼 누나와의 만남은 두 번째지만 이런 만남은 과거의 아르휀도 겪어 본 적 없는 이벤트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무엇보다도 아르휀이라면 레이첼 누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내 나름 것 그녀부터 주물러보고 싶어진다는 생각도 한편에 들기 시작했다.
또 각. 또 각.
“히이…이익!”
밴이 기겁하며 재빠르게 내 뒤로 숨어버렸다.
“짜증 나. 말라비틀어진 흉물도 오ㅈ…아, 아니. 네 친구냐?”
어투가 언 듯 벤과 비슷해 보이는 그녀였지만 정황적으로는 아주 달랐다.
그녀는 벤을 비롯해 나를 무시하는 투로 깔보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뭐. 여전하네?
사람 실망시키지 않는 그런 점은 말이야.
아르휀을 초지일관으로 내려다보는 시선과 건방진 눈빛에 나는 과거의 아르휀보다는 익숙해진 듯 손발의 떨림이 일지는 않았다.
두렵고 무섭다기보다는 앞으로 내가 더 이상 강제로 제압을 당하지 말아야 할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반대로 제압권을 이쪽이 가지고 싶은 구미도 당겼다.
“야. 오…아니, 너!
조금 쓸만해졌다고 내 앞에서 우쭐대지 말라고. 기분 나빠…. 큭.”
아…. 아.
그래서 오점이라고 부르던 걸 계속 얼버무리면서 날 부른 거야, 이 히스테리 누님이?
아까부터 아르휀을 지칭하는 말이 꼬이다가 뱉어지는 말들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오점을 벗어난 지는 꽤 되었다.
그 시점부터 아르휀을 오점이라고 부르는 학생들은 빠른 속도로 잦아들어 가버렸고, 이중인격으로 그런 주위의 반응에 그녀도 맞춰갈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인정하는 그녀라….
제법 배 아팠겠는데…. 쿡쿡.
그래서 결국 여기까지 온 거려나?
배알이 꼴리고도 남았을 그녀의 모습의 상상이 내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녀는 보란 듯이 보이는 그 예상을 깨지 못하고 그동안 참고 참았던 것을 모두의 시선이 확연히 줄어드는 방학에 맞춰 움직인 것으로 보였다.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처음엔 여기까지 히스테리 마녀가 찾아올 이유가 없을 거라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면서 그녀는 끝내 한 치의 오차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결론이 내려졌다.
“아 c.”
내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히스테리 마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더한 욕이라도 퍼붓고 싶은 걸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은 어지간히 해서 끝날 생각도 없어 보일 정도로 꺾이지 않는 표독스러운 눈빛은 이제 오로지 나에게만 향하고 있었다.
무섭네, 무서워.
더 이상은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어 보이네?
굳이 무시하는 착각을 일으켜 히스테리 마녀의 눈빛에서 터질 것 같은 불꽃에 격정을 키울
필요까지는 없었다.
어디 한 번…….
【 띠링. 】
지금 이게 울린다고?
어째 조용하다 싶었던 파란 창이 눈앞에 펼쳐졌다.
【 돌발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
-------------------------------------------------------------------
【 레이첼 폰 세이비어의 콧대 높아 꺾일 줄 모르는 자존심에 금을 긋기(0/1) 】
- 보상 : ???
앞 퀘스트의 보상이 누락되어 보상의 정보는 알 수 없습니다.
퀘스트 실패 시, 이에 따른 딜레이가 발생합니다.
퀘스트는 보상을 받는 즉시 다음 일일 퀘스트가 생성됩니다.
단 돌발 퀘스트는 연속 발생과 동시실행이 가능합니다.
돌발 퀘스트와 일반 퀘스트는 동시에 수행이 불가능합니다.
첫 돌발 퀘스트의 특별보상으로 최대한으로 지원해 드립니다.
-------------------------------------------------------------------
으, 음.
일일 퀘스트도 뜨지 않은 지도 꽤 된 거 같은데 돌발 퀘스트 출현에 조금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동안 내내 계속 앞 퀘스트 보상을 선택하지 않아 일일 퀘스트가 불발 상황이 된 것은 맞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퀘스트가 꼭 필요하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돌발 퀘스트가 발생했음에도 나쁘지는 않았다.
퀘스트의 보상을 알 수 없는 게 좀 아쉽고 찜찜하지만….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는 지금 내가 움직이려는 이유와 퀘스트의 대상자라 할 수 있는 히스테리 마녀에게 취할 행동은 시스가 일부러 맞춰주기라도 한 듯 딱 들어맞았다.
느낌이 그거네.
아르휀이 채 익숙해지기도 전에 받은 첫 번째 퀘스트가 문득 떠올랐다.
릴리스티아 대신 칼침 맞기.
퀘스트 내용과 대상자는 달라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칼침도 눈 딱 한 번 감고 맞아 본 사람인데 히스테리 마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게 대수겠어?
칼침보다 훨씬 쉽겠지. 뭐.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과거의 어리숙한 아르휀은 더 이상 여기에 없었고 히스테리 마녀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안다고 자부하고 싶을 정도로 충만감을 느끼며 그녀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피할 수 없으면…즐기라고 했던가?
#.
딱히 말을 걸고 싶지도, 별 건네고 싶은 말은 없었지만 무시하거나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처음은 의연한 태도로 너무 건방져 보이지 않는 모습이 히스테리 마녀를 속이기 쉬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방심은 먼저 잿밥을 깔고 낚이기만을 기다리는 데에서 발생하는 요인으로 다분했다.
의연한 태도를 위해 난 일부러 침착함을 유지시켰다.
“오, 오랜만이에요. 레이첼 누나….”
과거의 아르휀 느낌이라면 이랬…겠지?!
내가 아르휀이 되고 나서 처음 히스테리 마녀를 만났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으니까.
그땐 과거의 기억의 아르휀을 바로 가져온 듯한 느낌이 다였지만 지금은 최대한 이용해 볼 생각이 앞섰다.
물씬 그런 느낌에 충만을 다하듯 나는 약간 주춤거리며 주눅이 든 듯한 덤벙거리는 끼도 흘리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뭐랄까….
약간 우쭐해 보였다.
당연히 이런 반응을 보이며 자신의 앞에서 아르휀이라는 존재는 한 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미개하다는 것에 전율하고 있는 것처럼 내 눈엔 그리 비쳤다.
“우리 사이가 인사까지 나눌 필요가 있던 사이였던가. 응?”
그녀는 곧바로 아주 많이 불편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그 느낌은 마치 그녀 앞에서 아르휀이라는 존재는 아주 미천하면서도 미개한 평민이 되어버린 것과 비슷했다.
그녀 한마디 한마디에 과거의 아르휀이 이런 굴욕적인 느낌을 받았을 거로 생각하니 어렴풋이 신성휘의 기억과 겹쳐 보였다.
똑같네. 이 느낌….
그 사람들도 저랬지.
내가 아르휀에게 감정이입이 하기 쉬웠던 건 신성휘의 부모님 탓도 있었다.
목적을 위해 거짓된 가면을 쓰고 친자식까지 이용했다.
그리고 쓰면 뱉고 달면 삼키듯 신성휘는 그들에게 버림받았다.
썩 좋은 기억은 아니지.
어쩌면 내가 진짜 아르휀이 죽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새 삶을 시작하는 아르휀이 된 건 어떤 이유가 있다고는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신성휘와 하나로 묶인 운명 또는 필연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감상에 빠져있을 게 아니라 내 뒤에 저 녀석 좀 어떻게 해결해야겠는데…?
뻔하지. 뻔해.
피한다고 해서 별수도 없어지자, 나온 마당에 어디 오늘은 제대로 아르휀의 하나밖에 없는 누님과 맞부딪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제 그녀에게 꿀릴 것도 없다.
과거의 아르휀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신성휘로써 움직여 보는 것도 재미있을지도 모르지?
으, 응…. 뭐지?
나름 한 결심하는데 내 눈에 뭔가 포착이 되었다.
엔테리아 아카데미 안에서 흔하지 않지만 나한테는 최근에 제법 익숙해진 여학생의 자수정 머릿결이 레이첼의 뒤에서 아른아른했다.
“아, 아르휀 군?!”
레이첼 뒤에 가려져 있던 뜻밖의 인물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친해질 수 없는 루트의 묘한 궁합이었다.
릴리스티아가 여긴 왜….
나는 몇십 초 동안 릴리스티아에게서 확장된 동공을 통해 눈을 떼지 못했다.
“야, 아르휀 왜 그래? 정신 차려?!”
레이첼 누나 때문에 겁먹은 듯이 굴던 벤은 현실도피라도 하듯 그녀의 시선을 계속 회피하며 나에게 살며시 말을 걸었다.
뭐…. 뭔 소리야?
내가 언제 정신을 놓았다는 거야?
안 보이던 애가 불쑥 나타나니까 반응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
( 아르휀. 그만 정신 차리고 제발 네 누님 좀 어떻게 해보면 안 되겠냐? 엉?! )
당연한 건 나뿐이었던 듯싶다.
벤은 레이첼 누나의 뒤에서 가려져서 등장한 릴리스티아에겐 전혀 관심 없는 듯한 반응으로 오로지 그녀의 표독스러운 살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발을 동동 굴러대기에 바빴다.
그리고 침대 쪽에 기대어 선 내 옆에 바싹 다가와 귓말을 하고 있는 벤을 보니. 몇십 초가 지난 게 아니라 이미 짧은 몇 분이 지나간 듯싶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거군.
상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건 시간 낭비였다.
바로 눈앞에서 표독에 찌든 마녀(?)를 내버려 둘 수만도 없었다.
내가 아르휀이 되고 나서 레이첼 누나와의 만남은 두 번째지만 이런 만남은 과거의 아르휀도 겪어 본 적 없는 이벤트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무엇보다도 아르휀이라면 레이첼 누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내 나름 것 그녀부터 주물러보고 싶어진다는 생각도 한편에 들기 시작했다.
또 각. 또 각.
“히이…이익!”
밴이 기겁하며 재빠르게 내 뒤로 숨어버렸다.
“짜증 나. 말라비틀어진 흉물도 오ㅈ…아, 아니. 네 친구냐?”
어투가 언 듯 벤과 비슷해 보이는 그녀였지만 정황적으로는 아주 달랐다.
그녀는 벤을 비롯해 나를 무시하는 투로 깔보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뭐. 여전하네?
사람 실망시키지 않는 그런 점은 말이야.
아르휀을 초지일관으로 내려다보는 시선과 건방진 눈빛에 나는 과거의 아르휀보다는 익숙해진 듯 손발의 떨림이 일지는 않았다.
두렵고 무섭다기보다는 앞으로 내가 더 이상 강제로 제압을 당하지 말아야 할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반대로 제압권을 이쪽이 가지고 싶은 구미도 당겼다.
“야. 오…아니, 너!
조금 쓸만해졌다고 내 앞에서 우쭐대지 말라고. 기분 나빠…. 큭.”
아…. 아.
그래서 오점이라고 부르던 걸 계속 얼버무리면서 날 부른 거야, 이 히스테리 누님이?
아까부터 아르휀을 지칭하는 말이 꼬이다가 뱉어지는 말들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오점을 벗어난 지는 꽤 되었다.
그 시점부터 아르휀을 오점이라고 부르는 학생들은 빠른 속도로 잦아들어 가버렸고, 이중인격으로 그런 주위의 반응에 그녀도 맞춰갈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인정하는 그녀라….
제법 배 아팠겠는데…. 쿡쿡.
그래서 결국 여기까지 온 거려나?
배알이 꼴리고도 남았을 그녀의 모습의 상상이 내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녀는 보란 듯이 보이는 그 예상을 깨지 못하고 그동안 참고 참았던 것을 모두의 시선이 확연히 줄어드는 방학에 맞춰 움직인 것으로 보였다.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처음엔 여기까지 히스테리 마녀가 찾아올 이유가 없을 거라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면서 그녀는 끝내 한 치의 오차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결론이 내려졌다.
“아 c.”
내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히스테리 마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더한 욕이라도 퍼붓고 싶은 걸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은 어지간히 해서 끝날 생각도 없어 보일 정도로 꺾이지 않는 표독스러운 눈빛은 이제 오로지 나에게만 향하고 있었다.
무섭네, 무서워.
더 이상은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어 보이네?
굳이 무시하는 착각을 일으켜 히스테리 마녀의 눈빛에서 터질 것 같은 불꽃에 격정을 키울
필요까지는 없었다.
어디 한 번…….
【 띠링. 】
지금 이게 울린다고?
어째 조용하다 싶었던 파란 창이 눈앞에 펼쳐졌다.
【 돌발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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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첼 폰 세이비어의 콧대 높아 꺾일 줄 모르는 자존심에 금을 긋기(0/1) 】
- 보상 : ???
앞 퀘스트의 보상이 누락되어 보상의 정보는 알 수 없습니다.
퀘스트 실패 시, 이에 따른 딜레이가 발생합니다.
퀘스트는 보상을 받는 즉시 다음 일일 퀘스트가 생성됩니다.
단 돌발 퀘스트는 연속 발생과 동시실행이 가능합니다.
돌발 퀘스트와 일반 퀘스트는 동시에 수행이 불가능합니다.
첫 돌발 퀘스트의 특별보상으로 최대한으로 지원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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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음.
일일 퀘스트도 뜨지 않은 지도 꽤 된 거 같은데 돌발 퀘스트 출현에 조금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동안 내내 계속 앞 퀘스트 보상을 선택하지 않아 일일 퀘스트가 불발 상황이 된 것은 맞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퀘스트가 꼭 필요하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돌발 퀘스트가 발생했음에도 나쁘지는 않았다.
퀘스트의 보상을 알 수 없는 게 좀 아쉽고 찜찜하지만….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는 지금 내가 움직이려는 이유와 퀘스트의 대상자라 할 수 있는 히스테리 마녀에게 취할 행동은 시스가 일부러 맞춰주기라도 한 듯 딱 들어맞았다.
느낌이 그거네.
아르휀이 채 익숙해지기도 전에 받은 첫 번째 퀘스트가 문득 떠올랐다.
릴리스티아 대신 칼침 맞기.
퀘스트 내용과 대상자는 달라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칼침도 눈 딱 한 번 감고 맞아 본 사람인데 히스테리 마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게 대수겠어?
칼침보다 훨씬 쉽겠지. 뭐.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과거의 어리숙한 아르휀은 더 이상 여기에 없었고 히스테리 마녀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안다고 자부하고 싶을 정도로 충만감을 느끼며 그녀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피할 수 없으면…즐기라고 했던가?
#.
딱히 말을 걸고 싶지도, 별 건네고 싶은 말은 없었지만 무시하거나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처음은 의연한 태도로 너무 건방져 보이지 않는 모습이 히스테리 마녀를 속이기 쉬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방심은 먼저 잿밥을 깔고 낚이기만을 기다리는 데에서 발생하는 요인으로 다분했다.
의연한 태도를 위해 난 일부러 침착함을 유지시켰다.
“오, 오랜만이에요. 레이첼 누나….”
과거의 아르휀 느낌이라면 이랬…겠지?!
내가 아르휀이 되고 나서 처음 히스테리 마녀를 만났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으니까.
그땐 과거의 기억의 아르휀을 바로 가져온 듯한 느낌이 다였지만 지금은 최대한 이용해 볼 생각이 앞섰다.
물씬 그런 느낌에 충만을 다하듯 나는 약간 주춤거리며 주눅이 든 듯한 덤벙거리는 끼도 흘리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뭐랄까….
약간 우쭐해 보였다.
당연히 이런 반응을 보이며 자신의 앞에서 아르휀이라는 존재는 한 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미개하다는 것에 전율하고 있는 것처럼 내 눈엔 그리 비쳤다.
“우리 사이가 인사까지 나눌 필요가 있던 사이였던가. 응?”
그녀는 곧바로 아주 많이 불편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그 느낌은 마치 그녀 앞에서 아르휀이라는 존재는 아주 미천하면서도 미개한 평민이 되어버린 것과 비슷했다.
그녀 한마디 한마디에 과거의 아르휀이 이런 굴욕적인 느낌을 받았을 거로 생각하니 어렴풋이 신성휘의 기억과 겹쳐 보였다.
똑같네. 이 느낌….
그 사람들도 저랬지.
내가 아르휀에게 감정이입이 하기 쉬웠던 건 신성휘의 부모님 탓도 있었다.
목적을 위해 거짓된 가면을 쓰고 친자식까지 이용했다.
그리고 쓰면 뱉고 달면 삼키듯 신성휘는 그들에게 버림받았다.
썩 좋은 기억은 아니지.
어쩌면 내가 진짜 아르휀이 죽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새 삶을 시작하는 아르휀이 된 건 어떤 이유가 있다고는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신성휘와 하나로 묶인 운명 또는 필연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감상에 빠져있을 게 아니라 내 뒤에 저 녀석 좀 어떻게 해결해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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